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관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꿈을 키운 세대의 이야기
"남아있는 단관극장, 문화 유적으로 유지돼야"
코로나19로 인해 한 차례 얼어붙었던 한국 영화계는 관람료 인상과 OTT 플랫폼의 성장 등으로 결국 역대급 위기를 겪고 있다. 이 가운데 60년 역사를 지닌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고 있고, 얼마 남지 않은 단관극장은 저마다의 생존 방식을 찾으며 그 자리를 지키려 한다. 이에 <더팩트>는 대형 멀티플렉스가 익숙한 세대에게는 정보를, 단관극장이 그리운 세대에게는 향수를 선사하기 위해 추억의 K-극장을 되짚어봤다.<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대형 멀티플렉스가 익숙한 기자에게 단관극장은 미지의 공간이다. 이에 따라 단관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며 자연스럽게 꿈을 키운 세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올해 '리바운드'와 '오픈 더 도어'로 관객들과 만난 장항준 감독은 20일 오전 <더팩트> 취재진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단관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던 시절을 떠올렸고,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공간이 문화 유적으로 보존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먼저 장 감독은 단관극장에서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을 생생하게 전했다. 당시 그에게 극장은 영화를 보는 공간으로 그치지 않고, '놀러 간다'라는 설레는 기분을 안겨준 곳이었다.
"지방에는 극장이 거의 없었고, 서울도 종로 쪽에만 극장이 있었어요. 1980~1990년대 고전으로 남아있는 작품은 당시 극장에서 볼 수밖에 없었죠. 비디오 보급도 이뤄지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개봉 시즌에 맞춰서 극장으로 갔어야 했던 시절이었어요."
이어 장 감독은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단관극장만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는 "주말에는 단관극장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어요. 미리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으니까요. 흥행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시간 정도 미리 가서 줄을 서야 티켓을 살 수 있었죠"라며 "또 미리 표를 구매하고 더 높은 가격으로 되파는 암표상도 있었어요"라고 덧붙였다.
장 감독에게 여러 단관극장은 작품 그 자체로 기억되고 있었다. 대한극장은 '백 투 더 퓨처', 피카디리는 '람보'였다. 특히 그는 '람보'의 티셔츠를 나눠준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새벽 4시에 피카디리를 갔다가 선착순에 들지 못해서 결국 티셔츠를 받지 못한 에피소드도 전했다.
또한 장 감독은 "지금은 대부분의 영화가 수요일에 개봉하지만, 그때는 토요일에 개봉했다. 아침 일찍부터 줄 서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더더욱 서울 근교에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다"며 "지금은 언제든지 극장에 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영상물 자체를 접하기 쉬웠던 시대가 아니지 않냐. 꿈을 상영하는 낭만이 있는 공간이었다"고 강조했다.
물론 장 감독은 대형 멀티플렉스가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는 "전통적인 단관극장이 없어지기 시작하고,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한국 영화계의 산업화가 촉진된 건 맞아요. 산업적인 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봐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씁쓸한 마음을 드러냈고, 남아있는 몇 개의 단관극장이라도 보존되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영화의 상영 기간이 짧아졌어요. 예전에는 최소 한 달은 상영했고, 흥행할수록 오래 걸려있었거든요.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서편제'는 1년 동안 상영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멀티플렉스의 등장이 달갑지 않았죠.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끝으로 장 감독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단관극장을 문화 유적으로 생각하면서 유지해 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 시대가 없었다면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도 없고, 대중문화도 이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바람을 전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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