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서 기댈 곳 없는 소년 연규 역 맡아 데뷔 첫 스크린 주연 도전
"'화란'은 제 가슴 속에 계속 쥐고 있어야 할 작품"
[더팩트|박지윤 기자] 풋풋함을 가득 머금은 신예가 등장했다. '일말의 가능성'을 품고 배우의 길을 우직하게 걷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만 존재할 뿐이었다. '화란'이라는 터닝 포인트를 맞은 홍사빈의 다음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홍사빈은 11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화란'(감독 김창훈)에서 기댈 곳 없는 소년 연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부터 자신의 꿈까지 솔직하게 전했다.
이날 다섯 명의 취재진이 인터뷰를 위해 홍사빈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이를 본 그는 "이런 구도가 되니까 더 긴장되네요"라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며 인사를 건넸다.
작품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 분)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 드라마다.
오디션을 보고 '화란'에 합류하게 된 홍사빈은 "대본 페이지와 글자 배열까지 외웠어요. 어디에 어떤 단어가 있었는지부터 인쇄가 잘못된 부분까지 기억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어요. 그만큼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라고 회상했다.
"제 또래 남자 배우라면, 연규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우선 영화를 통해 20대의 제 모습을 남길 수 있는데, 이렇게나 많은 시간 화면에 노출된다는 건 이례적으로 큰일이잖아요. 또 연규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고 계속 변화하는 캐릭터잖아요. 이 설정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극 중 연규는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엄마와 네덜란드로 떠나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인물로,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점차 변화한다. 이를 연기한 홍사빈은 한없이 흔들리는 유약함부터 살기 위해 남을 짓밟는 독기 어린 모습까지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내며 송중기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발산한다.
연기에 대한 호평이 끊이질 않자, 홍사빈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겸손한 면모를 드러냈다. 이어 그는 "모든 게 처음이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어요"라고 중점을 둔 부분을 밝히면서 "연규가 마주하는 모든 일들이 다 처음이어야 됐죠. 그래서 보이는 얼굴이나 느끼는 감정, 행동과 말투 등이 장면마다 새로워야된다고 생각했어요. 새롭지만, 결국 연규라는 큰 틀 안에서 절대 벗어나면 안 되는 모호한 설정이었죠"라고 설명했다.
오디션 합격은 홍사빈에게 기쁨이자 부담으로 다가왔다.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이름을 올린 만큼,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있는 그는 "지금도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저랑 비슷한 연규를 연기하면서 위로를 받았죠"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일 무서운 게 일말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배우를 꿈꾸는 것도 일말의 가능성때문이거든요. '연규가 화란에 갈 수 있을까?'라는 것도 일말의 가능성이죠. 연규가 처한 현실이 저랑 비슷한 면이 있어서 조금 편하게 연기했어요."
'화란'으로 데뷔 첫 스크린 주연에 나선 홍사빈은 선배 송중기와 연기 호흡을 맞추면서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 입성하는 쾌거를 거두며 배우로서 평생 잊지 못할 영광의 순간을 누리고 돌아왔다.
"송중기 선배님은 '편하게 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모든 면에서 눈치 보거나 망설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또 칸은 너무 정신이 없었고 긴장을 많이 했어요. 즐기지 못해서 아쉬워요. 언젠가 한 번 더 가봤으면 좋겠다는 불씨가 생겼어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홍사빈은 2018년 제17회 미쟝센 단편 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된 '휴가'로 데뷔했다. 이후 제10회 충무로 단편 영화제 청년-대학생 부문 대상을 받은 '폭염'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며 주목할 만한 신예로 떠올랐다.
또한 그는 2020년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주인공 조씨고가 역을 맡아 무대 위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대학 시절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에 도전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능력치를 발산해 왔다.
홍사빈은 '멋져 보여서'라는 단순한 이유로 연기를 시작했는데 순리적으로 매일 배우로서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행보를 펼치게 됐다고. 이를 들으니 그가 막연한 꿈이나 희망이 아닌, 현실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더욱 홍사빈의 꿈이 궁금해졌다. 이에 그는 "그럴법한 사람, 그럴법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강조했다.
"제가 지금 노트북을 열고 기자님들 사이에 앉아서 타자를 치면 '그럴법하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웃음). 저는 '옆집 사는 남동생'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거든요. 저는 이러한 말들이 제가 마스크적으로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얼굴을 갖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 장점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누군가를 다치거나 아프게 하지 않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끝으로 홍사빈은 "'화란'은 제20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 것 같아요. 제 가슴 속에 계속 쥐고 있어야 할 영화"라고 의미를 되새기며 "정말 손색없는 좋은 영화예요. 끈끈하고 찐득한 이야기인데, 작품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아릴 것 같아요. 가을이랑 잘 맞는 작품이죠"라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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