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나의 새로운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기회를 잡는 건 개인의 능력이다. 우연히 만난 배우의 길,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직하고 묵묵하게 한 길을 걸어오며 자신의 것으로 만든 배우 수지는 마침내 '안나'로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지난달 29일 배우 수지와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카페로 향했다. 수지, 그리고 '안나'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가장 인원이 적은 오후 2시 타임을 신청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10명의 취재진이 모였고, '안나'의 화제성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흰 티와 청바지를 입고 화장기가 없는 수수한 얼굴로 취재진을 맞이한 수지에게서 안나의 얼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지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극본·연출 이주영)에서 유미와 안나, 두 개의 이름과 삶을 가진 캐릭터를 만나 열연을 펼쳤다. 장편 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하는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구차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유미는 이름부터 가족과 학력, 그리고 과거까지 뒤바꾼 채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화려한 인생의 안나로 변해간다. 이를 연기한 수지는 1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20년간의 다층적인 변화를 섬세하고 밀도 높은 감정 연기로 표현하며 '인생캐'이자 '인생작'을 탄생시켰다.
작품의 원래 제목은 '당신도 아는 안나'였다. 이를 보고 호기심에 이끌려 대본을 펼친 수지는 결말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기시감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유미처럼 거짓말하고 포장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수지는 "주인공의 인생이 안쓰러운데 묘했어요. 응원하면 안 되는데 응원하게 되는 미묘함이 매력적이었죠. 대본을 읽으면서 점점 유미를 응원하게 됐고, 시청자들도 이 마음을 같이 느끼길 바랐어요"라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인물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라 한 여자의 인생을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랐어요. 연기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캐릭터였죠. 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하지만 뭔가를 표현하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느낌으로요. 삶에 찌든 모습은 누구나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과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안나'는 수지의 데뷔 첫 단독 주연이자 색다른 연기 변신이 예고돼 더욱 관심을 모았다. 이에 힘입어 작품은 공개와 동시에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이 중심에는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과 삶의 의욕을 잃은 공허한 눈빛으로 고달픈 현실을 살아가는 유미를 완벽하게 소화한 수지의 새로운 얼굴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제가 아는 저의 얼굴은 그런 얼굴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놀라길래 '내가 그동안 잘 숨겼나 보다'라고 느꼈어요"라고 덤덤하게 말해 놀라게 한 수지였다. 또한 "유미가 여러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노력하려는 느낌을 내려고 했어요. 백화점에서 일할 때도 집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이를 이기려고 한층 더 웃었어요. 저도 직장인의 마음을 잘 알거든요"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리플리 증후군'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구체적인 상황이나 설정이 다르기에 수지는 굳이 참고하지 않았다. 원작도 읽지 않았다. 대신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위해 심리상담가를 만나 자문을 구하며 전문 지식을 쌓았고, 유미의 입장으로 일기를 쓰면서 오롯이 캐릭터 그 자체에 집중했다. "결국 수지의 일기가 됐지만요"라며 너스레를 떤 그였지만, 이는 자신의 불안까지 마주하며 치열하게 캐릭터를 연구한 흔적이었다.
"우울과 불안은 에너지나 심장박동부터 다르대요. 이를 알고 나서는 유미의 우울함이 아닌 불안함이 잘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래서 저의 불안을 마주했죠. 자신의 불안을 마주하고 이를 끄집어내서 연기하는 게 참 이상한 직업이구나 싶기도 했지만, 이런 작업이 유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제가 일기를 썼다 보니까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작품을 했는지 기록이 돼 있어요. 이 작업을 하면서 크게 남은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유미의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서 저의 옛날을 되돌아봤고,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니까 안쓰럽기도 했죠."
2010년 걸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한 수지는 2011년 KBS2 '드림하이'를 시작으로 가수와 배우 활동을 병행해왔다. 수지에게 연기는 '우연히 만난 운명'이었다. 수지 또한 "옛날에 어느 책에서 '뜻하지 않은 길을 가다가 뜻하지 않게 좋은 걸 만난다'와 같은 맥락의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저에게 연기가 그런 느낌이에요. 가수를 하다가 갑자기 배우 일을 하게 됐지만, 너무 좋은 길이었죠. 이 길을 잘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올해로 데뷔 12년 차가 된 수지는 "10대부터 20대까지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없었어요. 너무 앞만 보고 달렸죠"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를 듣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미쓰에이로서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수지는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 '스타트 업', 영화 '건축학개론' '도리화가'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 정말 쉼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대의 끝자락에 '안나'를 만난 수지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깼고, '인생캐'를 얻으며 앞으로의 활약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맞이할 준비를 한 수지는 "저의 30대는 멋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어요. 30대에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일하고 싶어요. 저를 되돌아보면서 천천히 저의 속도를 가지고 싶죠. 저는 '국민 첫사랑'이라는 수식어가 너무 좋아요. 계속 가져가고 싶고 다 갖추고 싶어요. 인간은 여러 면이 있잖아요. 저 또한 제 안에 여러 모습이 있거든요. 그런 모습을 차근차근 다 보여드리고 싶어요."
[연예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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