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니'·'오세이사'까지 강세…극장 찾은 관객들 "기대작도 해외 작품"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오랜만에 몰래 만화책 보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슬램덩크' 관람객 D 씨)
국내 극장가에 해외 영화·애니메이션 웃음꽃이 폈다. 특히 추억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3040 관객들의 발길을 움직이며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6일 서울의 CGV와 메가박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난 관객들의 대부분은 '슬램덩크', '아바타2', '상견니',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이하 '오세이사')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이날 인터뷰에 응한 10여 명 가운데 단 한 명만이 국내영화 '교섭'을 예매해 해외작품이 점령한 국내 극장가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었다.
6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900년대 인기 만화 원작 '슬램덩크'를 영화화한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하 '슬램덩크')는 2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10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 중이다. 역대 글로벌 흥행 4위에 오른 '아바타2'는 국내에서만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호조를 보였다.
여기에 탄탄한 팬층을 자랑하는 대만 로맨스영화 '상견니'와 입소문으로 흥행 역주행 중인 일본의 멜로영화 '오세이사'가 가세하며 흥행 열풍을 이끄는 분위기다.
반면 일별 박스오피스 10위권(6일 기준) 순위를 살펴보면 국내영화는 '교섭'과 '영웅', 그리고 '유령' 총 3편으로, 국내 작품은 흥행 부진과 함께 스크린에서 밀려나는 분위기다.
'슬램덩크'를 비롯해 '아바타2', '상견니', '오세이사' 등 해외작들이 최근 국내 작품과 경쟁에서 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이들 화제작들의 공통적인 인기 요인은 관객의 '추억'과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아바타2'는 지난 2009년 '아바타' 첫 시리즈가 개봉한 지 13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다. 전편은 월드아이드 역대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아바타'만의 컴퓨터 그래픽(CG)은 당시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고, 13년이 지난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어떤 기술력 진화를 보여줄지 이목을 집중시켰다. 때문에 그때의 그 감동을 기억하며 극장을 찾는 이들도 다수였다.
30대 여성 A 씨는 "'아바타1'을 재밌게 봤다 보니 2도 보고 싶었다"며 예매 이유를 밝혔다. 다소 뒤늦게 관람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아바타'는 CG이지 않나. 극장도 발전한 만큼 돌비시네마 3D 명당자리에서 보고 싶었다. 개봉하자마자 예매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더라. 좋은 자리가 너무 없어서 예매될 때까지 미루다가 오늘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슬램덩크'는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린다.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연재된 만화 '슬램덩크'가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탄생했다. 작품은 1990년대 추억을 간직했던 3040 팬들의 향수를 제대로 불러일으켰다. 개봉 후에는 1020세대까지 사로잡으며 신드롬을 형성했다.
20대 여성 B 씨는 신드롬으로 인해 극장까지 찾은 관객이었다. 그는 "평소 영화관을 자주 오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원작도 본 적이 없다. 오빠 방에 만화책이 있었던 기억만 난다"고 말했다.
함께 온 C 씨는 "주위에서 '슬램덩크'를 하도 많이 추천하기도 하고, SNS에도 재밌다는 후기가 많이 올라와 보고 싶어져서 예매했다"고 밝혔다.
반대로 30대 남성 D 씨는 오직 '슬램덩크'를 위해 연차까지 냈다. 그는 "같이 보기로 한 친구랑 예매하고 3일 동안 '슬램덩크' 이야기만 했다. 오랜만에 몰래 만화책 보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교섭'을 예매한 E 씨는 "'슬램덩크'는 주말에 남자친구랑 보기로 해서 오늘은 그냥 '교섭'을 보게 됐다"며 "남자친구가 먼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 사람이 아닌데, '슬램덩크'는 보자고 하더라. 주변 친구들은 이미 다 봤는데 우린 좀 늦은 편이다. 사실 난 만화책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서 며칠 전부터 OTT로 다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상견니'는 리쯔웨이와 황위쉬안이 우연히 만나 묘하게 설레는 기시감을 느끼면서 시작되는 멀티버스 로맨스 영화다. '상견니' 또한 동명의 대만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며 기존 팬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작품의 주역 배우인 가가연 허광환 시백우는 영화 공개를 기념해 한국을 찾아 팬들과 만나기도 했다.
20대 여성 F 씨는 '상견니'의 화제성에 관해 "아무래도 마니아층이 있다 보니 인기가 있는 것 같다. 특히 2030 여성들이 많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실제로 벌써부터 다음 예매를 계획하는 관객도 있었다. G 씨는 "허광한이 100만 관객 넘으면 또 내한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또 보러 올 계획이다. 아직 못 본 친구들도 그 말 때문에 꼭 본다고 하더라"며 웃어 보였다.
해외 작품의 이유 있는 흥행과 반대로 국내작품은 관객들의 흥미를 끌진 못한 모양새다.
가장 최근 개봉한 '교섭'은 100만을 겨우 넘어섰다. 개봉 첫 주 내내 흥행 1위였지만, 이마저도 '아바타2'와 '슬램덩크'의 역주행을 이겨내지 못했다. 설 연휴를 겨냥해 나왔음에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셈이다.
앞서 인터뷰한 관객들 중 다수는 국내영화를 본 지 꽤 됐으며, 현재 개봉한 영화 중 보고 싶은 영화도 없다고 답했다. E 씨는 "관심 가는 영화가 없다 보니 극장도 잘 안 찾게 된다. 그러면 또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도 안 보게 되는 것 같다"며 "눈에 띄는 한국 영화도 없다"고 지적했다. F 씨는 "개봉한 영화 중에도 없지만, 개봉 예정 중에서 살펴도 기대작은 '앤트맨과 와스프: 퀸텀매니아'('앤트맨3')다"고 말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현재 극장가의 상황에 관해 "처참하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를 두고 "특정 한 작품만 유독 잘 된 게 아니지 않나. '아바타2'부터 '슬램덩크', 심지어는 큰 기대를 받지 못 했던 '오세이사'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안방을 장기간 그리고 다수에게 내주고 있는 모양새"라고 표현했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앞서도 몇 차례 언급됐던 바 있다. 3년에 걸친 코로나19로 인한 영향, OTT의 확장과 성장 등 다양한 이유로 환경이 급변하며 발생한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외작품들과 성적표가 극명하게 엇갈리니 흥행 실패가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해외 작품은 현재의 극장 흐름과 원작 인기에서 비롯된 흥행"이라면서도 국내 작품의 부진은 해외작의 흥행과 별개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영화전문기자 H 씨는 해외작의 흥행에 관해 "보통 2~3월은 극장 비수기에 속한다.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해 손해를 많이 본 영화 제작사 및 배급사 측은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기 위해서라도 개봉을 늦추는 경우가 있다. 그 사이에 '슬램덩크' '상견니' 등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 흥행을 이끌고 있다. 특히 '슬램덩크'는 워낙 대중적인 작품인 만큼 추억을 곱씹기 위해 찾는 경향이 많다. 여러 가지로 흐름을 잘 탄 흥행"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국내작의 부진에 대해서는 "관객들이 한국 작품에 대한 기대화 흥미를 잃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I 씨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설 연휴 노리고 개봉한 첫 텐트폴 영화들의 만듦새가 떨어졌다는 점이다. 배우들의 이름값이 떨어지는 영화가 아니었는데도 개봉 초반 입소문을 못 탔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관객들이 찾을 만한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고 해석했다.
이어 "2월에 '앤트맨'도 나오는데, 앞으로도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극장 관람료 인상이나 OTT 때문에 관객들의 눈은 까다로워졌다. 앞으로는 코로나19를 이유로 들기도 힘든 상황이다. 결론적으로는 당연하지만 어려운 말밖에 할 수 없다. 좋은 영화를 잘 만들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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