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권 갈등' 이후 공개된 감독판, 판단은 시청자의 몫?
[더팩트|박지윤 기자] 이주영 감독과 쿠팡플레이의 '편집권 갈등'이 수면 위로 떠 오른 가운데, '안나' 감독판이 공개됐다. 이에 대중들은 작품을 작품으로만 감상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결국 6부작과 8부작을 비교하며 정작 논란의 본질은 잊게 되는 아이러니함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첫 공개된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극본·연출 이주영)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로,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공개와 동시에 데뷔 첫 주연을 맡은 수지의 열연으로 관심을 모았고, 이에 힘입어 쿠팡플레이 인기작 TOP 20에서 18일 연속 1위(7월 11일 기준) 자리를 차지했다. 이렇게 '안나'는 쿠팡플레이 최고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하지만 작품 종영 후, 이주영 감독은 지난 2일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시우를 통해 "쿠팡플레이 측이 일방적 편집으로 회차를 축소했다. 분량뿐 아니라 서사와 촬영, 편집, 내러티브의 의도 등이 모두 훼손됐다"며 "단독으로 편집한 현재의 6부작 '안나'에서 저의 이름을 삭제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제가 전달한 8부작 마스터 파일 그대로의 '안나'를 감독판으로 릴리즈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쿠팡플레이는 "수개월에 걸쳐 이주영 감독에게 수정 요청을 전달했으나 감독이 거부했다"며 "당사는 제작사의 동의를 얻고, 계약에 명시된 권리에 의거해 원래의 제작 의도와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했다. 그 결과 시청자들의 큰 호평을 받는 작품이 제작됐다"고 반박했다.
이주영 감독과 쿠팡플레이의 이견이 좁혀지고 있지 않은 가운데, 쿠팡플레이는 "감독의 편집 방향성을 존중해 시청자들에게 약속한 감독판 8부작을 공개하게 됐다"고 밝히며 8부작 '안나'를 공개했다.
6부작과 8부작의 차이는 극 초반부터 극명하게 드러났다. 6부작 1화에는 유미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던 어린 시절부터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한 고등학생 때 사건, 재수 실패 후 펼친 거짓 대학 생활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진짜 안나가 있는 갤러리에서 일하다가 떠나게 되는 과정 등 굵직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런가 하면 8부작은 이를 1, 2화로 나눠서 풀어냈다. 어린 유미(최소율 분)에게 영어를 가르친 외국인 여성과의 관계성과 무대 위에서 발레를 하는 장면 등은 주인공이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는지를 보여줬고, 전교 1등을 기념해 비싼 청바지를 사주려는 아버지를 말리는 고등학생 유미를 통해 그의 성격을 짐작게 했다.
또한 2화에는 거짓 대학 생활이 들통난 유미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겪었던 불쾌한 일들이 새롭게 담겼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진상 손님과 내조를 운운하는 고시원 충무 등은 유미를 '리플리 증후군 환자'로만 취급하지 않고, '왜 유미가 남의 인생을 훔치는 선택을 하게 됐는지'까지의 서사를 부여했다.
여기에 삼수를 시작하는 것과 거짓말을 들킨 후 연인에게 변명하는 유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는 장면 등이 추가되면서 안나가 되기 전 유미의 상황이나 심리 변화를 친절하게 설명했다.
8부작 후반부는 각 캐릭터의 과거 에피소드에 집중했다. 5화에서 어린 시절 현주(정은채 분)는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선생님에게 쓴소리를 듣자 악기를 부시고, 6화에서 지원(박예영 분)은 학교 선생님에게 폭력을 당한다. 7화에는 제대 후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훈(김준한 분)이 가난한 아버지를 대신해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며 부동산과 사업에 발을 들이게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처럼 감독판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면들로 주인공을 비롯한 주위 인물의 서사를 설명하면서 캐릭터의 심리 및 복선을 치밀하게 설계했다. 시청자들 또한 6부작에서 다소 의문을 남겼던 캐릭터의 행동이나 스토리 전개가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빠른 전개와 높은 흡입력을 경험했기에 8부작의 일부 전개가 늘어지면서 긴장감과 몰입도를 다소 떨어트린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또한 쿠팡플레이에게 좋은 일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감독판을 보기 위해 다시 이용권을 결제하는 시청자들이 있는가 하면, 해당 논란으로 '안나'를 보지 않았던 대중들도 새로운 관심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권 갈등'이 알려진 후 8부작 '안나'를 마주한 시청자들은 감독판에 담긴 감독의 의도가 아닌 6부작 '안나'와의 차이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각자가 가진 장단점을 언급하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버전에 손을 들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두 가지 버전 '안나' 사이에 놓인 논란의 핵심을 흐리고 있다.
쿠팡플레이가 어떠한 사과도 없이 8부작 '안나'를 공개하며 새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저작인격권' 등을 주장한 이주영 감독의 법적 대응 과정에 이목이 집중된다.
[연예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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