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개그맨 1호', 서정대학 유아교육과 교수 '어린이 대통령'
[더팩트|강일홍 기자] 김종석(61)은 개그 교과서로 통할 만큼 재치와 순발력, 애드리브의 대가다. 크고 작은 국내 외 주요 이벤트 현장은 물론이고, 개그맨 자체 행사 MC까지 단골로 맡아 '개그맨의 개그맨'이란 별칭이 붙었다. 데뷔 이후 37년째 7개 어린이프로그램 출연 기록과 함께 국내 최연소 유아 팬덤을 보유한 '어린이 대통령'으로 통한다.
국제무대에서는 통역 없이 사회를 진행할 만큼 '글로벌 MC'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그는 뉴욕에서 진행된 UN본부와 카네기홀 '평화콘서트'(Peace)를 연달아 진행했다. 비결은 다양한 국제스포츠 이벤트 MC로 활동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 덕분이다. 그는 한일월드컵과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등 굵직한 행사를 단골로 진행한 바 있다.
'박사 개그맨 1호'로 대학강단에서 오랜 기간 유아교유학 강의를 하면서부터는 익살꾼을 넘어 바른생활 이미지를 굳혔다. 타고난 예능감에 건전하고 유익한 유머를 버무려 '행복 웃음 바이러스'를 전파한 노력 덕분이다. 개그스타일도 바뀌었다. 단순 말장난이나 EDPS(음담패설, Eum-Dam-Pae-Seol), 슬랩스틱같은 휘발성 개그보다는 촌철살인 시사풍자에 더 익숙하다.
성격상 그는 독창적인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를 좋아한다.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돌연 연극영화과로 방향을 틀었고, 동국대학교 시절 연극무대에서 바닥 연기를 탄탄히 담금질했다. 하지만 튀는 예능감은 평범한 배우로 안주할 틈을 주지 않았다. 뒤늦게 그는 MBC 공채 개그맨으로 새 출발했다.
데뷔하자마자 당시 최고 인기 예능프로그램이었던 '청춘행진곡' 등에 발탁됐지만 또 다시 엉뚱한 선택을 한다. 바로 어린이프로그램 '뽀뽀뽀'다. 김종석은 "어떤 선택과 결정에 많은 시간을 허비한듯 보여도 결국 정답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했다. 환갑을 넘어 40년 가까이 유아 이미지로 살고 있는 김종석을 만났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달 28일 그가 직접 경영하는 경기 남양주의 한 커피숍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국가적 빅 이벤트행사 진행을 많이 했다. 평소 '행사 MC 달인'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스로는 어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방송에서 비치는 이미지와 MC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단지 대중적 인기나 인지도만으로 MC를 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최적화된 언어구사는 기본 요소이고, 무엇보다 행사의 성격과 목적에 부합할 폭넓은 지식을 갖춰야한다고 해요. 저는 데뷔 직후 시사 교양 정보프로그램 리포터 활동을 많이 했는데 앞서가는 정보를 습득하지 않고는 자신있게 마이크를 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매일 일간신문 7개를 정독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웠죠. 시간이 지나고보니 그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담금질해준 밑거름이 됐고, 경험과 노하우의 경쟁력이 됐다고 믿어요.
김종석은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과 대구세계선수권대회 및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개폐회식,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을 진행했다. 지난해엔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전국체전 100주년 기념식 MC와 UN본부에서 가진 '평화콘서트'를 통역없이 영어로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 나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끝없이 노력하고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면서 "강호동이나 유재석 신동엽이 할 수 없는 '특화 MC'라는 평가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김영삼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이 참석하는 청와대 주관 행사를 25년 넘게 진행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우스갯소리로 '김종석 팬의 평균 연령 3.7세'라는 말이 있다. 어린이프로그램을 많이 하면서 만들어진 유아 캐릭터 때문인가.
네 맞아요, 대중 연예인으로 제 자랑거리는 국내 최연소 팬들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죠. 그래서 전국의 어떤 행사장이든 부모들의 손을 잡고 나온 유아들을 보면 그냥 지나가질 못해요. 일상적인 이벤트나 행사 MC로 참석해도 승용차에 항상 캐릭터 모자와 의상을 싣고 다녀요. 언제 어디서든 유아팬들이 원하면 부모와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린이 팬이 많은 저로선 일종의 팬 관리인 셈인데요. 뒤늦게 아동심리학 등 유아교육학을 심도있게 공부하고 연구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어린이팬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을수록 그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죠.
그는 데뷔 첫 해부터 어린이프로그램에 빠져들었다. 우연히 MBC '뽀뽀뽀' 출연제의를 받고 시작한 찰리 채플린 판토마임이 어린이들 사이에 히트를 치면서다. 김종석은 "83년 MBC 개그탤런트 3기로 방송과 인연을 맺고 '청춘행진곡'에 출연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뽀뽀뽀'가 출범하면서 익살꾼 이미지를 많이 가미했다"고 말했다. 당시 '뽀미언니'(왕영은) '뽀병이'(김병조) '뽀식이'(이용식) 등의 캐릭터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뽀뽀뽀'를 시작으로 MBC '야 일요일이다' '모여라 꿈동산', '파란마음 하얀마음', '내 친구들 세상', 그리고 EBS '딩동댕 유치원'에 이어 현재는 '모여라 딩동댕'에 출연 중이다.
-개그맨 출신 중에서는 '박사학위'를 거쳐 정식 대학 교수로 15년째 재직중이다. 방송활동 등 빠뜻한 스케줄을 쪼개가며 학구열에 빠져든 동력이 뭔지 궁금하다.
어려서부터 저는 '가장 잘하는 게 공부'라고 말할 정도로 읽고 쓰고 외우는 일에 흥미가 많았어요. 새로운 지식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인데 그러다보니 나중엔 아예 그게 취미가 되더라고요. 또 뭐든 꼼꼼하게 정리정돈을 해놔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한몫을 했어요. 연예계에 데뷔한 뒤에도 저한테 필요한 정보는 항상 스크랩을 해 필요한 자료로 활용했어요. 스크랩도 그냥 하는게 아니라, 경제나 건강 라이프 유아 등 항목별로 분류하는 습관을 만들다보니 어느순간 저절로 학구파가 되더라고요. 어린이프로그램을 하면서 아이들의 심리나 성향을 이론적으로 알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유아교육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죠. 공부는 하면 할수록 블랙홀처럼 깊이 빠져드는 마력이 있는 것같아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방송에 입문한 그는 방송활동으로 한창 바쁜 시기였던 90년대 중반 다시 중대 언론정보대학원에 진학해 광고학을 전공했다. 김종석은 "시사 정보프로그램 리포터를 하면서 광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관련 서적을 뒤적이는 것만으론 양에 차지 않았다"면서 "석사과정을 끝내고 나니 오히려 박사과정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지더라"고 했다. 하지만 높은 학구열에도 불구하고 박사과정(성균관대 아동학)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전혀 새로운 분야인 아동학의 기초이론을 차근차근 터득해가며 공부를 하느라 학위를 받기까지 무려 9년이 걸렸다"면서 "힘든 과정이었던 만큼 보람도 많았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하기 쉽지 않다. 방송인으로 사업가로, 그리고 대학교수로 1인3역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지 않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잖아요. 뭐든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어요. 기회란 것도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다져놓은 사람에게 돌아갈 경우가 더 많거든요. 제가 대학에 몸담게 된 건 그만큼 땀 흘려 노력한 대가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생생한 현장경험에 깊이있는 이론까지 두루 섭렵하고 나니 저절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운좋게 저는 출발부터 전임(조교수)으로 출발했고, 부교수를 거쳐 지금은 정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매주 월화 이틀간은 학교 수업(서정대학교) 일정을 맞추고, 수요일은 EBS '모여라 딩동댕' 녹화, 목 금요일은 제 요식사업에 몰두하고 있어요.
-국내 최대 규모의 커피숍을 오픈한다고 들었다. 그동안 다양한 사업을 해온 것으로 아는데 어떤 콘셉트인지 궁금하다.
방송과 공부 외에 저는 일찌감치 사업적으로도 특별한 소질이 있다는걸 알았어요. 사업가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업 마인드를 체질적으로 타고났어요. 일단 사방팔당 뛰어다니며 직접 부딪쳐 일을 성사시키는 스타일이죠. 커피숍은 이곳 팔당점(벨스타 커피숍, 200평 규모)에서 5년 전 시작했는데, 규모가 커서 그런지 흑자로 돌아서는데 자그마치 4년이 걸렸습니다. 이곳을 밑거름 삼아 한달 뒤 양수리에 6층짜리 전층(연건평 700평)을 커피숍으로 꾸며 오픈할 계획이에요. 도심 한복판이 아닌 한적한 교외에서 커피 한잔으로 힐링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 휴식공간입니다. 현재 미국 네바주에도 커피숍을 준비 중인데 해외진출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해요.
김종석은 지난 30여년간 모텔 사업과 주유소, 유치원 등을 직접 운영하며 다양한 사업경험과 노하우,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 그는 5년 전 팔당에 위치한 허름한 매운탕 집을 사들였다. 건물보다 한강변을 길쭉하게 껴안은 700평의 땅이 맘에 들었다. 허가를 받아 기존 건물을 개조 증축하고 50여대 이상 수용할 넓은 주차장을 만들어 도심에서 차량으로 이동해 찾아오는 고객들의 선호에 맞췄다.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붐비기 시작했고 커피숍 자체만으로 4년 만에 수익구조가 만들어졌다. 그 사이 부동산 가치는 3배 가까이 상승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양수리 커피숍 부지를 매입하는 과감한 투자로 방향을 틀었다.
-20여년 전부터 방송을 통해 다양한 외식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스스로 '먹방 1세대'라고 주장하는 건 이 때문인가?
최근 몇년 사이 '먹방' 스타일 프로그램이 쏟아지면서 음식 관련 방송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어요. 사실 과거에도 음식은 방송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 소개했던 소재입니다. 의식주(衣食住)는 기본적으로 누구한테나 관심이 많잖아요. 이중 먹거리 소재는 유독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에요. 형식만 예능스타일로 바뀌었을 뿐이죠. 저, '먹방 1세대' 맞습니다. 또 예전엔 나름 전문 셰프와 대결할만큼 오랜 시간을 투자해 배우고 익혀 내 것으로 만드는 재미도 있었어요. 지나고보니 제가 요식업에 관심을 갖게 되고, 개인사업으로 구체화한 데는 '먹방 1세대'의 자부심과도 직결돼 있더군요.
어린이 유아프로그램에만 올인해온 그가 요식사업에 눈을 뜬 계기는 밀가루에 관심을 가지면서다. MBC 교양프로그램 현장 리포터를 하며 유명 중식요리사의 도움을 받아 '수타 200가닥 도전'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는 단순히 방송에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 흉내가 아니라 6개월간 밀가루 특성을 공부하고 실습을 통해 완벽한 기술로 터득했다. 또 초밥왕에 도전하며 서울 역삼동의 유명 일식당 주방을 5개월간 들락거렸고, 와인학교(4개월) 바리스타(3개월) 커핑(2개월) 등에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이탈리아 유명 피자학교의 한국분교에 입학해 공부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피자협회 회장을 2년째 맡고 있다.
-국제 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 홍보대사 등 오랫동안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베풀고 나누면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많이 부끄러웠어요. 데뷔 이후 눈코뜰새없이 바쁘단 핑계로 사실 봉사란 걸 모르고 살았으니까요. 90년대 초반 우연한 기회에 봉사단체와 인연을 맺어 '재능기부'를 한게 첫 출발이었죠. 인간이 두개의 팔이 있는 건 하나는 자신을 위해, 다른 하나는 남을 위해 쓰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어요. 더구나 저는 아동들과는 독보적인 유대를 쌓고 있어서 함께 어울리는 일이 더 자연스럽잖아요. 봉사라는 말보다는 직접 개발한 웃음치료법 '라프 테라피'를 20년째 실천하고 있어요. 단지 한두번 웃겨주고 기쁨을 주는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웃음이 '자가 발전' 할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하는 겁니다.
김종석은 199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니세프 주최 '세계동요제'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세계적 배우 오드리 헵번과 조우하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 헵번은 생전에 나눔의 삶으로 유명했던 할리우드 스타다. 헵번은 그에게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찾아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자랑거리가 생기고, 이런 행복함을 경험한 어린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봉사의 뜻을 실천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각종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며 창안한 '라프 테라피 (Laugh Therapy)'로 어린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김종석의 '어린이 사랑'은 누구도 말릴 수가 없다. 어린이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고 다닌다. 신기해할 만한 각종 마술도 즉석에서 선보인다. 아이들한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하나 둘씩 배우고 연마하다보니 어느덧 200여 가지의 간단한 마술을 하게 됐다.
그는 영원히 유아캐릭터 '뚝딱이 아빠'로 남길 원한다. 나이나 가족관계 등을 공식적으로 노출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이에 대해 김종석은 "모든 아이들의 대리 아빠 이미지를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고, 이는 아이들과의 '무언'의 약속"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그저 '뚝딱이 아빠'일 뿐이다.
케이블과 종편채널이 확대되면서 방송인들의 활동 반경은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40년 가까이 방송활동을 해온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김종석은 "늘어난 채널수에 비해 차별화를 내세울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면서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유아들의 게임이나 초중생 청소년들을 위한 생활체육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종석은 유아프로그램의 상징 인물을 넘어 대학이나 언론사가 운영하는 CEO 최고위과정의 인기 강사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의 롱런 비결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버무려내 특화한 자신만의 웃음코드다. 이는 특유의 부지런함, 식지않는 열정과 노력에 기인한다. "어른들을 웃길 때보다 어린이들이 즐거워할 때 가장 행복하다. " 과연 '어린이 대통령'답게 그는 마지막 코멘트까지 아이들에 대한 무한 애정표현을 빠뜨리지 않았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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