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서정희, "알 깨고 나온 빛의 세상, 혼자 사는 게 축복"
[더팩트|강일홍 기자] 서정희(58)는 셀럽 연예인이다. 그 스스로는 "연기나 노래는커녕 방송 MC도 해본 일이 없다"며 이런 시선을 부담스러워하지만 대중이 그의 일상에 늘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유명세를 피할 수 없다. 그는 오랫동안 유명 스타의 아내로 살았다.
그가 한 때 '온실속 화초'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린 건 이 때문이다. 가정 불화와 이혼을 겪은 뒤 홀로서기에 고군분투하는 지금도 다소 부정적이랄 수 있는 이런 색깔을 완전히 벗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이미지가 매우 이중적이라고 믿는다.
"깊게 패인 상처의 흔적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리가 없겠죠. 대신 주변에 아름다운 일이 넘쳐나면 덮을 수는 있어요. 그래서 좋은 것들을 더 많이 채우고 선한 일에만 매진 하려고 해요. 바라보는 시선이 실제와 다르다고 항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진정성 있는 모습을 통해 차근차근 바꿔가야죠."
서정희는 청순발랄 이미지의 상징이었던 여고시절 CF모델로 발탁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대중 연예인으로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갓 스물의 나이에 돌연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떠나면서 대중스타의 꿈을 접었다. 그는 "단절된 시간 동안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뒤 줄곧 정해진 틀 안에 갇혀 살았던 것 같아요. 늘 뭔가 채우지 못한 갈증을 느꼈어요.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그나마 큰 위로를 받았는데 그게 제가 누릴 수 있는 삶의 모든 행복인 줄 알았죠. 책을 내고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뒤늦게 저만의 예술적 잠재 능력을 발견했어요."
그는 7번째 책을 낸 어엿한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 발간한 에세이 '혼자 사니 좋다'는 벌써 6쇄를 찍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긴 시간 자신과의 싸움을 끝내고 알에서 깨듯 그는 필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당당한 홀로서기 이면에 숨은 아픔과 좌절, 그리고 희망과 도전을 직접 들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6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누구보다 긴 아픔의 터널을 지나왔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좀 편안해졌나.
요즘 빛의 길을 걷고 있어요. 저한테는 '꽃길'이 아닌 '빛길'이 더 잘 어울려요. 어둠에 가려있을 땐 몰랐는데 밝은 곳에 나와보니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어요. 저한테는 지나간 삶들이 모두 허상이었어요. 긴 시간 잘 버텼지만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래성이었죠. 물론 32년의 결혼생활을 전부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두 아이가 어른이 돼 엄마를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으니까요. 한동안 힘들었지만, 다 용서하고,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편안해지더라고요.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려고 해요.
서정희는 1980년대 해태제과의 전속 모델이었다. 아이스크림에 이어 대기업 전자제품 모델로 활동할 만큼 광고계에서는 요정 같은 매력이 넘쳤다고 한다. 서세원과 결혼하면서 사실상 조기은퇴의 길을 선택했지만 연예인으로서는 늘 아쉬움을 갖고 살았다. 이후 대중에 비친 잉꼬부부의 모습은 그의 말대로 허상이었다. 2014년 폭행 피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듬해 가정폭력 등을 이유로 협의 이혼했다. 그는 "애초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최근 새로 발간한 에세이집 '혼자 사니 좋다'가 서점에서 반응이 좋다. 어떤 책인지 설명해달라.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이 궁금하다.
저는 살림하고, 인테리어하고, 음악 듣고, 영화 보고, 책 읽고, 꽃꽂이 하고, 기도하고, 기록하고 있어요. 매일 글을 써요. 그러다 보니 7권 째 책이 나왔네요. 이혼 후 두 번째 내놓은 책인데 틈나는 대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있어요. 혼자 살면서 만끽하는 유쾌함을 담았어요. 미사여구 뺀 담백하고 솔직한 로맨틱 코미디 같은 얘기예요. 이번에도 독자분들이 서점 신간 진열대 맨 꼭대기에 올려주셨어요. 책은 이제 저의 분신 같은 존재가 됐고, 베스트셀러로 인정받는 짜릿함을 오롯이 만끽하고 살죠.
서정희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고 쓰는 걸 좋아한 문학소녀였다. 유쾌한 홀로서기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집 '혼자 사니 좋다'는 반응도 좋다. 지금껏 여러권의 책을 냈지만 이번엔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그는 "처음으로 '연예인 서정희'가 아닌 '작가 서정희'라는 네임이 붙은 책으로 평가받아 부끄럽지만 뿌듯하다"고 말했다. 앞서 서정희는 '사랑스런 악처 서정희의 작은 반란' '서정희의 자연주의 살림법' '서정희의 집' '서정희의 주님' 'She is at home' 등의 책을 썼다.
-딸 서동주와는 모녀간이라기 보다는 친구 같은 사이로 지낸다고 들었다. 추구하는 바가 같아서인가, 같은 여자로서의 동병상련의 감정인가?
우선 둘다 비슷한 시기에 이혼의 아픔을 겪었어요. 같은 여자라는 점에선 동병상련이지만 엄마와 딸이라는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 복합적 감정이 스며 있어요. 다만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건 서로 개성이 확실하다는 점이고요. 우린 책과 음악을 좋아하고 예술적 감성에서는 닮아도 너무 닮았어요. 근데 닮은 것보다는 다른 게 더 많아요. 저는 체형부터 아담한 스타일이고, 동주는 글래머예요. 패션에 대한 취향도 섬세한 저랑은 판이해요. 동주는 어려서부터 여성스럽게 꾸며지는 것보단 청바지 차림으로 막 뛰어다니는 털털하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이거든요.
서정희는 "모녀간이라도 닮은 것보다 다른 게 더 많아 서로 배우고 위로받는 게 많다"고 했다. 요즘 그는 미국에 있는 딸 서동주와 하루 1시간씩 통화를 한다고 했다. 서동주는 미국 웰즐리 여자대학교에서 미술학을 전공,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순수 수학 공부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해 현재 'Perkins Coie'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다. 그는 지난 9일 KBS1 '아침마당'에 출연한 엄마 서정희와 화상통화로 자신의 근황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서동주는 "(엄마가) 즐기고 싶은 거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예계 대표 패셔니스타다. 패션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나 안목은 정평이 나 있다. 특별한 기준이나 견해가 있다면 밝혀달라.
저는 모든 패션코디를 직접해요. 저한테 맞는 스타일을 가장 잘 아니까요. 패션은 누구나 공통 관심인 것처럼 보여도 대부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꼭 신상만 입는다고 해서 패셔니스타는 아니에요. 남들이 입는다고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그저 패션 빅팀(fashion victim:패션 희생양)일 뿐이에요. 유행을 좇아가는 것은 말 그대로 초보인거죠. 중요한 것은 고급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체형이나 분위기, 취향에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해요. 직접 발품을 팔고, 리서치하고 노력해서 스타일을 찾아야 진정한 패셔니스타의 모습이죠.
서정희는 완벽한 패셔니스타다. 스카프 하나만으로도 우아한 무드의 스타일링이 가능하다. 그의 SNS에는 평소 일상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패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최근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복 하나라도 그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평소 패션 취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여전히 군살 하나 없는 보디라인은 놀라울 정도다.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는 셀프 마사지와 꾸준한 스트레칭으로 활력을 찾는다. 여전한 동안 얼굴엔 소녀감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얼마 전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서 진행한 혜은이 콘서트 '혜은이쇼' 특별 게스트로 노래를 불렀다고 들었다.
혜은이 언니는 어려서부터 저의 오랜 우상이에요. 언니의 전성기 시절 TV를 보며 꿈을 키웠죠. 골수팬이라서 어차피 팬심을 갖고 공연을 보러가야할 입장이었는데 영광스럽게도 무대까지 올라갔어요.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원래 저는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응원하고 지지하는 헬퍼십 역할에 만족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달라지니 이런 마인드도 적극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이제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중심으로 차츰 삶의 방식을 바꿔가려고 해요.
서정희는 혜은이 콘서트에서 '개여울'(정미조)과 '졸업의 눈물'(진추하) 등 두 곡을 연달아 불렀다. '혜은이 2020 타임슬립 콘서트'는 3백석 공연장에 100명만 입장시키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공연으로 대학로 SH홀에서 최근 한 달간 진행됐다. 혜은이가 가슴 아픈 개인사를 당당히 고백하며 밝고 환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무대여서 호응은 뜨거웠다. 서정희를 포함한 박정자 윤석화 등 연예계 지인들도 객석을 많이 채웠다. 혜은이는 미처 보지 못한 팬들을 위해 7월 첫 주부터 셋째 주까지 금, 토, 일요일 '앙코르 공연'을 갖기로 했다.
-혼자 살게 되면서 아무래도 자신을 성찰할 기회가 더 많아지지 않았나. '대중이 바라보는 서정희'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기를 원하는지 궁금하다.
'누군가의 아내'로 살면서 '온실속 화초'로만 인식됐다면 이제는 바꿔가야겠죠. 사실과 다르니까요. 아마도 이런 결과는 평소 제 스타일과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속마음이나 기분을 쉽게 표출하지는 않는 편이거든요. 굳이 남의 시선을 의식할 이유도 없었고요. 또 성격상 조용하고 말수가 없는 내성적인 스타일이라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무엇보다 힘든 일들을 겪으며 신앙과 글이 큰 힘이 됐어요. 이제 와서 연예인처럼 산다는 건 쑥쓰러운 얘기이고, 글을 쓰면서 하나씩 제 안에 내재돼 있는 본 모습을 그려가려고 해요.
그는 매사 꼼꼼하고 정확하다.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메모하는 습관은 늦은 나이에 '작가 서정희'로 거듭 나는 계기가 됐다.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양심적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맑고 깨끗한 이미지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는 "미워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고 오직 긍정 마인드로 앞만 보며 가겠다"며 "앞으로는 꼭 그렇게 비치고 싶다"고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하자, 성경의 한 구절을 들려줬다.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성경 아가서 6장16절). 서정희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마지막으로 혼자 살면서 갖는 불편함은 없나? 이혼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됐던 걸로 아는데 자립에는 문제가 없는지 궁금하다.
혼자 산다는 건 축복이에요. 마치 딴 세상을 사는듯 자유롭고 편안해요. 가끔은 혼자라서 외로울 수도 있겠죠. 그런데 아직은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요. 이미 각자 자기 울타리를 만든 제 딸과 아들은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가족으로서는 더없이 든든한 원군이에요. 경제적인 부분은 오히려 도움을 받을 정도이고요. 저도 요즘엔 한가롭게 쉴 틈이 별로 없어요. 홈쇼핑에 셀럽 호스트로 출연 중이고, 실내건축 전문가로 공간디자인 등의 강의로 바쁘거든요. 빈말이 아니라, 저는 홀로서기에 나선 뒤 두려움보다는 열정과 도전의 힘으로 용기를 갖는 것 같아요.
7번째 저서인 '혼자 사니 좋다'는 자신의 삶을 반추한 두 번째 에세이집이다. 이혼 직후인 3년 전에 내놨던 첫 번째 에세이집이 세상과 소통을 앞둔 과거의 정리였다면 이번엔 자신의 일상을 만끽하는 유쾌한 미래의 이야기다. 서정희는 베스트셀러가 된 이번 '혼자 사니 좋다'를 직접 목소리 녹음해 조만간 오디오북으로도 출간할 예정이다. "세상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잖아요. 이전까지 저는 남들이 모르는 저만의 고통만 읊어가며 흐느끼곤 했어요.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고 웃고 떠들면서 제 안에 화수분처럼 폭발하는 열정이 치솟는다는 걸 알았죠."
서정희의 무기는 '맑음'이다. 솔직했다. 다소 껄끄러운 전 남편 서세원에 대한 속내도 거리낌 없이 언급했다. "과거에 연연할만큼 어리석진 않아요. 새 가정에선 부디 잘 살았으면 해요. 내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부정한다고 상대가 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양보했으니 그쪽에서라도 회복하고 채워갔으면 합니다."
서정희는 이혼을 거치며 더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토인비의 '탄생-성장-붕괴-해체' 등 문명의 도전과 응전 과정을 자신의 삶에 빗대 설명했다. 그는 "교만하면 언젠가는 붕괴되고 해체된다는 게 살면서 깨달은 진실"이라면서 "배려와 겸손의 마음으로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고 했다.
"누구나 다 추억은 있지 않느냐. 가슴 설레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고, 제 경우처럼 처절한 추억이나 상처뿐인 추억도 있다. 벼랑 끝에 선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온 느낌이다. 빛을 보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고, 저의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다."
한때 그는 누구보다 많이 누리고 살았다. 그만큼 붕괴와 상실의 고통도 컸다. 뭔가 하고 싶어도 한동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환경이 답답했다. 그래서일까. 서정희는 확실히 이전과 달라보였다. 인터뷰 내내 솔직하고 직설적이었다. 그에게 글을 쓰는 작업 외에 지금 새롭게 하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다. "잔잔한 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DJ라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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