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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 염혜란의 겸손함, 그리고 바람[TF인터뷰]

  • 연예 | 2023-09-11 00:00

'마스크걸'에서 아들을 잃은 엄마 김경자 役 맡아 열연
"언제 봐도 본질에 닿아있는 클래식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 염혜란이 넷플릭스 '마스크걸' 공개를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넷플릭스
배우 염혜란이 넷플릭스 '마스크걸' 공개를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넷플릭스

[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 염혜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모든 작품의 기본이 되는 글이다.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는 디테일은 당연한 과정이고, 겸손은 미덕이다. 매번 전작을 뛰어넘는 강렬한 활약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염혜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극본·연출 김용훈)에서 마스크걸에 의해 아들을 잃은 엄마 김경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최근 그는 작품 공개를 기념해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18일 공개된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걸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 마스크걸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마스크걸'은 신선한 소재와 예측할 수 없는 전개, 그리고 캐릭터를 삼킨 듯한 신들린 연기력을 보여준 염혜란의 활약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에 힘입어 작품은 공개 2주 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대한민국을 비롯해 캐나다와 프랑스, 홍콩 등 72개 국가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뜨거운 화제성을 입증했다.

염혜란은 마스크걸에 의해 아들을 잃은 엄마 김경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넷플릭스
염혜란은 마스크걸에 의해 아들을 잃은 엄마 김경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넷플릭스

SNS를 하지 않지만, 연예계 종사자들에게 많은 연락을 받으면서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는 염혜란은 "총량의 법칙을 다 써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좋은 시절이죠. 제 작품만은 아니잖아요. 모든 스태프들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어서 행복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극 중 김경자는 아들 주오남(안재홍 분)을 잃는 순간 이전의 평범한 삶을 버리고 인생 2막을 연다. 아들을 죽인 김모미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겨주겠다는 신념과 각오로 똘똘 뭉쳐서 복수에 남은 일생을 건 미쳐버린 사람으로 변한 채 말이다. 이를 연기한 염혜란이 가장 경계한 건 모든 행동의 이유가 모성애로 귀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너무 쉬운 해결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염혜란은 김 감독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대사 한 줄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그렇게 사회 부적응자인 주오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과한 애정을 잘못된 방향으로 쏟고 있는 김경자의 '왜곡된 모성애'를 표현하는 것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김경자는 시신을 보면서 '우리 아들만 아니면 돼'라는 편협한 대사를 할 정도로 왜곡된 모성애를 갖고 있는 인물이에요. 김경자도 주오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포장하잖아요.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모르거든요. 환상 장면에서 '엄마, 내가 창피했지'라는 주오남에게 '미안하다'고 해요. 원래는 '무슨 소리야'라고 부정하는 거였는데 바꿨어요. 미묘한 차이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죠."

그렇다면 염혜란이 바라본 김경자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가진 김경자는 굵직한 사건에 따라 크게 3부로 나뉘는 인생을 사는 캐릭터였다. 억척스럽게 생활했던 1부부터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들끓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2부,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3부까지. 이에 염혜란은 2부와 3부에 분장을 하면서 인물의 한 생애를 연기했고,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내면에 축적시키면서 '김경자 그 자체'가 되는 열연을 펼칠 수 있었다.

염혜란은
염혜란은 "김경자의 분장은 김모미의 마스크 같았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라고 회상했다. /넷플릭스

특히 연기할 때 제약이 될 것 같았던 분장은 오히려 염혜란에게 자유를 줬다고. 그렇게 그는 아들을 잃고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에 까무러치는 오열로 눈물샘을 자극하더니, 복수에 혈안이 된 채 장총을 든 강렬한 액션신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염혜란은 "배우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그 인물 같을 때거든요. 분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염혜란의 분장은 김모미의 마스크 같은 거였죠. 가장 자유롭게, 거리낌 없이 제 얼굴을 쓸 수 있었어요"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염혜란은 배우로서 연기의 자유를 느꼈고, 사람으로서 장르물의 재미를 깨닫게 됐다. 김 감독의 탁월한 안목과 연출을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은 그는 "사실 전 장르물의 재미를 몰랐어요. 흉악한 범죄와 칼부림이 일어나는 무서운 세상인데, 작품에서 3명 이상 죽는 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마스크걸'은 '그냥 우리가 만들어 내는 재미'라는 게 느껴졌어요. 장면을 세련되게, 미학적으로 만드는 감독님 덕분에 장르 안에서 노는 느낌을 받았어요"라고 덧붙였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염혜란은 '공부와 체질이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1999년 극단 '연우무대'로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2003년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에 출연하며 영화로 데뷔한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쳤다.

'도깨비'에서 지은탁(김고은 분)을 괴롭히는 악독한 이모 연숙 역을 맡아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동백꽃 필 무렵'에서 철부지 남편 규태(오정세 분)와 이혼하는 변호사 자영로 분해 절제된 카리스마를 발산하면서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 그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3월 공개된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시작으로, 최근 종영한 tvN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에 이어 '마스크걸'까지 올해에만 결기 전혀 다른 세 개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그려내며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염혜란은
염혜란은 "언제 봐도 촌스럽지 않은 클래식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넷플릭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배우지만, 결코 익숙하거나 진부하지 않다. 늘 얼굴을 갈아 끼우는 듯한 연기 변신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에 우연이나 운은 없었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캐릭터를 고민하면서 극강의 디테일로 작품을 완성하는 염혜란의 노력만 있을 뿐이었다.

"천의 얼굴이 아니라 천의 작품만 있을 뿐이죠. 그런 작품 안에서 제가 얼마나 다양하게 연기할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비슷하지만 다른 걸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앞으로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요. 저보다 연기 잘하는 사람은 한 2억 명 있어요. 결국 좋은 작품을 만나야 되는 것 같아요."

염혜란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자신의 맡은 바를 다 해낼 계획이다.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게 제 원동력"이라는 그는 '어떤 배우로 성장해야지' '몇 년 후에 주인공 해야지'라는 게 없었어요. 주어진 작품을 충실히 해나갈 뿐이죠"라며 앞으로의 각오를 다졌다.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주저앉을 것 같았고요. 고생한 만큼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는데, 알아봐 줘서 고맙죠. 사실 제가 약간 유행을 타는 것 같아요(웃음). 지금 핫 한게 지나고 보면 촌스럽잖아요. 고전이 촌스럽지 않은데, 되기 어렵죠. 저는 클래식이 되고 싶어요. 언제 봐도 본질에 닿아있는 그런 배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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