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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안희연'] 조명이 꺼지고 난 후에도 "참 좋은 사람"

  • 연예 | 2021-04-11 00:00
EXID 하니가 본명 안희연이라는 이름으로 스크린에 데뷔한다. 10대 비행 청소년들의 민낯을 그려낸 '어른들은 좋아요'에서 그는 그동안의 이미지를 깨끗이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 /리틀빅픽쳐스 제공
EXID 하니가 본명 안희연이라는 이름으로 스크린에 데뷔한다. 10대 비행 청소년들의 민낯을 그려낸 '어른들은 좋아요'에서 그는 그동안의 이미지를 깨끗이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 /리틀빅픽쳐스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EXID 하니가 아닌, 배우 안희연으로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오후 2시 기준 기온 18도, 강우 확률 0%의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24㎍/m³·11㎍/m³로 모두 좋음. 선선한 바람에 벚꽃 잎이 흩날리던 8일 삼청동의 날씨는 이날 마주한 배우 안희연과 똑 닮아 있었다.

안희연을 만나기 위해 삼청동 인근의 한 카페로 향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뜸했던 오랜만의 대면 인터뷰였다. 먼저 인터뷰를 진행했던 타 매체 선배는 "만나서 얘기해 보면 깜짝 놀랄걸"이라고 귀띔했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쏭달쏭한 그 평가를 곱씹는 사이 등장한 안희연은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미소와 함께 초승달처럼 길게 늘어지는 눈이 참 기분 좋았다.

"용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전 회사랑 계약은 끝났고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하는 시기였으니까요. 미래가 쉽사리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오랫동안 활동했고 26살에 계약이 끝났는데 내가 나를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걸 알았어요. 무턱대고 편도 티켓을 끊어 여행을 떠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사이 감독님에게 SNS로 메시지가 왔어요. 저를 캐스팅하고 싶다고요. 연기는 해본 적이 없고 저는 여행 중이었으니 기다리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고사했어요. 한국에 도착 후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고요."

안희연은 비행청소년 주영 역으로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리틀빅픽쳐스 제공
안희연은 비행청소년 주영 역으로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리틀빅픽쳐스 제공

안희연에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박화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환 감독이었다. 그는 전작에 이어 어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비행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어른들은 몰라요'에 담아냈다. "이 영화로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말에 안희연은 강한 끌림을 느꼈다. 고민 끝에 그는 주영 역을 맡아 친구 세진(이유미 분)의 유산 프로젝트를 돕는 10대 소녀로 변신했다. EXID 하니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배우 안희연으로 거듭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촬영 전에 두 달 동안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정말 힘들었죠. 연기를 모르는데 연기를 해야 했으니까요. 몇몇 중요한 장면들을 맞춰봤어요. 감독님이 '감정이 올라오면 시작해' 하시는데 저는 감정이 올라오는 게 뭔지도 몰랐으니까(웃음). 그 상황이 서럽고 눈물이 나오고 하는데 '이게 감정이 올라오는 건가?' 하면서 연기를 하기도 했어요. 이런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어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의견을 나누는 게 정말 자유로워요. 모든 의견에 '그건 틀렸어'라고 하지 않는 특별한 공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큰 축복이었고 저는 행운아였어요. 우린 시험에 너무 익숙한 채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곳엔 시험이 없었으니까 모든 게 자유로웠죠."

워크숍을 설명하는 안희연을 바라보며 표현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 이상을 가렸는데도 그 안의 표정들이 쉽사리 읽혔다. 당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말투, 설명을 돕기 위한 몸짓은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꾸밈 없고 솔직한 안희연의 그대로였다. 이야기를 꺼내다 의자 등받이 너머로 몸을 뒤로 젖히며 쾌활하게 웃는 순간들이 몇 번이고 이어졌다.

안희연은
안희연은 "연기를 하면서 제 새로운 부분들을 많이 발견하게 됐다"며 배우로서의 활동을 이어갈 것을 예고했다. /리틀빅픽쳐스 제공

"연기를 잘 몰랐으니까. 캐릭터를 그냥 안희연으로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원래 시나리오에서 주영이는 정말 까칠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연기한 것을 보니 조금 따뜻하고 무뎌진 느낌이더라고요. '내가 이 영화에 민폐를 끼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엄지와 검지로 작은 틈을 만들며) 들었어요."

"연기를 하면서 제 새로운 부분들을 많이 발견하게 됐어요. 내가 생각보다 여성스럽고, 사랑스럽다는 것? (웃음) 그리고 내게 우울하고 굉장히 잔인한 면이 있구나 하기도 하고. 기존 안희연이라는 사람에서 조금은 벗어난 느낌이에요. 캐릭터를 연기하면 새로운 시각들이 생겼어요. 관계, 타인, 세상 그리고 특히 나를 달리 보는 게 큰 배움이더라고요."

밝고 쾌활한 면면 뒤에는 안희연이 쉽사리 꺼내지 못한 고민도 숨어 있었다. EXID 활동이 끝난 후 안희연의 세상은 낯섦 자체였다. 카페에 30분 이상 앉아있는 게 어색해 옆 가게로 자리를 옮겨 다시 새 음료를 주문하기도 했다. 바쁜 나날을 보냈던 그에게 여유란 "나태이자 유해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정이 요동치는 2년을 보낸 그는 요즘 다시 안정감을 찾았다. 힘겨웠던 나날들을 되짚으며 소회를 밝히는데 자기 감정들을 잘 정리하고 또 격하지 않게 꺼낼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하니(오른쪽)는 EXID 활동이 끝난 후 미래에 관한 고민에 빠져 힘든 나날을 보냈다. /더팩트 DB
하니(오른쪽)는 EXID 활동이 끝난 후 미래에 관한 고민에 빠져 힘든 나날을 보냈다. /더팩트 DB

"17살 때 연습생을 시작했어요. 연예계에 있으면서 이곳이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이 성장했고 그만큼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멍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어렸을 때 저는 '나 연습생 잘리면 어떻게 하지?' '데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제 또래 친구들은 삶에 대해 고민했고요. 요즘은 제가 삶에 대해 고민하고 제 친구들은 성공에 대해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예전이랑은 반대가 된 거죠."

"전 회사에서 나와 최근까지 사춘기 같은 걸 겪었어요. 계약이 끝난 후 나를 돌아볼 시간이 생겼어요. 주영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많은 부분이 같다고도 느꼈어요. 아직 어른이라는 게 잘 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저 성장 과정에 있는 사람일 뿐이에요. 사춘기는 끝났으니 이제는 조금!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요?"

무턱대고 시작했던 연기지만 어느덧 그는 배우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MBC 옴니버스 드라마 'SF8'의 '하얀까마귀', 웹드라마 'XXX', 카카오 TV 드라마 '아직 낫서른'을 거쳐 오는 15일 '어른들은 몰라요'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촬영 전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안희연은 '어른들은 몰라요'가 세상에 조금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꿈꾸고 있다. 배우로서의 어떤 욕심이 아닌 격동의 시기를 이겨낸 인간 안희연으로서의 희망 사항이다.

인터뷰 내내 그의 배려가 곳곳에 묻어났다. 이미 끝난 답변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종결된 질문을 다시 꺼내 부가설명을 하기도 했다. 또 그는 인터뷰가 끝난 후에는 모든 취재진이 나갈 때까지 서서 기다렸다. 자리를 떠나기 전 잠시 눈이 마주치자 눈웃음을 보이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나오니 다른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친 이환 감독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영화 잘 봤다"는 말을 시작으로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안희연의 인터뷰를 하고 왔다고 하니 "사람 좋죠"라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앞으로 나 역시 누군가 안희연을 언급한다면 이 감독과 똑같이 말해주고 싶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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