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숨겨진 영웅 양규 役으로 열연
지난해 '고거전' 포함 다섯 작품 출연
"차기작 로코·현대극 하고 싶어"
[더팩트 | 공미나 기자] "양규 장군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는데, 그 숙제를 해낸 기분이네요."
배우 지승현은 '고려 거란 전쟁'을 통해 고려의 숨겨진 영웅 양규를 세상에 알렸고, 대중은 지승현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알았다.
KBS2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극본 이정우, 연출 전우성·김한솔)은 고려와 거란족의 요나라가 충돌한 여요전쟁 중 2·3차 여요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총 32회 차인 이 작품은 현재 16회까지 방송됐다.
지승현은 극 중 고려의 숨겨진 영웅 양규 장군으로 분해 나라와 백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특히 지난 7일 방송에서 지승현은 양규 장군이 애전 벌판에서 거란군과 싸우다 온몸에 화살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는 모습을 연기하며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쏟게 했다.
9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지승현은 "인터뷰에 오며 마지막 장면을 봤는데 연출도 너무 좋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사극 액션을 보여준 것 같아 뿌듯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양규는 귀주대첩 이전 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이름을 떨친 장수다. 흥화진의 성에서 40만 거란 대군에 7일 동안 맞서 적을 물리쳤다. 거란군이 남진한 뒤에는 흥화진을 나와 17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6000명 거란군이 점령한 곽주성을 탈환했다. 이처럼 양규는 고려시대 거란을 상대로 나라를 구한 구국영웅이지만 업적에 비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지승현도 "배역을 제안받고 양규를 잘 몰라 부끄러웠다"며 여러 차례 고백했다.
"처음 작품을 제안받고 강감찬 장군에 대한 드라마로 알았어요. 대본을 읽고 연구하며 양규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덜 알려졌을지 신기했어요. 조선 세조 때까지는 양규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제를 지내기도 했대요. 그런데 이후에 왜 잊혔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이 분을 연기하게 된 이상 세상에 잘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역사적 기록이 많지 않았기에 양규라는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제작진과 지승현의 노력도 많이 필요했다. 지승현은 "액션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진짜처럼 보이고 싶었다. 국궁 선생님을 만나 연습하기도 하고 승마 연습도 매일 같이 했다"며 직접 활을 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 분의 업적을 보며 리더십도 있으실 거고 무술도 굉장히 잘하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장군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승마나 국궁 연습도 많이 했어요. 내면은 묵직하고 고집스러운 인물로 설정했어요. 다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며 장군들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런 모습들도 표현하려 했어요. 북한에 아마 양규 장군의 사료가 좀 더 남아있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양규 장군의 초상화를 한 번 보고 싶어요."
양규를 존경하는 지승현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양규와 지승현 사이에는 운명 같은 일들이 많았다. 양규가 사망하는 장면은 그의 생일인 12월 9일 촬영됐다. 이날 '고려 거란 전쟁' 감독은 그에게 "양규 장군이 돌아가시고 배우 지승현이 새로 태어난 날"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 말처럼 지승현의 배우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을 남겼다.
아울러 양규의 전사신을 촬영하는 날 현장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고. 사료에도 양구 장군이 죽는 날 눈이 내렸다고 한다. 지승현의 마지막 촬영날 역시 눈이 쏟아졌다. 인터뷰를 하는 이날도 눈이 내렸는데, 지승현은 "양규 장군님이 와주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지승현은 MBC 드라마 '연인'에서 유길채(안은진 분)의 남편 구원무 역을 맡아 시청자들과 만났다. 당시 유길채가 청나라에 포로로 잡힌 모습을 본 뒤 외면하고 돌아와 새 아내를 맞이하는 구원무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실 '고려 거란 전쟁'이 방송되면 이미지가 상쇄될 거라고 예상했다"면서 "'원무일 때 미워해서 미안했다. 사실은 사랑했다'는 댓글을 보고 웃었다"고 했다.
짧은 시간 동안 극과 극 캐릭터를 연기한 지승현은 "구원무가 욕을 많이 먹었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연기할 때 그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려 하는 편인데, 구원무는 그 시대 배경을 이해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저 길채를 사랑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움직였을 뿐인데 지금의 시선으로 보니 비난을 받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대적 배경은 고려가 참 멋있는 것 같다. '고려 거란 전쟁' 1회에서 길거리 키스신도 나온다. 조선이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가부장적 국가였다면 고려는 비교적 남녀평등한 국가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06년 데뷔한 지승현은 그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았다. 그중에서도 '비공식 천만영화'라고 불리는 영화 '바람'(2009)은 지승현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작품에서 연기한 김정완은 오랜 시간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제 그는 양규 장군으로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만나게 됐다.
"이제 제 '인생 캐릭터'는 양규가 아닐까요. '태양의 후예'에 출연하고 한동안은 안정준 상위로 불렸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는 다시 '바람'으로 저를 기억하시더라고요. 이후에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로는 한동안 '쓰랑꾼(쓰레기+사랑꾼)' 이미지로 넘어가더니 다시 '바람'으로 저를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이제는 양규로 조금 더 저를 기억해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하."
'고려 거란 전쟁'과 양규의 인기에 힘입어 그는 지난 연말 '2023 KBS 연기대상'에서 우수상과 인기상을 수상했다. 데뷔 18년 만의 첫 상이었다. 특히 그는 "상을 받을 때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었다"며 "우수상보다 인기상이 더 당황스러웠다. 인기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떠올렸다.
일각에서는 '극 중 양규의 활약이 연기대상 전에 조금 더 방송됐다면 한 단계 더 큰 상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운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지승현은 그런 아쉬움 대신 "김숙흥(주연우 분) 장군과 베스트 커플상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가장 아쉽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지난해 그는 '고려 거란 전쟁'과 '연인' 외에도 SBS '7인의 탈출', 디즈니+ '형사록2' '최악의 악'까지 무려 다섯 작품에 얼굴을 비췄다. 그는 "소처럼 일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걸 이뤘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차기작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는 "다음엔 꼭 현대극을 하고 싶다"고 바랐다. 특히 그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욕심을 내며 "제가 '로코 재질'이다"라고 수줍게 말했다.
배우로서 목표를 묻자 그는 10여 년 전부터 매일 읽고 있는 10개의 목표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배우다' '나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와 즐거움으로 내 가치를 전달한다'와 같은 내용들이다. 그는 "예전엔 히스 레저처럼 한 획을 긋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면서 "이제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시청자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 자체로 배우로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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