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役,
[더팩트|박슬기 기자] 치밀하고 섬세하고 전략적이다. 그 덕분에 어떤 역을 맡아도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충무로에서 그는 없어선 안 될 배우이고, 관객에겐 '믿고 보는 배우'로 각인 돼 있다. 어느덧 연기경력 30년. 예측 불가 연기로 매 작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배우 이병헌의 이야기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이병헌을 만났다. 지난해 12월 19일 개봉한 '백두산' 이후 약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그는 꽤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전작 '백두산'이 800만 관객을 넘은 데 이어 '남산의 부장들'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서다.
이병헌은 '남산의 부장들'에서 일인자 박통(이성민 분)의 곁을 지키는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을 맡아 열연했다. 김규평은 실존 인물 김재규로, 76년부터 79년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곁을 지키던 8대 중앙정보부 부장이다.
"실제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서 표현하려고 했죠. 행동과 말은 이미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배우가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없는 부분이 답답하고 힘들었어요. 가장 스트레스가 많았던 캐릭터였죠."
이병헌은 실제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당시 사건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을 만나 캐릭터를 완성했다. 머리를 넘기는 습관부터 영어 발음 등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신경 썼다. 그 결과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완성했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외부에서 좋게 평가해주면 첫번째는 다행이다 싶어요. 감사하죠. 하지만 매 작품에서 똑같은 각오와 노력을 기울여요. 영화 후반 작업에서도 배우를 돋보이게 해주니까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연기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기분이 좋죠."
하지만 베테랑 연기자인 그에게도 부담감은 있었다. 대중의 기대가 나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병헌은 "사람이니까 그런 부담감이 생길 때가 있긴 하다"고 말했다.
"부담감이 있는데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그런 생각이 저를 자유롭지 못하게 할 것 같거든요. 저를 편하게 풀어놓고 싶어요. 영화라는 게 사랑받을 때도 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잖아요. '나는 계속 더 잘돼야 돼'라고 생각하면 숨 막혀서 못 살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생기려고 하면 털어버리려고 노력하죠."
이병헌은 많은 후배 배우들에게 롤모델로 손꼽힌다. 앞서 '미스터 션샤인' '남한산성' '내부자들' '광해' '아이리스' '악마를 보았다' '달콤한 인생' 등을 통해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에게 "후배들에게 해줄 조언이 없냐"고 묻자 이병헌은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뗐다.
"관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죠. 어떤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관찰하고, 궁금증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은 왜 저런 말투를 쓸까?'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등 호기심을 갖다보면 캐릭터를 형성하고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그런데 관찰도 관찰이지만 사람에 대한 이해도도 넓어지는 것 같아요. 또 시나리오를 볼 때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훨씬 잘 되더라고요."
이병헌은 '남산의 부장들'에 함께 출연한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과 호흡이 좋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여느 작품보다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그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좋았다"고 말했다.
"'남산의 부장들' 현장에서 하루하루 기분 좋은 긴장감이 항상 있었어요. 이 배우들과 같이 호흡했을 때 '신(SCENE)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얼마나 좋을까'하는 기대감이 컸죠. 절제된 감정, 미묘한 감정이 많은 영화인 만큼 배우들의 힘이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배우들이 잘 해냈다고 생각해요. 그 시너지가 영화에 잘 담겼고요."
신기하게도 극 중 김규평과 박통의 관계는 직장생활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와 일맥상통한다. 철저한 갑과 을의 모습으로, 줄거리와 상관없이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김규평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은 대리만족하게 만든다.
"영화를 찍는 도중에 감독과 스태프들이랑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이야기를 떠나서 직장인 분들이 김규평이란 인물에 '이입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개봉한다면 직장인 분들이 보시고 공감하고 대리만족하셨으면 좋겠어요."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또 다른 하나는 김규평과 곽상천(이희준 분)은 치열한 충성 경쟁이다.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김규평은 라이벌인 곽상천을 만날 때면 분노한다. 이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관객의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기도 한다. 문득 궁금했다. 실제 그에게도 라이벌이 있을까.
"곽상천은 뭐든 과한 사람이잖아요. 하하. 저는 곽상천 같은 사람이 있다면 경쟁보다는 포기를 할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니까요. 어느 순간 내 감정을 고스란히 이야기해서 갈등이 빚어지고 싸우면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잠깐 참으면 많은 사람이 원래처럼 웃으면서 지낼 수 있으니까요. 저 하나 때문에 모든 관계가 어색해지고 망가지는 걸 싫어해요.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요."
이병헌은 지난해 '백두산'으로 연말 관객을 공략한 데 이어 '남산의 부장들'로 설 연휴 관객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짧은 기간 안에 북한 요원 리준평 역과 70년대 정보부장 김규평으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 걱정이라고 했다.
"제가 맡은 전작 속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깊게 한 관객분들이 새로운 캐릭터로 나왔을 때 드는 이질감이 있을까 봐 그 부분이 걱정이에요. 하지만 워낙 다른 작품과 캐릭터라 '또 다르게 봐주시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네요. 다양한 영화들이 많은데 모두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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