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예능 고수, '미우새'서 이상민 임원희와 '돌싱트리오' 활약
[더팩트|강일홍 기자] 탁재훈(52·본명 배성우)은 예능 고수다. 가수로 출발해 배우, 방송 예능인 등 다양한 영역을 섭렵해온 멀티 플레이어다. 우선 타고난 끼와 순발력, 재치 감각이 개그맨들을 능가한다. 카메라 앞에 비친 이런 모습은 평소 얌전하고 조용한 스타일과 비교돼 또다른 반전 매력으로 발휘된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탁재훈은 애초 진지한 발라드 가수를 꿈꿨다고 한다. 20대 초반인 1990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가수로 활동하다 스물 일곱살이던 95년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곡을 들고 포크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이런 선택에는 차분한 성격도 한몫을 했다.
가수로 그의 존재감이 빛나기 시작한 건 역시 컨츄리꼬꼬로 활동하면서다. 솔로 2집까지 낸 그는 신정환과 함께 그룹 컨츄리 꼬꼬를 결성한다. 1998년 1집 타이틀 곡 '오! 해피'로 주목을 받은 뒤 2집 수록곡 '일심' 'Gimme Gimme', '오가니'(3집)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인기가도를 달렸다.
"탁재훈 신정환으로 구성된 컨츄리꼬꼬는 노래도 좋았고, 무엇보다 웃겼어요. 방송을 보고 소속사를 찾아가 콘서트를 제안했는데 첫 공연부터 매진이었어요. 입소문이 엄청났죠. 한 마디로 이전에 없는 특별한 색깔로 대중을 열광시켰으니까요." (공연제작사 '쇼당이엔티' 서현덕 대표)
탁재훈은 '컨츄리꼬꼬'의 코믹한 가사와 춤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인기는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콘서트를 잇달아 흥행시키며 트렌드를 장악했다. 이런 대중의 팬심은 콘서트 무대를 통해 극대화된 뒤 다시 방송으로 재확산됐다. 덕분에 최고의 방송 예능 MC로 승승장구한다.
탁재훈은 요즘 방송 예능인으로 거듭 주가를 올리고 있다. 다음 달 방영을 목표로 최근 녹화에 들어간 MBC 트로트 오디션 '트로트 민족'에 이상민 이특 이지혜 류지광 에릭남 등과 함께 출연 중이다. '우다사3'(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에도 합류했다. 한때 좌절의 아픔을 겪은 그의 솔직한 근황이 궁금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오랜만에 만났다. 2018년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인터뷰한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2년이 지났다. 표정이 밝아졌고 훨씬 편안해 보인다.
그렇게 보이신다니 더없이 감사하죠. 사실 한동안 비바람을 동반한 큰 태풍이 훑고 지나간 듯 마음이 휑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맑고 깨끗한 기분이 들더군요. 누구나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검은 먹구름이 앞을 가린다고 생각하며 좌절했어요. 제 고통을 남의 탓으로만 돌렸으니까요. 2년 전엔 방송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저 욕심부터 냈던 것같아요. 조바심 내지 않고 묵묵히 한발씩 걷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앞이 보이고, 마음도 표정도 밝아졌어요.
-방송 출연이 부쩍 많아졌다. 평소 제주 애월읍에 마련해둔 전원형 주택을 자주 찾는다고 들었는데 요즘엔 어떤가.
네, 스케줄이 갑자기 많아졌어요. 하루 걸러 1~2개씩 일이 늘어나고 있어요. 대중 스타는 직업의 특성상 패턴이 늘 비슷한 것 같아요. 일이 없으면 상실감에 젖고, 많이 불러주면 존재감이 상승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최근 몇주간 계속 서울에 머물고 있는데 편안히 휴식하고 힐링하는 시간들이 벌써 아쉽고 그립죠. 결국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포기해야하는 게 인생 아닐까요. 지금은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야할 시기입니다. 바쁘게 활동하다 잠시 짬을 내 다녀오면 오히려 만족도가 더 클 수도 있어요.
탁재훈의 제주 생활은 벌써 7년째다. 2013년 제주 애월읍 외곽에 한적한 주택을 마련했다. 당시 불법 도박사건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한 무렵이다. 그는 "고립무원에 빠져 지낼 때 위로가 돼 준 곳이 바로 제주"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기만 해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SBS '미운 우리새끼들' 촬영 때 외엔 서울을 떠나 주로 제주에 머물러왔다. 제주에는 그의 오랜 가요계 절친 선후배 사이인 쿨의 이재훈과 가수 이정이 살고 있다.
-최근 CF도 찍은 것으로 안다. 전성기 시절과 비교할 수 없지만 인기의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상징성은 커 보인다. 얼마만인가.
하도 오랜만이라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요. 아마도 제대로 된 CF는 10년 만에 처음 아닌가 싶어요. 3개월짜리 단발 광고라도 저한테는 의미가 남달라요. CF가 모든 걸 다 설명해주는 건 아니지만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서서히 호감 이미지로 돌아선 게 아닌가 싶어 행복합니다. 개런티나 기간보다는 저를 인정해준 게 고마워서 열과 성을 다해 촬영을 마쳤어요. 한꺼번에 여러개씩 찍던 시절에도 감사함을 몰랐는데 오랜만에 출연제의가 들어오니 감격스럽더군요.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제 중심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탁재훈은 얼마 전 충청 지역에 기반을 둔 '원탁' 막걸리(고려주조) CF를 찍었다. CF에는 탁재훈 특유의 유쾌한 이미지가 결합되면서 지역 특산 막걸리의 주목도를 크게 높였다는 후문이다. 탁재훈은 '오뚜기 진라면'(2010년) '그린코스메틱'(2011년) 등을 찍은 지 9년 만에 다시 CF에 출연했다. 그는 "4~5년 전 방송 복귀 직전 지인의 부탁으로 특정 제품에 초상권을 허락한 적이 있다"면서 "정상적인 개런티를 받고 CF를 재개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탁재훈은 컨츄리꼬꼬 결성 직후인 1999년 '롯데제과 와플'을 시작으로 40여개의 CF와 10여개의 공익광고에 출연했다.
-방송계가 온통 트로트 물결이다. 다음 달 추석 연휴 직후부터 방송 예정인 MBC 서바이벌 오디션프로그램 '트로트 민족'에 패널로 뒤늦게 합류했는데 소감이 궁금하다.
요즘 저도 부모님들이 좋아하던 트로트의 깊은 맛에 빠져들고 있어요. 음악 장르에는 경계가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장르든 귀에 익숙해지면 트렌드가 됩니다. 저도 원래는 통기타 가수로 출발했다가 방향을 틀어 발라드로 옮기고, 다시 댄스로 바꿨어요. 대중의 입맛이 아니라, 대중이 선호하는 노래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화에 적응해가는 법을 터득한거죠. 트로트는 또 다른 도전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뛰어들 용기를 내보지 못했어요. 이번 기회에 트로트 고수들한테 오히려 한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어요.
'트로트의 민족은' 전국 팔도에서 트로트를 가장 잘 부르는 '진짜' 트로트 왕을 뽑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탁재훈(강원 제주 대표)은 이상민 이특 이지혜 류지광 에릭남 등과 응원 멤버로 출연한다. 이들과 함께 가수 진성 이은미 뮤지컬 배우 박칼린 등이 심사위원석 패널로 나선다. 탁재훈은 "그동안 몇 차례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 섭외를 받고 색깔이나 이미지 때문에 망설였다"면서 "미세한 관점의 차이였을 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게 정답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미우새'에는 4년째 주요 게스트로 꾸준히 출연 중이다. 메인이 아님에도 등장할 때마다 이슈를 몰고 다니는 비결이 따로 있나.
모든 게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걸 '미우새'를 하면서 완벽하게 터득했어요. 사소한 에피소드라도 인위적인 상황 연출은 임시방편에 불과해요. 시청자들이 먼저 알고 씁쓸한 웃음을 짓거든요. 차라리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즉흥적 애드리브가 신선하게 와닿더라고요. 매번 먹혀들면 더 좋겠지만, 2~3번에 한번씩만 적중해도 성공이에요. '미우새'는 저한테도 활력소가 돼주는 프로그램이고, 진행(MC)이나 고정패널이 아닌 게스트만으로 제 자리를 확고하게 지킬 수 있어 늘 고마운거죠. 최근 구도는 돌싱트리오(탁재훈 이상민 임원희)와 싱글트리오(박수홍 김종국 김희철) 간 대결 방식인데 딱 제 입맛입니다.
'미우새'는 엄마가 화자가 돼 아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프로그램이다. 박수홍 토니안 이상민 김종국 홍진영 김희철 등이 주요 멤버다. 탁재훈은 2016년 8월 첫방송부터 비정규 멤버로 등장하고 있다. 고정멤버가 아닌 게스트임에도 그가 감초 역할로 등장할 때마다 반응이 치솟는다. 최고 27.5%를 찍었고, 지금도 꾸준히 두 자릿수 시청률(13~16%)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일 방송에서는 탁재훈이 테이블 밑으로 이상화에게 휴대폰을 슬그머니 내밀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 장면은 이날 18.8%까지 최고 분당 시청률을 장식했다.
-방송 예능계의 대표 '돌싱남'이다. 가족 얘기 좀 해달라. 두 자녀와 친구처럼 다정 다감하게 지낸다고 들었다. 레미콘 회사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버지에 대한 관심도 크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요즘 가장 행복합니다. 한순간 잘못된 생각과 불찰로 표적이 됐고, 자숙해야할 시기에 이혼까지 겹쳐 한때는 많이 힘든 적도 있었죠. 지나고 보니 더 단단해지기 위한 시련이었더라고요. 딸 소율(고3)은 미술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 진로를 놓고 저와 자주 만나 대화를 많이 하는데 아들 유단(고1) 역시 코드가 잘 맞아요. 레미콘 회사를 경영하시는 아버지와는 더 끈끈해요. 한때 아버지가 가업을 언급하신 적도 있지만 저와 길이 달라서 아직은 미련이 없어요.
탁재훈의 부친은 국민레미콘의 대표이사로 서울경기레미콘공업협동조합의 이사장을 역임한 배조웅(77) 회장이다. 1999년 국민레미콘을 인수한 뒤 내실있는 기업을 이끌며 중소기업 중앙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탁재훈은 "아버지는 자식이 하는 일을 그저 묵묵히 지켜봐주시는 스타일"이라며 "제가 대중적 인기를 얻었을 때도 회사 홍보 등을 위해 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신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외아들인 저를 연예활동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오히려 챙겨주셨다"고 했다.
탁재훈은 최고 전성기를 달리던 2013년 인터넷 도박사건에 연루돼 추락의 좌절감을 맛봤고 가정불화로 인생의 쓴맛과 삶의 아픔을 겪었다. 3년간의 공백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방송 무대로 돌아왔지만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혹평도 따랐다.
"자만의 대가는 혹독했지만 더 값지고 훌륭한 교훈을 얻었어요. 깨달은 바가 많아요. 너무 빨리 달리면 속도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지금은 다 내려놨어요. 요즘 같아선 차라리 무게나 짐이 줄어든 느낌도 있어 다행이다 싶어요. 겸손과 배려를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새기며 삽니다."
탁재훈은 확실히 달라졌다. 완벽하게 자신감을 되찾았다. 특유의 끼와 순발력은 전성기 시절을 능가한다는 평가다. '다 내려놓으니 앞이 보이더라.' 그가 긴 동면을 끝내고 '부활'의 날갯짓을 활짝 펴고 있다. 오랜만에 필자와 만난 그는 인터뷰 중에도 줄곧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감초 예능인으로 되돌아온 변화의 비결은 다름아닌 '겸손'과 '감사'의 마음이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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