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더팩트｜박지윤 기자] 'D.P.'부터 '약한영웅'까지 연타석 흥행에 성공했다. 한준희 감독은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혹은 어디선가 봤을 법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군대의 어두운 면을 다루며 20대 청춘의 이야기를 선보였던 한 감독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의 불안정한 정서를 그리며 또 한 번 묵직한 공감의 힘을 선사했다.
지난달 18일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극본·연출 유수민, 이하 '약한영웅')은 상위 1% 모범생 연시은(박지훈 분)이 처음으로 친구가 된 수호(최현욱 분), 범석(홍경 분)과 함께 수많은 폭력에 맞서 나가는 과정을 그린 약한 소년이 강한 액션 성장 드라마다.
미장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유수민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여기에 넷플릭스 'D.P.'로 각종 상을 휩쓴 한 감독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해 기획 단계부터 대본과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유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작품은 강력한 글로벌 팬덤을 구축하며 최고의 학원물로 자리 잡은 웹툰 '약한영웅'을 원작으로 한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작품에서 다뤄진 이야기가 원작의 주요 무대인 은장고등학교가 아닌 연시은이 전학을 떠나기 전까지의 과정을 그린 프리퀄이라는 것.
한 감독이 '약한영웅'을 시리즈화하고 원작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부분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연시은은 두뇌가 명석하고 싸움도 잘하는데, 모두가 YES를 외칠 때 NO라고 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이렇게 했었나? 그렇게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물을 좋아하거든요. 이 인물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라고 설명했다.
또한 감독이 아닌 크리에이터로서 '약한영웅'에 힘을 보탠 이유도 분명했다.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서 유 감독을 만난 한 감독은 그의 작품에서 정서적인 따뜻함을 느꼈고 그런 종류의 에너지가 이번에도 담기길 바랐다. 그는 "제가 차갑고 냉정하다는 건 아니지만 이번 작품에는 서정적인 부분이 있으면 좋겠더라고요"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크리에이터로 활약한 한 감독은 여전히 직업의 정의를 찾아가는 중이다. 대본 작업부터 편집까지 모든 과정에서 유 감독과 논의하며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켰지만, 그럼에도 감독과 크리에이터의 활동은 명확하게 달랐다.
"이 위치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아직 찾아가고 있어요. 감독님이 좋아하고 잘하는 걸 객관적으로 보려는 포지션이죠. 연출자로서는 객관적이기 어렵잖아요. 그런 부분을 냉정하게 보려고 했죠. 감독의 색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인 거 같아요."
'약한영웅'은 유수민 감독의 첫 장편 시리즈이자 배우 박지훈 최현욱 홍경 등 신예 배우들로 주연 라인업을 구축하며 공개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웨이브에 따르면 '약한영웅'은 공개 직후 단숨에 2022년 유료 가입자 견인 1위를 기록했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통합검색 및 콘텐츠 추천 플랫폼인 키노라이츠에서 정상에 오르며 뜨거운 화제성을 입증했다.
이에 한 감독은 걱정이 많이 됐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유 감독과 배우들을 향한 두터운 믿음을 드러냈다. 그는 "저희가 오디션을 본 게 아니라 모두 캐스팅했어요. 그 이유는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였어요. 많은 시간 그들을 봐왔던 거 같아요. 독립영화부터 웹드라마, 무대까지 다 찾아봤어요. 사실 저희가 성적은 미리 알 수 없지만, 배우 필모그래피에 누가 되지 않게끔 작품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제작자에게 중요한 가치이자 덕목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약한영웅'을 관통하는 주된 키워드는 바로 '공감'이다. 연시은과 안수호, 오범석은 다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며 각자의 행동에 개연성과 타당성을 부여했다. 그렇게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시청자들을 납득시켰다.
"2시간짜리 영화였다면 한 명을 부각시키고 동력을 탈 수 있지만 저희는 8개의 이야기잖아요. 시청자들이 세 인물을 다 납득해야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누군가에는 공감할 수 있는 구석이 하나는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오범석 같았는데 안수호처럼 되고 싶었어', '난 연시은 같았는데 그렇게 행동하지는 못했어' 등 특정 워딩으로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다들 관통할 수 있는 시기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그려보고 싶었어요."
박지훈이 가진 독보적인 분위기와 최현욱의 대체 불가한 매력, 홍경의 훌륭한 연기력. 각기 다른 장점과 특색을 장착한 세 배우는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본 한 감독은 "이들을 잘 소개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 더 좋은 필모그래피를 쌓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 시작점에서 제가 몫을 보탤 수 있어서 좋네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시청자들이 원하고 있는 시즌 2에 관해서는 "염두하고 만들지는 않았어요. 보시는 분들이 어떤 반응을 주시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지금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아직 공개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어요. 유지되는 수치가 중요하죠"라고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약한영웅'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폭력과 집단의 부조리를 그린다는 점에서 'D.P.'의 하이틴 버전 같다는 평이 있었고 누군가는 기시감이 든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그렇기에 한 감독이 비슷한 결의 소재에 끌리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또한 한 감독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제작자 입장에서 이 같은 이야기가 꾸준히 통하는 이유도 함께 물어봤다.
"대한민국을 거대한 조직 사회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곳에서 태어나서 그런 걸 수 있지만, 대부분 조직 안에 있는 개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해요. 조직 내에 있는 개인이 다른 생각을 하긴 어렵잖아요. 정해진 논리나 규칙을 따라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안에서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해요. 저는 어렸을 때 그러지 못했지만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는 인물이 늘 있었던 거 같아요. 'D.P.'의 안준호와 연시은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고지식하지만 잘못된 걸 바로 잡잖아요. 저희도 이를 애써 봐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거 같아요."
"저는 '이게 재밌고 좋은 이야기인가?'라는 걸 가장 먼저 고민해요. 어떠한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희가 땅에 발붙이는 이야기를 했을 때 공감이 된다면 현실에 그런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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