'닭강정'으로 새로운 코미디 도전
"천만 감독보다 장르의 다양성 원해"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극한직업'의 성공으로 분명 여러 유혹이 있었을 터다. 그러나 이병헌 감독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 대신 장르의 다양성을 택했다. 호불호가 나뉠 걸 알면서도 선택한 '닭강정'은 어쩌면 이병헌 감독의 지향점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이병헌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닭강정'(감독 이병헌)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품은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김유정 분)를 되돌리기 위한 아빠 최선만(류승룡 분)과 민아를 짝사랑하는 고백중(안재홍 분)의 코믹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닭강정'은 '사람이 닭강정이 된다'는 기발한 소재를 내세워 궁금증을 자극했다. 여기에 1600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극한직업'과 종영 후 오히려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특유의 '말맛'이 더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참신한 소재라고는 하지만 선뜻 영상화를 구현할 만한 원작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제작 소식이 들렸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걸 한다고?"라며 반신반의했다. 이에 이병헌 감독은 "영상화 하기까지 조금 어려운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정말 많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독을 움직이게 한 건 '도전의식' 때문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도전적으로 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감정도 있었던 것 같다. 아무나 못 할 것 같고 나 역시 못 할 것 같았지만 '이건 내가 해야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내 "새롭게 느껴졌다. 어려움이 예상되는 작업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또한 그간 여러 사랑을 받았던 만큼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다른 결의 작품을 또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처음부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소재를 찾던 중 '닭강정'을 만났다. 그는 "재밌다고 생각한 작품들이면 이미 판권이 다 팔렸더라. 남은 작품 중 제작사의 추천으로 한 번 보게 됐던 작품"이라고 돌이켰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일종의 낚시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작품을 왜 보라고 한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계속 다음화를 넘기고 있는 저를 발견했죠. 이게 뭘까 싶다가도 오히려 말도 안 되는 게 더 재밌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제 머리에서 계속 떠나지 않아 원작이 완결이 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해보겠다고 했어요."
이 감독과 인터뷰를 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그가 연출자로서 나아갈 방향성 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으며 책임감 또한 느끼고 있다는 지점이었다. 일례로 이 감독은 '장르의 다양성'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시작은 "드라마·영화 시장에서 보긴 했지만 많이 없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여기에 이런 형태와 톤의 작품이 왜 있어야 할까라는 궁극적인 질문이 더해졌다.
이 감독은 "다양성의 문제였다. 나를 비롯해 앞으로 이와 비슷한 장르를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선례가 됐으면 했다. '닭강정'스러운 포맷이 어느 정도 어필이 된다면 조금 더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들이 제작될 수 있지 않나. 아직까지는 한정적이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시도를 한다면 내게도 시장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감독의 역량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 감독의 방향성을 지지하고 힘을 보태준 배우들이 있었기에 '닭강정'이라는 한 작품이자 장르가 탄생했다. 실제로 이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고 큰 위안을 얻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모든 배우가 원작을 보고 왔기 때문인지 어려운 프로젝트라는 것을 인지하고 어느 정도 각오를 한 채로 왔더라. 내적인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품이다 보니 서로 민망할 순간도 있을 텐데 그런 감정은 절대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하고 생각보다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던 현장이었다"고 돌이켰다.
"보는 분들은 가벼운 코미디처럼 즐기지만 만드는 사람들은 진지하고 무겁게 작업했던 작품이에요. 류승룡 선배는 아예 각을 잡고 준비해 오셨더라고요. 심지어 잠깐 나오는 적은 분량의 배우들조차도 '이렇게까지 해도 되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캐릭터를 열심히 만들어 왔죠. 주연배우들이 현장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니 다른 배우들까지도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 같았어요. 배우들에게 그저 고마웠던 현장이었습니다."
이 감독은 원작의 색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중 대표적인 건 '만화적인 작품'이었다. 때문에 배우들의 톤과 발성은 물론이고 때때로 행동까지도 연극에 가까울 정도로 과장될 때가 많았다. 이 감독은 "전체적으로 촬영 전에 만화적이고 연극적인 작품의 톤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었다"며 "'닭강정'만이 가진 색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색을 고스란히 옮기는 게 처음부터 저희의 의도였다"고 밝혔다.
"전체적인 느낌이나 미술 세팅인 사소한 부분까지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드라마만의 다른 걸 쟁취하지 말자 주의였어요. 원작 작가가 손가락을 4개만 그렸다면 우리 역시 그에 맞추고자 했어요. '닭강정'만의 색을 고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영화 '스물'과 '극한직업'에 이어 또 하나의 코미디물 '닭강정'을 내놓은 이병헌 감독이다. 이에 이 감독이 코미디를 지향하는 편이라는 시각도 존재했다. 정작 이 감독은 "그런 건 아니"라며 "죽을 때까지 코미디만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 감독은 현재 김은숙 작가와 협업인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를 촬영 중이다. 이에 그는 "대본도 재밌고 볼거리가 많다 보니 많이 배우고 있다"고 짧게 귀띔했다.
"제가 좋아하는 바고 그나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코미디예요. 그러다 보니 계속 코미디를 하게 됐네요. 작품이 쌓일수록 관객은 비슷하다고 느끼지만, 사실 저는 제 안에서 굉장히 다양한 것들을 하고 있어요. 코미디라는 건 분명하지만 다 다른 작품들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제 코미디를 떠나서 다른 무언가를 해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경험치가 쌓였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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