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라이브 무대 고집, "대중성이나 인기보다 음악이 먼저"
[더팩트|강일홍 기자] 포크 록 가수 한승기(58)는 라이브의 상징이다. 기타 하나로 팝 발라드, 샹송, 칸초네, 가곡에서 트로트까지 거의 전 장르에 걸쳐 '살아있는' 노래만을 고집해온 멀티플레이어 싱어송 라이터다. 그만큼 소화력이 뛰어나다.
"돈 명예 인기보다 오직 노래만 생각하며 살았어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늘 아쉬움이 남아도 후회하진 않아요.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니까요. 기타 하나 둘러메고 세계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흘러가는 구름처럼 살고 싶어요."
한승기가 부르는 노래는 색깔이 분명하다. 사랑과 그리움, 꿈과 희망이 은은한 인생의 향기처럼 그의 기타 선율에 뚝뚝 묻어난다. 그가 처음 무대에 서기 시작하면서부터 꿈꾼 이상과 메시지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한승기는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1986년 상경해 명동 쉘부르 무대에 진출하면서 가요계에 입문했다. 이후 '한때 그리고 갬'(90년)을 통해 정식 데뷔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고교시절에 그룹 활동을 했고, 통기타 명소인 강릉 OB타운에서 솔로활동을 했다.
그를 향한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은 그가 보여주는 끝없는 열정과 에너지 덕분이다. 그의 음악은 생동감이 넘친다. '연인'에서 최근 발표한 '사랑은 당신입니다'(8집)까지 애잔한듯 질그릇 같은 투박함은 그만의 깊이 있는 소신으로 각인돼 있다.
'연인'은 99년 발표 후 2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그의 인생곡이다. 사랑과 이별, 아픔과 슬픔을 가장 애틋한 감성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수 이름보다 주옥같은 히트곡으로 더 유명한 그를 만났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4일 서울 노원의 라이브카페 '비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방송 활동보다는 주로 라이브로 크고 작은 무대를 지켜오지 않았나. 코로나의 여파로 무대를 빼앗긴 직접 당사자가 됐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대부분 라이브 무대를 통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가수예요. 지금은 폐지됐지만 KBS '7080 콘서트'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한 게 전부입니다. TV나 라디오 등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니 일반 대중한테는 언더그라운드 가수처럼 비치기도 하죠. 지난해까지만 해도 꾸준히 콘서트를 진행해왔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라이브 자체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더구나 소규모라도 늘 무대를 통해 팬들과 만난 제 경우는 더 아쉬움이 크죠.
가요계는 70~80년대의 통기타, 90년대 이후론 발라드가 흐름을 주도했고, 최근 2~3년 사이엔 트로트 붐이 일고 있다. 한승기의 음악적 토대는 포크 록이다. 무대 위에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뿌리만큼은 지켰다.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의 흥망성쇠는 그에게 가장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초창기 미사리는 라이브 가수들에게 낭만과 추억이 깃든 곳"이라면서 "뒤늦게 합류한 인기가수들의 개런티가 폭등하고 상업성으로 물들면서 결국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가수 한승기 하면 '연인'이란 곡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상징성이 크다. 수많은 사랑과 이별 노래 중에서도 와닿는 임팩트가 다르다.
무대에 올라가면 저를 못 알아보는 분들은 있어도 '연인'을 모르시는 분들은 거의 없는 듯해요. 처음엔 반응이 없다가도 노래를 듣고 듣고나선 '못 알아봐서 미안하기라도 한듯' 더 큰 박수로 환영해주시거든요. 이름보다 노래가 더 인기가 있다는 게 가수에게는 오히려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999년 2집 '연인'의 타이틀 곡으로 발표했던 노래인데 원키(One Key Fm) 고음으로 불러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곡이죠. 50대 중반이 된 요즘엔 당일 컨디션에 따라 키를 한단계 내려 부르기도 해요.
그가 부른 '연인'(김신우 작사 작곡)은 떠나간 옛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노래한 곡이다. 애절한 노랫말에 잘 어울리는 멜로디, 가버린 사랑에 대한 아쉬움의 절규가 한승기의 깊고 진한 보이스에 실려 뭉클하게 와닿는다. 마치 떨어지는 낙엽처럼 고독한 느낌을 자아내며,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쓸쓸하게 표현해 심금을 울린다. 사랑과 인생에 대한 음악적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이 곡은 후에 알비노니의 클래식 명곡 '아다지오 G단조'를 샘플링 해 KBS2 일일 드라마 '차달래부인의 사랑' OST로 발표되기도 했다.
-가장 최근 선보인 8번째 앨범에는 전곡을 작사 작곡했다. 타이틀곡 '사랑은 당신입니다'에는 특별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고 들었다.
8집은 2017년에 냈는데요. 요즘 추세는 1~2곡 정도 싱글을 내는게 일반적이지만 좋은 곡들이 많아 4곡을 한 앨범에 담았어요. 타이틀곡에는 어머님의 사랑과 헌신, 감사함이 스며 있어요. 어머님께서 생전에 제가 마지막으로 TV에 한번 나오는 걸 꼭 보고싶어 하셨어요. 안타깝게도 음반을 준비 중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결국 그 소원은 들어드리지 못했어요. 개인적 그리움과 죄송함이야 더 말할 것도 없죠. 그 마음을 '사랑은 당신입니다'에 고스란히 담아냈어요.
-그런 애틋한 마음 때문에 사모곡(思母曲)같은 느낌이 짙은데 이 곡이 특별히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불리는 이유가 있나?
3년 전 이 곡을 발표한 뒤 저는 뒤늦게 어머님 영전에 불러드려야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어요. 결혼 축가로 불러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거든요. 올핸 코로나로 뜸했지만 지난해까지 결혼식 무대에 설 일이 꽤 많았어요. 자꾸 부르면서 저도 깨달은 사실인데요. 이 노래 가사에 담긴 의미가 젊은 신혼부부한테도 와닿는 내용이지만, 시집 장가를 보내는 부모님들과 하객들한테 오히려 더 큰 공감대를 주는 것 같아요.
'사랑은 당신입니다'는 부모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부부에겐 또다른 의미를 던지는 내용으로 공감을 준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그런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버거운 삶을 함께 나누며 아픔을 나누며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런 당신이 있어 기쁘답니다 숨막히도록 살아온 세상에 나를 지켜준 사람/ 삶의 하루하루 힘들게 지내며 숨가쁘게 생존하며/ 어느날 지치고 쓰러져 당신이 필요할 때 그때에 내 손을 가볍게 잡아준 당신/ 고마워요 사랑해요 사랑은 당신입니다'
-통기타로 대표되는 명동 쉘부르 출신 가수로 포크 록의 외길을 고수해오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고교시절부터 음악에 빠져 친구들과 그룹활동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물안 개구리였지만 당시 강릉에선 당당하고 자신만만했죠. 그런데 중요한 건 당시만해도 딱히 자신있게 내세울 만큼 음악적 방향이 정해진 건 없었어요. 뭔가 돌파구를 찾고 싶은 마음에 '전국노래자랑' 강릉편에 출연해 입상했고 연말 치러진 서울결선(오승근의 '사랑의 미워해')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았죠. 알고보면 그게 저한테는 가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준 셈이에요.
한승기는 명동쉘부르에 진출한 직후인 1988년 강릉 출신 가수들과 옴니버스 음반을 내며 정식 가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듬해 제3회 MBC신인가요제 금상 수상 후엔 1990년 포크 발라드 '한때 흐리고 갬'을 발표한다. 이후 '연인'(99년) '슬픈사랑'(2010년) 등의 곡을 발표하며 가창력 가수로서 자리매김한다. 2015년 드라마 '어머님은 내 며느리' OST '그댈 사랑합니다'로 잔잔한 반응을 얻으며 호소력 짙은 창법과 독보적인 음악성을 보여주는 실력파 OST 가수로도 명성을 얻었다.
-가수들의 성격이나 취향은 흔히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스스로는 어느정도까지 수긍하는지 궁금하다.
90% 이상 공감하는 부분이죠. 음악도 닮아간다는 걸 느낍니다. 성격적으로는 좀 복합적이라 간단히 설명하긴 어려워요. 태생적으로 흥이 많아 평소 술자리도 좋아해요. 대인관계로만 봐도 외형적 성향을 갖고 있어요. 다만 낯가림이 좀 있어서 누구와도 편하게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할까요. 어울릴 땐 어울려도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선호하거든요. 때론 하루종일 음악을 듣거나 사색에 잠기기도 하는데 어떤 분들은 그런 모습만 보면 은둔형 외토리같다고 말하기도 하죠.
한승기는 포크 가요계 신사로 통한다. 선후배들 사이에 그의 무게감은 익히 알려져 있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나서지 않으면서 확실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 때문이다. 현재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협회는 10여년전 최백호, 김도향, 백순진, 서수남, 서유석, 송창식, 윤항기, 윤형주, 엄인호, 한대수 등이 준비위원으로 탄생한 포크 라이브 가수들의 친목단체로 현재 양하영이 회장을 맡고 있다.
한때 그는 '얼굴 없는 가수'로 알려지며 오히려 대중의 궁금증을 키웠다. 2002년 '대학로 하이텔 ON & OFF 콘서트'를 시작으로 지자체 아트홀과 호텔디너쇼까지 매년 공연을 통해 팬들과 음악적인 교감을 나누고 있다.
음악적으로도 자유분방함을 추구하고 있다. '연인' 히트 이후 가요기획사들의 전횡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던 그는 2004년 '동해의 꿈'을 발표하면서 변화를 줬다. 그는 "부르고 싶은 노래,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싶어 이때부터 모든 음반을 직접 제작해왔다"고 말했다.
'내사랑 통영' '연인' '동해의 꿈' '불어라 바람아' 등 그가 부른 노래는 모두 음악적 깊이가 남다른 감성 발라드 곡이다. 특히 2010년 발표한 4집 '불어라 바람'는 뒤늦게 유튜브서 바람을 일으키며 역주행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열정의 근간은 음악에 대한 굳은 신념이다. 그는 "무대 위의 저를 만나고 싶어하는 팬들이 있는 한 늘 행복하다"면서 "돈이나 인기를 쫓는 순간 라이브 가수의 순수한 매력은 퇴색되고 사라진다"고 했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종종 해외 공연을 다녀올 만큼 교포팬들도 많다. 이는 방송 등 대중매체를 통해 비치는 모습보다 팬들과의 직접 교감을 우선시하는 스타일도 한몫을 한다. 수차례 인터뷰 요청 끝에 만난 필자에게도 '싱어송라이터 한승기'의 음악적 자존심은 새삼 빛나보였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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