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법정공방, 대법원 상고심 사활 건 대중 가수 '명예회복' 총력
[더팩트|강일홍 기자] 조영남의 음악활동은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재학 중이던 1968년 학비를 벌 요량으로 미군 쇼단에 선 게 시초다. 이듬해 영국 가수 톰 존스의 '딜라일라'(Delilah) 한국어 번안곡(김인배 편곡집)으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대학생 신분을 감추고 '고철'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 윤형주, 이장희, 송창식, 김세환, 김민기 등과 세시봉 멤버로 합류했다.
조영남은 52년이란 긴 연예계 생활을 '자유로운 영혼'처럼 살았다. 천성적으로 누구의 간섭받는 걸 싫어해 결혼도 이혼도, 연애도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방식을 고수했다. 이런 쿨한 모습 때문에 분명한 자기철학과 소신을 가진 연예인으로 비치기도 한다. 돌출적인 언행으로 구설이나 논란에 휩싸여도 '조영남 스타일'이란 이유로 양해되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평범하지 않은 대중스타의 이런 이미지와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매력일 수 있다. 가수로, 방송인으로 이런 저런 '설화'나 '구설'에도 무사했던 그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 것은 다름아닌 '대작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화투는 그만의 독창성을 지닌 연예인 화가로 상징성을 담보했지만, 결국 자신을 옭아맨 덫이 됐다. 수십년간 이어온 그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영남의 상고심 사건 공개 변론이 진행돼 이목이 쏠렸다. 5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공방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날 조영남의 공개변론에 참고인으로 나선 미술계 인사들의 해석과 반응은 판이하게 엇갈렸다. '사기'라는 검찰의 주장과 '창작'이라는 조영남 측의 입장을 각각 대변하면서 팽팽히 맞섰다.
"화가가 조수를 사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가수가 마치 미술계 대가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수는 밑칠을 도와줄 수 있으나 원작자의 역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100호 이하의 작품에 조수를 쓴다는 건 창피한 일이다. 작가적 양심이 결여된 수치스러운 사기 행각이다. 아마추어가 프로의 작품에 덧댄다면 오히려 작품성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
"미술계에 조수의 도움을 받는 관행이 있고 쓰는 방식은 작가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관행이라기 보다 필요에 의해 조수를 쓰고 회화 작품 역시 조수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조영남은 자신의 철학대로 그림을 그렸고 작업량이 많다면 조수를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생각이 들어갔기 때문에 본인의 작품이고 조영남은 팝 아트 계열의 미술가다."(표미선 전 한국화랑협회 회장)
연예인들 중엔 조영남을 비롯해 하정우 김혜수 이해영 구혜선 등 단순 취미를 넘어 작가로서의 면모를 갖춘 화가들이 많다. 회화, 조각, 사진, 서예 등 작품세계는 다양하다. 마니아층을 상대로 꾸준히 작품을 전시하고 고가에 팔기도 한다. 미술을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평소 그들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각자의 작품으로 표출하면서 특유의 스타일을 구축한 케이스다.
연예인 화가들이 따로 배우지 않고도 척척 해내는 데는 그만큼 내재된 예술적 감정들이 많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조영남은 "구현 방법만 다를 뿐 내게 음악과 미술은 같다"고 했다. 그는 "미술 행위자로서 그리는 순간 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도 했다. 대중 가수로 예술적 감각을 살려 표현 방식이 다른 미술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 셈이다.
조영남은 왜 화투만 고수했을까. 그의 미술세계는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와야 직성이 풀리는 평소 스타일과도 닮았다. 화투 소재는 조악하다는 혹평에도 조영남만의 고유 캐릭터라는 점엔 이견이 없다. 덫이 된 대작 논란 와중에도 독창성을 인정받는 이유다. 하급심 재판부의 엇갈린 판단(1심 유죄, 2심 무죄)을 지켜본 대중의 관심은 이제 대법원 상고심에 쏠려 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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