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가 밝고 젊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송가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다. 전통적으로 중장년층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트로트 팬층도 훨씬 넓고 깊고 다양해졌다. 덕분에 잊혔던 곡들이 리바이벌 돼 역주행 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무명시절은 있기 마련이고 터닝포인트도 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레전드 가수들 역시 인생을 바꾼, 또는 족적을 남긴 자신만의 인생곡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단 한 두 곡의 히트곡만을 낸 가수들이라면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다. 가수 본인한테는 물론 가요계와 팬들이 인정하는 자타공인 트로트 인생곡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풍자 의미' 담은 SNS 이모티콘, '인생역전 신화'에 한몫
[더팩트|강일홍 기자] "사람들은 민요풍의 노래라고 얘길하는데, 엄밀히 말씀 드리면 '백세인생'은 가요도 민요도 아닌 퓨전 장르예요. 후렴구에 반복되는 아리랑 가락은 우리 민족의 짙은 한을 담았고요. 이런 정서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거부감없이 스며든 게 아닌가 싶어요."
가수 이애란20년의 역주행 신화를 일궈낸 가요계 상징적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그가 부른 '백세인생'은 데뷔 25년 만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거에 절정의 인기를 거머쥐었다. 2015년 이후 각종 음악방송과 가요 경연 프로그램까지 싹쓸이하는 이변을 만들었다. 처음 음반을 낸 지 불과 2년만이다.
"자고 나니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고 해야할까요. 아무튼 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워낙 오랫동안 무명가수로 지냈기 때문에 하루에 스케줄이 열개 스무개씩 밀려드는 상황을 감당하기조차 힘들었으니까요. 남의 얘긴 줄로만 알았던 그 '주체할 수 없는 인기'란 걸 얻고 보니 한마디로 제 정신이 아니었죠."
1990년 KBS에서 방영된 인기드라마 '서울뚝배기'의 OST를 녹음하면서 가수 데뷔하던 시절만 해도 그는 성공의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음반은 제작되지 못했고, 그가 부른 노래 역시 드라마에 삽입되지 못했다. 2006년 첫 음반을 내놓았지만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 '백세시대' 히트까지 그는 무명설움을 주어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았다.
그의 인생곡으로 자리매김한 '백세인생'은 이애란을 온국민 희망 아이콘으로 이끌었다. 데뷔 25년만에 터진 첫 히트곡은 가수 인생 후반전의 위상을 일거에 뒤바꿨다. 소위 '트로트 4대천왕'으로 불리던 현철 송대관 설운도 태진아가 부럽지 않을만큼 정상급 가수로 부상했다.
'6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7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8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9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10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이애란의 '백세인생' 1절)
노래는 SNS 이모티콘의 풍자적 의미전달과 함께 빠르게 대중적 관심을 키웠다. 무엇보다 3인칭 화법 '못 간다고 전해라'의 가사 매력이 은근한 중독성을 더했다. 이애란은 "굳이 어떤 기교를 부려 가창할 필요가 없는 노래"라면서 "일정한 리듬과 쉬운 음률에 따라 개성대로 부르면 된다"고 말했다.
'백세인생'은 두번 이름이 바뀌어 빛을 봤다. 원래 '저 세상이 부르면 이렇게 답하리'란 제목으로 작곡가 김종완이 곡을 썼고 이애란이 불렀다. 이후 '저 세상이 부르면'으로 한 차례 바꿨다가 다시 '백세인생'으로 새롭게 편곡됐다. 대중성을 위해 이전의 국악 느낌을 빼고 민요풍의 트로트 리듬을 섞었다.
무엇보다 고령화로 달려가고 있는 사회적 정서도 한몫을 했다. 덕분에 후속곡으로 내놓은 '백년의 길'(김종완 작사 작곡)도 함께 히트했다. 백세 시리즈 곡의 히트는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 이후 백세 장수시대를 맞은 중장년들의 열정을 쏟아내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애란은 가요계 대표적인 인생역전의 신화를 쓴 주인공이다. 그는 "팬들 앞에 내놓을 내 히트곡이 없으니 지자체 행사 무대에 서면 다른 유명가수의 히트곡을 불러야 그나마 박수라도 받는 처지였다"면서 "'백세인생'은 아무리 아둥바둥을 쳐도 얻기 힘든 인기를 한방에 맛보게 한 인생곡"이라고 말했다.
eel@tf.co.kr[연예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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