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와 서문여고 동창, '슈퍼모델 꼬리표'는 기회이자 제약
[더팩트|강일홍 기자] 배우 이화선(40)이 풍기는 첫번째 이미지는 부드러움과 유쾌함이다. 그는 2000년 SBS 슈퍼모델대회에 출전하며 연예계에 진출했다. 단번에 통통 튀는 신선한 매력을 발산하며 주목을 받은 이화선은 시트콤과 드라마 연기자로, 예능인으로, 전문 카레이서로 변신을 거듭한다.
"슈퍼모델은 방송사가 주최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입상 후 자연스럽게 방송 활동 기회가 주어졌어요. 주로 예능이나 시트콤에 출연했는데 당시만 해도 아직 가수, 모델, 예능인, 연기자 영역이 분명하던 시절이어서 방송관계자들의 선입견이 있었어요."
이화선에게 슈퍼모델 꼬리표는 기회이자 제약이었다. '슈퍼모델 출신' '숙명여대 경제학부 전공' '예능감으로 똘똘 뭉친 연기자' 등의 타이틀은 빠르게 화제성을 몰고갔다. 반면 배우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전에 내몰린 인스턴트형 관심과 인기는 오히려 독(毒)이었다.
"어느 순간 소모품으로 내몰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몰랐어요. 그게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요. 나이도 어렸고 경험도 없었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배우로 커리어를 쌓기 위해 모델활동도 중단하고 한창 쏟아지던 방송 예능을 모두 거절하기도 했어요."
그가 카레이싱으로 눈을 돌린 것은 2004년이다. 클릭 스피드 페스티벌 RD부문 5전 1위에 오르면서다. 차츰 실력을 연마한 뒤 2009년엔 CJ 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2위)을 통해 프로무대에 정식 데뷔한다. 이후 프로 레이싱팀에 소속돼 활동하며 굵직한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에 출전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다.
그가 오랜만에 브라운관 활동을 재개했다. 이화선은 지난해 SBS '강남 스캔들'에 이어 지난 8월부터 MBC '내가 가장 예뻤을때'에 출연 중이다. 드라마 출연은 MBC '천 번의 입맛춤' 이후 7년만이다. "공백이 길었던 만큼 더 진지하게 연기에 몰두하려고 해요." 배우로 다시 돌아온 그의 남다른 각오를 들어봤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8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카레이서 이후 꽤 오랜만에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 복귀한 셈이다. 지난해 '강남 스캔들'과 달리 이번 드라마 출연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이유가 있나?
네, 남들이 알 수 없는 저 나름의 의미가 담긴 작품이에요. 지난 10년간 프로 구단에 소속된 카레이서로 활동하면서 방송 출연은 멀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부러 피했다기보다는 연봉을 받는 선수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라마나 예능은 뜸해지더라고요. 물론 그동안에도 출연 요청이 오면 방송을 가끔 하긴 했죠. 아주 오랜만이긴 했지만 작년 '강남 스캔들' 출연할 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어서 편안했어요. 올해는 프로구단 재계약을 하지 못했어요. 이번 드라마부터 배우로 전념해야할 이유가 생긴 거죠.
이화선은 하석진 임수향이 주인공을 맡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 출연중이다. 운명 속에 갇혀버린 한 여자의 가슴 아픈 사랑 얘기를 그린 이 드라마에서 임수향의 대학 선배 이서안 역을 맡았다. 그는 "지난주 마지막 회를 찍었는데 '벌써 끝나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생기더라'며 웃었다. 오는 15일 최종회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7년 만에 복귀한 SBS 아침드라마 '강남 스캔들'에서는 극중 홍백희(방은희)의 수족 윤 과장 역을 연기했다.
-슈퍼모델대회를 통해 데뷔했다. 요즘 기준으로보면 팔등신의 시원한 키(174cm)가 가장 큰 매력이었을텐데 오히려 방해가 됐다고 들었다. 무슨 얘기인가.
슈퍼모델 출전이 2000년이었으니까 딱 20년 전이네요. 숙명여대 1학년 때였는데 당시 연기자 기준으로는 꽤 큰 키였어요. 키 큰 여자 연예인은 방송 MC를 하고 싶어도 남자 진행자와 높낮이 균형이 안 맞아 퇴짜를 맞을 정도였니까요. 사실 방송사가 주관한 모델대회에 나가게 된 건 입상하면 모델 아르바이트를 쉽게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어요. 근데 막상 입상을 하고보니 연기자로는 어색할 만큼 크고 모델로는 작은 키였어요. 아담하고 다소곳한 여배우가 대세였거든요. 예능프로에서만 출연 제안이 막 쏟아지더라고요.
SBS 슈퍼모델대회에서 이화선은 프리지아상을 수상했다. 그는 "키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 상처를 받기도 했다"면서 "20년만 늦게 태어나 연예계에 진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당시만 해도 가수, 모델, 예능인, 연기자 영역이 분명하던 시절이어서 방송관계자들의 선입견이 많았다. 이화선은 "지금 생각하면 저는 모델부터 연기자, 예능 등을 다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였는데 예능을 하다 연기를 하려고 하면 '넌 예능 이미지가 커서 배우하기 힘들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면서 "그 바람에 예능을 아예 포기한 일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2004년 알스타즈 레이싱팀에 입단하면서 카레이싱에 뛰어들었다. 프로에 입단한 뒤엔 더 좋은 성적을 냈는데 카레이서는 어떤 매력이 있나?
모든 취미 활동의 시작은 관심을 갖는 것에서 출발하잖아요. 골프나 낚시처럼 카레이싱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엔 호기심 반 흥미 반 동호회를 만들고, 재미를 붙이고 열정이 생기다 보니 저절로 매력에 빠져든 거죠. 출발선을 떠나 엄청난 굉음과 함께 순간 스피드로 내달리는 짜릿함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저 역시 직접 뛰어들기 전까지 카레이싱은 남자들만 좋아하는 스포츠라고 생각했어요. 카레이싱 경기장에 있는 여성이라면 아직도 레이싱걸 쯤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없지 않아요. 제가 처음 도전할 때만해도 여성은 전무했는데 지금은 7~8명의 프로선수들이 뛰고 있을 만큼 여성들의 영역이 됐어요.
2004년 류시원 이세창 안재모 김진표 등 연예인들과 아마추어 레이싱동호회를 만들며 카레이싱을 시작했다. 5년간 연기활동과 병행하며 꾸준히 실력을 연마한 뒤 2009년 CJ 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1600 클래스를 통해 프로경기에 정식 데뷔한다. 당시 소속 레이싱팀은 팀코리아익스프레스 레이싱팀이었다. 프로 카레이싱 데뷔 무대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연예인 중에선 남녀 통틀어 가장 먼저 프로에 입단한 선수이고, 일반인을 포함해 최초의 여자 프로 카레이서 입단 및 최장 활동기록을 갖고 있다. KBS 스포츠 중계석 슈퍼레이스 카레이싱 해설위원을 맡기도 했다.
-카레이서에 이어 경비행기 조종 면허까지 취득한 주인공으로도 화제가 되지 않았나? 끝없는 도전이 아름답다. 어디에 그런 당찬 면모가 숨어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어린 시절 꿈은 화가였어요. 미술을 좋아해 늘 그리는 걸 동경했어요. 부모님이 맏딸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예체능을 원치 않아 공부에만 전념했어요. 중고시절엔 '세상 답답한' 공부벌레였고 대학 진학을 한 뒤에도 부모님 말씀 잘듣는 평범한 범생이었어요. 슈퍼모델대회에 나가기 전까지는요. 한번 방향이 틀어지고 보니 제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더라고요. 경비행기는 정확하게 말하면 조종간이 2개 있는 초경량 항공기인데요. 슈퍼레이스에서 2위를 한 직후 안산국제항공전에서 홍보대사 제안이 들어왔고, 3개월간 체험실습을 하면서 '이참에 아예 면허까지 따버리자'고 결심한 거죠. 둘다 여성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분야잖아요. 아무래도 제 몸 속엔 특별한 도전정신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
부모님 뜻과 희망대로 그는 대학진학도 경제학(숙명여대)을 선택했다. 행정고시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슈퍼모델대회 출전이 진로의 방향을 바꿔놨다. 이화선은 "선배 언니가 '넌 키도 크니 여기서 입상하기만 하면 모델 쪽 아르바이트하기가 수월하다'고 해서 나갔는데 그 언니는 탈락하고 저만 통과됐다"면서 "그래서 운명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예계 진출 이후 우연히 카레이싱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경비행기 조종사 면허까지 도전하게 된 것도 성차별 없는 강한 도전의식이 무의식적으로 발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필기시험과 실기(30시간 비행기록) 등 1년의 노력 끝에 결국 면허를 따냈다.
-지난해 '샴페인과 일주일을'이란 제목의 에세이집을 썼다. 투병 중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애틋한 사연 등을 담았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됨)라고 하잖아요. 세상을 살면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동생을 떠나보내고 '이별의 슬픔'이 얼마나 힘든 지를 처음 알았어요. 아빠의 죽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받아들여졌는데 동생은 다르더라고요. 처음 몇 개월간은 버티기조차 힘들었어요. 삶이 뭔지 인생이 뭔지 저절로 달관해지는 느낌이었죠. 책은 동생이 떠나기 직전에 출간했어요. 저와 동생, 그리고 드라마 작가와 방송 PD 등 우리 자매의 절친 지인들이 각자 의미있는 주제를 분담해 쓴 에세이집이에요. 그때까지 동생은 3년 가까이 투병 중이었고, 나중엔 많이 고통스러워했어요. 그나마 생전 마지막 소중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이화선의 여동생은 지난해 4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활짝 웃으며 필자와 대화를 나누던 이화선은 여동생 얘기가 나오자 금방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는 "제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꽃처럼 예뻤다"면서 "누구보다 당당하고 야무지고 재주도 많았다"고 했다. 여동생 고 이화진 씨는 해외 유명 레스토랑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촉망받는 셰프였다. 에세이집에 등장하는 가수 이효리와는 서문여고 시절 같은 반 친구 사이다. 이효리가 핑클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당시 방송사에서 우연히 마주치자 이름 대신 "어, 반장 여긴 왠일이야?"라고 불러 함께 웃었다고 한다. 이화선은 2, 3학년 반장을 맡았다.
-연예인 화가로 활동하며 전시회를 여러차례 했다. 배우로 살면서 그동안 다양한 도전을 많이 했는데 미술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나?
2012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허전한 마음을 붙들기 위해 문인화 과정을 시작하게 됐는데 너무 편안해지더라고요. 제 경험상 미술은 확실히 감성이 필요한 작업인 것같아요. 어릴 적부터 도화지에 그리는 걸 좋아했고, 선생님들도 예고, 미대 진학을 권했을만큼 그림에 소질은 있었거든요. 방향이 바뀌면서 화가는 제 길이 아닌 줄 알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운좋게 동양화가 이의재 선생님을 만나 싹을 틔웠고, 홍대 미대교수 등 전문가분들이 제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셔서 매년 작품활동을 함께 하고 있어요.
이화선의 미술 분야는 문인화다. 부모님 반대로 미술 전공학과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서예 동아리에서 붓글씨에 매진하면서 그림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고 한다. 연예계 진출 이후엔 유명 화가(동양화)들이 강좌를 연 문인화 최고위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그는 "동양화의 특성상 한 작품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어떤 건 몇 개월씩 걸리기도 한다"면서 "작품 수가 많지 않아 그룹 전시회를 주로 해왔다"고 설명했다. 요즘도 동료배우 김혜진 이광기 김영호(사진) 등과 스타 전시회를 종종 갖는다.
-다소곳한 이미지와 달리 열정적이고 파워풀한 도전을 반복하며 달려왔다. 혹시 아쉬움이 남거나 특별히 소망하는 일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답해달라.
아쉬움이 왜 없겠어요.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것'과 '할 줄 아는 것'을 늘 구분 지어가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예요. 저는 뭐든 꽂히면 깊이 매달리고, 반드시 마무리 짓는 성미라 '하고 싶은 건' 미뤄두지 않는 스타일이죠. 그런데 작년에 동생이 떠난 뒤 삶의 기준이 많이 바뀌었어요. 돈도 명예(인기)도 아니더라고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 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전 일찍 떠난 동생을 위해서라도 동생이 못다 이룬 몫까지 채우고 살아야해요.
이화선의 가족은 지난해 여동생이 떠난 뒤 엄마와 둘만 남았다. 8년 전 경찰공무원 출신의 아버지와 먼저 결별했다. "동생이 3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했는데 마지막 1년은 엄마와 셋이 제주에 작은 집을 임대해 살았어요. 동생이 암 4기로 재발한 뒤 육체적 고통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긴 했어도 이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같아요. 엄마와 저, 남은 우리를 위해 아빠도 동생도 하늘나라에서 응원하고 있으리란 믿음이 있어요." 이화선은 "동생 병이 나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들을 공유하면서 결혼하지 않고 평생 같이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연예계 데뷔하자마자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고, 카레이서로도 열정을 쏟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의 아픔을 겪고난 뒤엔 미술에 심취했다. 그는 "많지 않은 나이에 너무 많은 인생 희로애락'을 경험한 것같다"면서 이전보다는 좀더 차분한 마음으로 힐링하며 살고 싶단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혹시 연애나 결혼에 대해 특별한 기준이나 가치관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빠에 이어 동생과의 이별을 겪으며 남모르게 방황하는 시간들을 많이 보냈어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 무게를 생각하면 결혼은 늘 부담스럽죠. 젊은 날 저의 마지막 도전(버킷리스트)으로 시도해볼까 해요."
이화선은 자타가 공인하는 깨끗한 이미지의 명품 배우다. 마지막으로 항상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비결을 물었다. "스마일 증후군이라고 있잖아요. 저는 누구한테도 화를 못내는 대신 혼자 많이 삭히는 편이에요. 그만큼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시간도 많아요." 인터뷰차 만난 필자에게도 그가 평소 내뿜는 부드러움 속 유쾌한 이미지는 새삼 가까이 와닿았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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