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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인사이드⑧-박성일] K-OST, 드라마가 만든 새로운 한류(상)

  • 연예 | 2021-05-17 00:00
박성일 음악감독은 지난해 '이태원 클라쓰' OST를 선보여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드라마에 쓰였던 음원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했다. /이선화 기자
박성일 음악감독은 지난해 '이태원 클라쓰' OST를 선보여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드라마에 쓰였던 음원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했다. /이선화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소프트파워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며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대표적인 'K-콘텐츠'로 내세웠습니다. 특별히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기도 했죠. K-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여러모로 힘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주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더팩트>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류를 이끄는 '한류 콘텐츠 메이커'를 직접 만나 K-콘텐츠의 성공과 가능성,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와 해결법을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한류 인사이드'를 통해 글로벌 한류의 현주소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이태원 클라쓰' 음악감독이 말하는 OST 시장의 미래

[더팩트 | 유지훈 기자] K-드라마가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TV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순풍을 탔다. 지난해 한국 방영과 함께 해외 시청자를 만난 tvN '사랑의 불시착' '사이코지만 괜찮아', JTBC '이태원 클라쓰' 등의 작품이 예상을 웃도는 호응을 끌어냈다. "새로운 한류 붐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에 힘이 실리는 사이 드라마 OST 시장도 어떤 희망찬 미래를 엿봤다.

박성일은 지난해 16%(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을 웃도는 시청률로 인기리에 종영한 '이태원 클라쓰'의 음악감독이다. 드라마는 박새로이(박서준 분)의 인간적 성장과 창업 신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쳤다. 멜로 비중이 크지 않은 작품임에도 OST는 대성공을 거뒀다. 가호 '시작', 김필 '그때 그 아인', 하현우 '돌덩이' 등이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했다. '이태원 클라쓰'의 글로벌 인기와 함께 OST도 세계인의 조명을 받았다. 현지 음원차트에 오르는 것은 물론, 바다 건너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DJ로부터 리믹스 제안도 있었다.

요행이 아닌 오랜 기간 쌓은 노하우가 끌어낸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장나라 '아마도 사랑이겠죠', 페이지 '미안해요' 등을 작곡했던 그는 2002년 MBC '네 멋대로 해라'로 OST 계에 발을 들였다. 음악감독으로서 처음 이름을 올린 작품은 tvN '미생'이다. 이후 tvN '시그널' '나의 아저씨'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OCN '구해줘' 등의 음악을 만들어왔다. 이 히트작들과 함께 쌓인 값진 경험들, 그는 이를 토대로 K-OST의 밝은 미래를 그려나간다.

- 드라마 음악감독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해주자면.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쳤고 그러다 보니 예고에 갔어요. 중학교 때 미디를 접하긴 했는데 워낙 고가라 흥미만 가지고 있었어요. 피아노를 치고 미디를 공부하는 사이 어영부영 작곡가로 데뷔했더라고요(웃음). 당시 아이돌이 등장하고 드라마가 산업화되던 시기였어요. 드라마 음악은 아르바이트였는데 어느새 업이 됐어요.

-히트곡을 보유한 작곡가였는데 음악감독으로 전향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특별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인가.

그전까지는 가수에 초점을 두고 곡을 써왔어요. 그러다 보니 가수가 소화할 수 있고, (가수가)원하는 장르로 음악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OST는 그런 제약이 없더라고요. 내가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만 있다면 힙합이든 록이든 다 상관없더라고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박성일 음악감독은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이태원 클라쓰'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구해줘'(왼쪽위부터 시계방향) 등 인기 드라마의 OST를 작업해왔다. /tvN, JTBC 제공
박성일 음악감독은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이태원 클라쓰'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구해줘'(왼쪽위부터 시계방향) 등 인기 드라마의 OST를 작업해왔다. /tvN, JTBC 제공

-지금까지 작업물들을 짚어가면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음악감독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미생' OST는 파격적인 가창자로 화제를 모았다.

과거 OST 시장은 제작사가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하는 형태였어요. 음악감독은 주로 스코어를 작곡하고요. 거기다가 그냥 '가지고 있는 곡 하나 줘봐. 드라마에 쓰게' 식인 경우도 많았어요. 그리고 작품 자체의 성공보다 OST 자체의 상업적 성공에 무게를 두다 보니 유명 가수를 섭외했죠. 이런 형태로 작업하게 되면 노래의 방향성과 드라마의 방향성이 맞지 않게 돼요. 저와 감독님은 작품 자체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면 '미생'에 넣지 않기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기존 OST와 차별성이 강해졌어요.

-유명 가수가 아닌 이승열, 장미여관, 한희정 등 인디로 분류되는 뮤지션을 선택한 배경이 궁금하다.

각각 '날아' '로망' '내일'이라는 노래를 불러주셨죠. '미생'의 테마가 자신의 꿈을 위해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그런 작품의 OST를 유명 가수가 부른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았어요. 지금은 유명하시지만 당시만 해도 독창적인 음악을 하던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과 드라마 OST는 매칭이 어려웠어요. 많이들 반신반의했지만 독창적이면서도 위안을 주는 목소리가 꼭 필요했어요. 다행히 이건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어요. 김원석 감독님도 미리 이걸 생각하고 계시더라고요. '미생'의 OST는 연출 의도의 연장선에 있었고 이후 OST 시장이 비슷한 방식으로 바뀌어갔어요.

-'시그널'의 대표곡은 장범준의 '회상'이다. 장범준의 OST 데뷔곡이기도 한데.

OST를 전혀 부르지 않는 가수분들이 많아요. 조심스럽게 제안했는데 장범준 씨는 흔쾌히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고요(웃음). 어렵게 모셔왔는데 '회상'은 드라마에서 딱 한 번 썼어요. 그런데 임팩트가 강했어요. 4부에서 조진웅 씨가 극장에서 우는 장면이요.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장면이고 '회상'은 거기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던 거죠.

-'시그널'은 유독 과거의 노래가 많다는 느낌이다.

이 작품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옛 노래가 많긴 많죠. '시그널'은 초기 개발 단계부터 과거 음악을 많이 쓰기로 된 상황이었어요.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시대를 반영해야 했어요. 청각적으로 과거를 인식시켜주는 것은 그 시대 음악이죠. 리메이크가 많았는데 이게 단순 리메이크는 또 아니었어요. 더 레트로하게 들려주기 위해 빈티지한 장비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녹음하고 그랬어요. 듣는 사람들은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작은 디테일이 모였을 때 생기는 힘은 아무도 못 이긴다고 저는 생각해요. 들리지도 않는 노이즈가 무슨 의미일까 싶으시겠지만 그게 쌓인 덕분에 낼 수 있던 결과물이에요.

-'구해줘'는 작품 자체는 성공했지만 OST 히트곡은 없다.

국내 드라마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종교인을 괴팍하게 그린 작품이었어요. 촬영 전부터 기획 단계부터 이슈가 많았죠. 특정 종교를 비하할 의도는 없지만 시선에 따라는 민감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음악으로 목회자가 아닌 악랄한 사기꾼이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 더 괴팍하게 갔어요. 주술만 30초가 나오기도 했죠. OST의 판매량을 추측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구해줘'는 예측을 할 수 없었어요. 처음부터 이 음악으로는 수익이 없을 수 있겠다 싶었죠. 대중성과 정 반대에 있는 OST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박성일 음악감독은 '시그널' OST를 작업하며 레트로 감성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빈티지한 장비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호기심스튜디오 제공
박성일 음악감독은 '시그널' OST를 작업하며 레트로 감성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빈티지한 장비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호기심스튜디오 제공

-'나의 아저씨'는 어두운 작품이다. 하지만 '구해줘'처럼 그 어두운 분위기를 부각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너무 비참한 현실을, 너무 리얼하게 그리고 있잖아요. 어디에 무게를 둘지 많이 고민했어요. 할머니를 카트에 담고 병원에서 도망치는 장면 같은 게 리얼하게 그려지면 아프고 슬프잖아요. 그래서 감독님은 많은 부분을 동화적으로 연출하고 싶어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음악들도 아픈 부분을 건드리지만 다 듣고 나면 위로가 되는 것들로 추렸어요. 전체적으로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어른이 되기 위해 모두 통증을 느낀다'는 테마로 접근했어요.

-'나의 아저씨' OST인 '어른'을 통해 손디아가 주목받았다. 'Dear Moon'을 부른 제휘도 마찬가지다. 음악감독으로서 뿌듯한 일일 것 같다.

감사한 일이죠. 제휘는 그전까지 능력 있는 작곡가로서 많이 알려져 있었어요. 가이드를 받았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다른 가창자 없이 직접 불러달라고 했었고요. 'Dear Moon'이 드라마에 많이 삽입되진 않았는데 동화 같은 느낌을 주는 장면에 들어가서 더 임팩트가 컸던 것 같아요.

손디아는 가이드 보컬 동료로 만났어요. 당시 우리에게는 노래를 정말 잘하는 가수였지만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없었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녀가 원하는 지점은 일반적인 가수들과 달라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러요. 그게 참 멋진 것 같아요.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는 음악 드라마다. 음악의 역할이 큰 만큼 고충도 많았을 것 같다.

처음으로 촬영장에 나가서 케어를 해야 했던 작품이에요. 음악은 후반 스태프라서 현장에 나갈 기회가 없어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만큼은 일반 스태프만큼 현장에 많이 나갔어요. 정경호 배우가 참 고생 많이 했어요. 기타, 보컬 연습을 매일같이 했어요. 그 덕분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아주 잘하죠?(웃음) 저희도 처음 해본 시도였고 노하우가 없으니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그래도 참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어요.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음악감독으로서 아주 중요한 작품이에요. 그간에는 가수들을 상대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배우를 직접 지도해야 했어요. 접근하는 언어 자체가 가수들과 달라요. 노래가 많다 보니 우리 스튜디오 사람들보다 배우들이 녹음실을 더 자주 왔어요. 노하우가 없어서 그런지 정말 엄청난 경험을 준 작품이에요. 이제는 음악감독으로서 현장 케어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요.

-드디어 '이태원 클라쓰'까지 왔다. 김성윤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는데 결과물이 굉장히 좋았다.

제안을 받아 함께하게 됐는데 처음 겪어보는 작업 스타일이었어요. 음악이 완성되고 나서 그것과 관련된 장면을 찍으시더라고요. 음악을 듣고 거기에 딱 맞는 연출을 설계하시는 거죠. 처음에는 '왜 촬영 전까지 완성된 음악 파일이 필요하지' 했어요. 결과물을 보니 알게 됐어요. 가사의 호흡까지 감독님은 정리해서 영상을 만들어내시더라고요.

'이태원 클라쓰'에 삽입된 연주곡 'Defense'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활동 중인 DJ 알렉스 프라츠가 리믹스하기도 했다. /호기심 스튜디오 제공
'이태원 클라쓰'에 삽입된 연주곡 'Defense'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활동 중인 DJ 알렉스 프라츠가 리믹스하기도 했다. /호기심 스튜디오 제공

-'이태원 클라쓰'는 다른 드라마에 비해 OST 양도 많은 편이다.

일반 작품의 2.5배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 곡들을 두루두루 효과적으로 쓰시더라고요. 많은 곡을 드라마에 넣으면 복잡하게 느껴지는데 '이태원 클라쓰'는 그렇지 않았어요. 대부분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키는 데 쓰였어요. 그래서 딱 맞다는 인상을 줬어요. 결코 'OST로 대박을 내자'는 마음으로 작업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활용을 잘해주신 덕분에 이정도 인기를 끌어낸 거 아닌가 싶어요. OST는 작품에 잘 스며들어야 그 진가가 발휘한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줬어요.

-해외에서 인기가 있던 작품인 만큼 OST도 사랑받았을 것 같다.

처음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고 들었을 때 파급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일본 시장은 지금까지 주로 TV로 방송된 드라마만 인기가 있었거든요.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대요. 현지 지인들이 알려줘서 알게 됐어요. 중국에는 '이태원 클라쓰' 거리라는 게 생겼대요. 거기서 OST를 틀어놓고 이태원 포장마차처럼 장사를 한다고요. 저는 음악으로 또 다른 한류가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건 해외에서도 '시작'이 가장 인기가 많대요. 2위는 '그때 그 아인', 3위는 '돌덩이'고요.

-해외에서 OST 작업 의뢰도 늘었나.

중국에서는 꾸준히 연락이 와요. '이태원 클라쓰' 이후에 더 많아진 것 같고 영어권에서도 제안이 와요. 한국에서 기획하고 미국에서 제작 중인 작품도 논의 중인 게 있어요. 제안이 온다고 무턱대고 하진 않으려고 해요. 창작을 하는 사람들과 작품 자체를 보고 고르려고 해요.

- 이탈리아 밀라노를 중심으로 음악 프로듀서, DJ, 라디오 제작자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알렉스 프라츠(Alex Phratz)가 스코어곡 'Defence(디펜스)'를 리믹스하기도 했다.

SNS로 연락이 왔어요. 자기 와이프가 '이태원 클라쓰' 팬인데 'Defence'를 리믹스해 봤다고 들어봐 달래요. 그러면서 자기 프로필을 보내주더라고요. 알렉스 프라츠는 음원을 출시해달라는 제안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선물로 보냈던 것이었어요. 들어보니까 '어? 재밌네' 하게 되더라고요. 그냥 저만 듣긴 아까워서 그의 리믹스와 다른 아티스트들의 버전까지 해서 음원으로 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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