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다. 활동이 줄어든 연예인들의 어려움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고 최근엔 부업이 아니라 마지막 생계를 위해 자영업에 뛰어든 연예인들도 많다. 한때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활동이 뜸해지면서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더팩트>는 이들의 근황과 특별한 사연을 소개하는 영상인터뷰 '요즘 뭐하세요'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술 한잔
[더팩트ㅣ이승우 기자] 배우 김보성은 1990년대 이후 손꼽히는 미남 액션 스타로 활약해온 의리파 배우입니다. 최근 서울 강남 논현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기자와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샤오미 로드FC 027 인 차이나’에 함께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러고보니 꼭 6년 만입니다.
여지없이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한 짙은 검정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왔는데요. 눈빛은 주고 받을 수 없었지만 정겹게 웃음짓는 모습이 건강해 보였습니다. 안부를 묻는 질문에 김보성은 "다행히 코로나 증상도 없고 시력도 크게 나빠지지 않고 있어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선행 뉴스로 언론에 자주 등장합니다. 작년 3월 초엔 대구를 스스로 찾아가 마스크 배포 행사를 진행하고 자가 격리가 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그의 선행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과거 중국 상하이 페닌슐라 호텔에 묵었던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김보성은 기자와 산책을 하던 중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백발의 중국 노인을 발견하고, 그 노인을 일으켜 세워 벤치로 옮겼습니다.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김보성은 "남을 돕는 게 습관이 되면 선행이 일상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보성은 어릴 때부터 남을 돕는 일이 좋았다고 합니다. "어릴적부터 오지랖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학우들을 위해 팔을 걷어 붙이기도 했습니다. 하하하"(웃음)
# 종합격투기...'별일이야 있겠어.'
처음엔 그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오직 백혈병 어린이 소아암 환자를 돕겠다는 의지 만으로 종합격투기를 시작했습니다. 일주일도 안 돼 주변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다 한 쪽 눈마저 다치면 어쩌려고."
2000년 중반부터 백혈병 소아암 어린이 앞장서고 있는 김보성은 2016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웰터급 특별 자선 경기에 나서 유도 선수 출신 프로 4년차 곤도데쓰오(일본)를 상대했습니다. 그때 김보성은 경기 중 눈 부상으로 안와골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김보성은 수술을 받고 다행히 눈 건강을 되찾았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다고 했습니다.
"양쪽 (눈)모두 새까맣게 안 보이는 거예요. 양쪽 모두 실명이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우리 가족을 어떻게 먹여 살릴까 걱정이 들더라구요."
# ‘의리’... 2막 인생
김보성은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대표적 청춘스타로 손꼽히는 배우입니다. 특히 영화 ‘투캅스’를 통해 액션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그의 등에 붙인 '의리'란 이미지 때문에 김보성의 활동 영역은 크게 변화가 왔습니다.
웃고 농담하는 유머는 아니지만 그가 출연한 음료회사의 'OO' CF는 한편의 코믹극 같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유튜브를 통해 해당 CF를 접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겠지만, '항아으리' '신토부르리' '회오으리' '마무으리'를 잇따라 외치는 김보성의 모습은 마치 개그맨처럼 재밌습니다. 이후에도 김보성의 '의리'는 갖가지 패러디를 낳으면서 그의 진가를 톡톡히 보여줬습니다.
이렇듯 김보성은 7년간 '의리' 수식어로 남부럽지 않게 방송가를 누볐습니다. 방송 횟수는 적지만 출연 때마다 외친 '의리'는 그의 가치를 확인시켰습니다. 그래도 연기 활동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요? 연기가 그립지 않은지 물었습니다.
김보성은 "배우 김보성으로서는 조금 한이 있다"며 "그러나 희화적인 나의 모습이 국민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이 모습 그대로 '의리'를 지켜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 아빠 김보성... 공허함
김보성은 10년 전 초등학생 자녀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방송에서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그는 흐뭇하게 바라봤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의 자녀들은 20대가 됐고, 김보성은 성인이 된 두 명의 아들을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춘기 이후부터 대화가 크게 줄어든 탓입니다.
"아들들과 교감하지 못하다 보니 외로움과 공허함이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혼자 소주도 마십니다. 어둠 내린 창가를 보면서 혼자 방에서 명상을 하기도 하죠."
기자도 중학생 딸이 있습니다. 새벽 출근해서 저녁 늦게 귀가하다 보니 자녀와 소통의 시간이 부족한 편입니다. 이러다 멀어지면 어쩌나 걱정도 됩니다. 김보성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당시 김보성에게도 '아들들과 친해질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이 늘 따라다녔다고 했습니다.
"부모들은 짝사랑이라고 하잖아요. 거기서 오는 오는 고독감과 약간의 박탈감도 있죠.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내 품으로 돌아 올 것이라 믿습니다."
20년 동안 물가도 인상됐고, 세상도 변했는데 왜 김보성은 변함이 없을까요. 김보성은 "올해도 선행을 쌓으면서 ‘대한민국 국민’과의 의리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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