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코미디언 '사망'이란 하나의 팩트에 7개 단독 기사 쏟아져
[더팩트|강일홍 기자] 힙합그룹 거북이 멤버 '터틀맨' 임성훈은 2008년 4월 서울 성동구 금호동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그는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사계' '빙고' '비행기' 등 독특한 음악을 히트시키며 한창 승승장구하던 중이었다. 팀의 리더이면서 작사 작곡 노래까지 천재적 재능을 발휘한 인기 아티스트의 사망 소식에 팬들의 놀라움은 컸다. 이런 와중에 당시 이 소식을 전달한 일부 기자들의 무책임한 퍼나르기식 보도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고 임성훈은 홀로 거주하던 주택에서 뒤늦게 발견돼 '고독사'로 언급되면서 더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사망보도는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전달됐지만, 저널리즘의 기본 문법('5W1H') 중 하나인 '장소'(Where)가 상당 시간이 흐르도록 어긋난 채 전달되는 오류가 발생됐다. 1보를 쓴 기자가 '터틀맨, 서울 중구 금호동 자택 사망'이라는 '주소 오기'를 범했고, 대다수 매체 기자들은 이를 복사하듯 반복해서 그대로 받아썼다. 서울 금호동은 중구가 아닌 성동구다.
◆ 타계 소식 보도 후 당일 밤 10시까지 [단독] 주장 기사 7개, '단독 풍년'
'코미디 대부'로 잘 알려진 자니 윤(윤종승)은 지난 9일 오전(현지 시간 8일) 미국 LA 근교 아람브라의 한 대학병원에서 사망했다. 필자는 다음 날인 10일 오후 그의 전 부인 줄리아 리 씨의 전화를 받았다. 침통한 목소리의 그는 "어제는 워낙 경황이 없었고, 기자님의 연락처를 금방 찾지를 못해 이제서야 연락드린다"며 자니 윤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고 자니 윤은 2017년부터 뇌경색에 의한 알츠하이머 증상이 심해져 LA 외곽 한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미국 시민권자인 줄리아 리 씨는 "안타깝게도 제가 마침 볼 일이 있어 한국에 잠깐 들어와 있는 사이에 돌아가셨다"면서 "제 아들이 임종을 지켰고, 저는 임종시간 화상통화를 연결해 마지막 가시는 길을 기도해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섬유사업을 크게 하던 1990년대 후반에 자니 윤과 처음 만나 1999년 결혼한 뒤 11년 만인 2010년에 정식 이혼했다. 당시 이혼 사유에 대해 줄리아 리 씨는 "자니 윤의 우울증과 조울증에 의한 폭력성 때문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줄리아 리 씨와 필자의 첫 인연은 3년 전인 2017년이다. 자니 윤의 근황보도와 관련해 전 부인이었던 그를 단독 인터뷰하면서다.(더팩트, 2017년 12월22일자='자니 윤 방치 논란' 줄리아 리 "버렸다니요? 억장 무너질 얘기") 당시 그는 "자니 윤에 대한 잘못된 보도 내용을 바로 잡아달라"며 억울한 자신의 입장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에 앞서 LA 교민회의 한 매체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자니 윤, LA 외곽의 허름한 양로원서 비참한 노년생활'이라는 취지로 기사화했다.
◆ 근거 없는 '단독' 남발, 이미 나온 기사에 단답형 '애도 코멘트' 버무려 [단독] 처리
줄리아 리 씨는 이후 3년 만에 필자와 통화에서 "영상으로 본 마지막 가시는 모습은 편안했다"면서 "시신은 생전 고인의 뜻대로 대학병원에 기증할 생각이고, 장례식은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내용은 ['코미디계의 대부' 자니 윤, 9일 미국 아람브라 대학병원서 타계]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돼 오후 2시 7분 출고됐다. 기사 출고 직전 [단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니 윤'을 검색해 보니 앞서 미국 현지에서 사망소식이 한 차례 언급돼 있었다.
전 부인 줄리아 리 씨의 직접 통화로, 의미있는 내용들을 담은 사실상 첫 보도였지만 이미 사망 기사가 나온 마당에 다시 [단독]을 붙이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놀라운 일은 이후에 전개됐다. <더팩트> 타계 소식 보도를 기준으로 3시간 뒤인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단독]을 주장하는 사망 기사가 무려 7개나 쏟아졌다. 엄청난 '단독 풍년'이었다. 한 유명 코미디언의 '사망'이라는 단 하나의 팩트를 두고 수많은 매체들이 버젓이 [단독]을 걸어 기사를 냈다.
①[단독]임하룡 "故자니윤, 타지에서 떠나 안타까워..'자니윤쇼' 출연 기억나"(인터뷰), O매체 ②[단독] 자니윤 별세, 조영남 회고 "그의 풍자 따를 사람 없다", J사 ③[단독]故자니윤 지인 "선한 분, 시신까지 기증하고 빈손으로 떠났다" 추모[인터뷰], T매체 ④[단독] 10년 전 故자니윤 결혼식 진행한 권영찬 "하늘에서도 행복하시길", T매체 ⑤[단독] '자니윤 쇼' 작가 "故자니윤, 진정한 슈퍼★...타국서 외로운 죽음 가슴 아파"(인터뷰), T매체 ⑥[단독]자니윤 미국 지인 "수년전 시신기증 약속, 장례는 추후 조용히"(인터뷰 종합), S매체 ⑦[단독]故자니윤 前부인 "가실 때 손잡아 드리기로 했는데, 화상통화 임종"[인터뷰], S사
태반이 새로운 팩트는커녕 취재를 위한 별도 노력의 흔적이 없는 기사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전화로 자니 윤의 별세 소식을 전해주고(기자 자신도 타매체 기사를 보고 알게 됨), 동료 연예인 또는 지인의 단답형 '애도 코멘트'를 버무려 단독 기사로 처리했다. 남의 기사 베끼기 수준을 넘어 단지 주목을 끌기 위한 편법으로 양심을 내버린 셈이다. 기사 뒤에 따라붙는 바이라인은 기자의 얼굴이자 책임감을 보여주는 마지막 자존심이다. 왠지 부끄러운 자화상처럼 비쳐 씁쓸하기만 하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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