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가요계 환경, 신곡보다 오디션프로그램 커버송이 더 인기
[더팩트|강일홍 기자] 방송가는 올 하반기부터 4편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줄줄이 쏟아진다. 트로트 본가를 자처하는 TV조선이 '미스트롯 2탄'을 예고한 가운데 지상파 3사가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다. 이는 최근 불고있는 트로트 열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대목이지만, 그만큼 가요계 판도와 흐름이 달라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면서 '미스·미스터 트롯' 출신 뉴페이스들에 밀려 잠시 주춤했던 기성 가수들도 귀하신(?) 몸이 됐다. 남진 설운도 진성 장윤정 주현미 김용임 등 소위 간판 가수들은 아마추어 도전자들에게 꼭 필요한 멘토 이미지를 굳혔다. 오디션프로그램 '대표얼굴'로 나서면서 출연료도 아이돌급으로 급상승했다.
처지와 상황은 언제든 뒤바뀐다. 이들의 확보가 프로그램 성패와 직결돼 있다 보니 방송사는 더 다급해진 모양새다. 방송사들마다 트로트를 홀대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익명을 요구한 모 중견가수는 "국회를 찾아가 트로트 살리기 세미나를 하고 읍소해도 꿈쩍 않던 게 엊그제 일인데 요즘 어안이 벙벙하다"고 했다.
◆ '보랏빛 엽서' '막걸리 한 잔' '보릿고개' 등 공통점은 커버송 재부팅
같은 기성 가수라도 인기의 높낮이에 따라 명암은 엇갈린다. 트로트 가수 K는 한때 '10대 가수' 반열에 오를 만큼 주목을 받았던 주인공이다. 지금도 종종 '가요무대'를 통해 애절하면서도 깊은 울림 목소리를 들려주는 가수다. 그는 트로트 오디션프로그램이 넘쳐나도 고정패널은커녕 게스트조차 불러주는 곳이 없어 되레 소외감을 느낀다.
"솔직히 저야 누가 봐도 수긍할 만한 스타가수는 아니잖아요. 모두가 기억할 대중 히트곡이 있어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추억 속의 인물이 될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어쩌다 TV에라도 한 번 나가면 관심을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들해집니다. 인기와는 거리가 먼 거죠. 수십 년간 가요계에 몸담으면서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바보죠."
중년팬들에게 그의 대중적 인지도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설 무대가 줄어 '안 보이면 그만'인 처지로 전락했다. 사각지대로 내몰린 그에게도 희망은 있다. 요즘 그는 TV를 장악한 젊은 트로트 스타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30년 전 히트곡을 커버송으로 불러주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유일한 '역주행' 반전의 기회가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 인기가수들도 신곡 대신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선곡' 로비 진풍경
'보랏빛 엽서'(설운도) '막걸리 한 잔'(강진) '보릿고개'(진성) '남자라는 이유로'(조항조) '댄싱퀸'(박현빈) 등의 공통점은 커버송으로 다시 화제를 일으킨 노래들이다. 모두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역주행 신화'를 썼다. '보랏빛 엽서'는 임영웅이 부른 뒤 20여년 만에 뜨겁게 재조명됐고, 설운도는 굳건히 '트롯 레전드'의 자존심을 지켰다.
정동원이 열창한 '보릿고개'나 강태관이 재해석해 부른 '당신의 눈물'(태진아)도 빼놓을 수 없다. 하나같이 '미스터 트롯' 폭발과 함께 원곡 가수들조차 극찬을 아끼지 않을 수혜곡이 됐다. 조항조는 간판 히트곡 '남자라는 이유로'가 트로트 서바이벌 오디션 곡으로 선곡된 뒤 자신의 가요계 위상과 입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분위기는 가요계 흐름마저 바꿔놨다. '히트곡 없는' 스타 가수의 존재다. 실력만 있으면 유명가수의 커버송만으로 당당히 '특급' 대우를 받는다. 기성가수들 중에도 신곡을 들고 힘들게 뛰어다니기보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선곡 한방'이 더 낫다는 기류가 생겼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그려내고 있는 가요계 풍속도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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