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국 "협회 내 고소 고발 청산, 스스로 침 뱉는 부끄럽고 창피한 일"
[더팩트|강일홍 기자] "살다보면 시련에 무작정 맞서는 것보다 '행여 내 잘못은 없었는지' 성찰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진실이 왜곡됐다면 억울함은 언젠가는 풀리 게 마련이니까요."
가수 김흥국(59)은 천성이 단순하다. 솔직해서 손해를 볼지언정 가식은 없다. 애초 타고 난 기질이 그렇고,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이다. 예능계 '흥궈신'(흥을 돋워주는 예능신)으로 불릴 만큼 김흥국의 이런 스타일은 40년 가까운 연예 활동을 하면서 사실 가수보다 예능인으로 더 주가를 올린 비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달라졌다. 떠들썩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뭔가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 6개월의 풍파가 그의 천성에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김흥국은 '늦깎이 예능인'으로 승승장구하다 올 상반기 가장 뜨거운 화두였던 '미투 논란'의 핵폭풍을 만나 좌절했다. '성폭행'이란 치명적 혐의가 무고(誣告)로 결론이 나면서 일부 명예를 되찾았지만 여전히 홍역을 앓고 있다. 그는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올가을 신곡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다.
김흥국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논란에 휩싸인 이후 김흥국은 줄곧 언론과 일대일 만남을 피했다. 그럴수록 더 만나 취재하고 싶은 게 미디어의 속성이다. 수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해명하고 싶어도 또다른 논란이 될까 싶어 못한다"고 고사했다.
상반기 내내 원치않는 일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터라 이해는 간다. '미투'의 억울한 혐의를 벗고 대한가수협회장의 무게와 짐을 덜어 홀가분해진 탓일까. 김흥국이 이번에는 직접 인터뷰를 자청했다. 지난달 31일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스페셜인터뷰 두번째 주인공인 김흥국을 만났다.
-우선 대한가수협회를 3년간 이끌어온 소회가 궁금하다.
의욕을 갖고 출발해 나름 많은 변화를 주도했다고 자평한다. 이전까지 참여를 유보했던 젊은 가수들이 협회에 합류했다. 막바지에 일부 회원들이 불필요한 흠집을 내 불미스런 오점을 남긴 듯해 답답하다. 지금 솔직한 심정으로는 3년 임기를 무난히 마치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김흥국 단독 와이드 인터뷰는 3년 만이다. 김흥국은 3년 전 제5대 대한가수협회장에 당선된 직후에도 기자와 인터뷰한 바 있다. 당시 김흥국은 "가수의 위상을 높이고, 안팎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노래하는 가수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풍상을 겪은 가수협회 임기가 한달 후면 만료된다.
모든 걸 혼자 다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했고, 후회는 없다. 남은 현안들은 후임 회장이 잘 풀어갈 것으로 믿는다. 전임자로서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겠다.
(평소 털털하고 웃음 많은 김흥국이지만 이 대목에선 비장하기까지 했다. 사실 협회 내부 고소 고발 건 등에 의한 논란과 내홍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비대위가 꾸려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가수협회는 지난달 28일 가수 이자연을 김흥국 후임으로 선출하면서 봉합됐다.)
-'미투' 회오리에 휘말려 치명타를 입었다.
누굴 탓하겠는가. 모두 제 잘못이고 부족함이 만든 불찰이다. 공인으로서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이라도 앞으로는 더 신중하게 처신 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이겠다.
(김흥국은 행여라도 모두 변명처럼 비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억울한 부분이 많지만, 결국 '빌미'를 만든 것은 '자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무혐의 결론이 났지만 '미투' 당사자로 거론됐을 당시 심정은?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한 마디로 참담했다. 솔직히 처음엔 뭔가 보이지 않는 불순한 세력이 앞을 가리는 게 아닌가 의심도 했다. '왜 나한테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생기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처음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한 이유가 있나?
당시 사회 분위기는 누군가 미투관련 피해자라고 폭로하면 진위 여부를 떠나 상대방이 무조건 매도되는 상황이었다.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해야할지, 그냥 눈앞이 깜깜했다. 다행히 진실을 가려줄 증인들이 용기를 내 변호를 해주고, 정황적 증거들도 하나 둘씩 나타나 '무고'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A씨의 성폭행 피해 주장 당일인 2016년 12월 모 여가수 연말 디너쇼 뒤풀이차 호텔 룸에 함께 있었다는 제3의 인물인 공연기획자 서모 씨가 인터뷰를 통해 김흥국의 결백을 증언했다. 또 A씨와 서너 차례 식사 겸 술 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사업가 최모 씨는 "겨우 두 차례 만난 뒤부터 곧바로 돈 얘기를 꺼내 매우 의아했다"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그동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논란의 중심에 선 뒤 가장 힘들게 한 건 뭔가.
제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해 만남을 가리지 않는 편이긴 하다. 그렇다고 상식에 어긋나게 살지 않았다. 선의와 호의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구하려다 목적이 달성되지 않자 상대를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거기에 편승한 불순 세력들은 더 나쁘다. 사라져야할 '적폐'다.
(김흥국은 A씨 편에 서서 근거도 없이 부당하게 자신을 비난하거나 죄인으로 몰고간 사람들을 지목했다. 정황상 A씨가 처음부터 사악한 의도로 자신을 끌고 들어간 걸 뻔히 알고도, 공명심에 불타 진실을 덮고 가짜 주장에 동조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언론에도 할 말이 많다고 들었다. 매도됐다고 믿는가.
가슴에 한이 서렸다. 책임있는 언론이라면 팩트 확인 없는 여론몰이식 보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엄청난 일 아닌가. 40년 가까이 연예인으로 살면서 죽음을 떠올릴 만큼 힘들었다. 이 모든 피해와 불명예를 혼자 떠안고 간다는 사실이 원망스럽다.
-어쨌든 김흥국을 바라보는 대중적 호불호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대중 가수로서 물론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논란에 휘말리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저를 믿고 신뢰해주는 분들도 있지만 채찍질을 가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다. 더 겸손한 자세와 자숙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겠다.
-A씨와의 법적 다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저에 대한 혐의가 벗겨진 뒤 A씨를 무고죄로 고소했고, 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다. 저 아닌 다른 사람과도 유사한 일로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인 것으로 들었다. 개인적으로 '미투' 본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고 지지한다. 다만 이를 악용해 억울한 피해자들을 만드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일부 매체가 (A씨 사건과 관련해) 강남경찰서 관계자의 말을 빌어 "(김흥국 씨) 진술 외에 무고라는 다른 물증이 없어서 무혐의 결론을 내렸으나 관련 사건을 재지휘받아 수사하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흥국은 "현재 진행 중이고 최종 결론이 난 사안은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변호사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불기소나 혐의없음으로 결론을 내 송치했다'는 확실한 오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용서할 의사는 없나? 혹시 이와 관련해 연락은 없었나?
제가 용서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지켜본 수많은 분들이 이미 기억하고 판단하고 있지 않겠나. 다만 개인적 입장에선 연민의 감정이 있다. 지금까지 어떤 연락도 접촉도 없지만, 그분이 진심으로 잘못을 사과하고 미안해한다면 소송을 중단할 용의는 있다.
-무혐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뎠나.
무혐의 결정이 나오고 마음을 많이 추스렸다. 처음 얼마간은 거의 매일 사찰을 찾아다니며 복잡한 심경을 다듬었다. 축구 동호인들과 지인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김흥국은 흥국사, 봉은사, 무상사 등 평소 자주 다니던 절을 번갈아 찾아 마음을 달랬다고 했다. 특히 방송활동 등 외부 스케줄이 거의 없어 매일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조기축구회에 나가 땀을 흘렸다.)
-가족이 가장 힘들었을 텐데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
아시다시피 기러기 아빠 생활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나. 서로 떨어져 지내면서 가족의 울타리를 늘 그리워했다. 이번 일로 상처를 입었지만 더 끈끈하고 단단한 가족애를 되찾는 계기가 됐다. 아내와도 조용히 산책을 하거나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갖고 있다.
(김흥국은 지난 6월 말 아들 김동현 씨와 함께 러시아월드컵 한국-스웨덴전을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경기장을 찾은 김흥국은 "아들이 힘든 아빠를 위로하기 위해 월드컵 응원을 동반해줬다"며 가족애를 언급한 바 있다)
-가장 궁금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활동 재개 여부다.
이제는 하루 빨리 제 본 모습을 되찾는 게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장의 책무에 충실하는 게 아니겠나. 저를 둘러싼 의혹은 모두 풀렸다. 출연 규제나 활동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저를 바라보는 많은 분들의 시선은 별개다. 아무리 마음이 조급해도 훈풍이 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신곡을 낸다고 들었다.
맞다, 곡을 준비 중이다. 그래서 10월쯤 신곡을 내고 가수로 먼저 활동할 생각이다. 느낌이 좋은 곡이다. '호랑나비' 이후 30년만의 히트곡이 될 것이란 확신이 있다. 그만큼 자신도 있다. 이번에는 정말 제 노래, 기대하셔도 좋다.
(김흥국은 싱어송 라이터 가수 이혜민과 다시 손을 잡고 신곡을 작업 중이다. 이혜민은 앞서 김흥국의 히트곡 '호랑나비' '59년 왕십리'를 작곡한 바 있다. 83년 '은지'라는 노래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 데뷔했고, 양현경 등과 함께 배따라기로 활동하며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아빠와 크레파스' '비와 찻잔 사이' 등을 히트시켰다.)
-가수협회장을 이끌며 내부 갈등으로 힘들었는데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개인적으로 끝까지 임기를 마칠 수 있어 가요계 선후배님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가수협회장의 역할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가수들을 위한 봉사가 먼저다. 선후배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해야 굴러갈 수 있다. 불신하고 반목하면 배가 산으로 간다. 앞으로는 협회 내에 그 어떤 고소 고발도 없었으면 한다. 스스로 침을 뱉는,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김흥국은 대한가수협회 5명의 회장 중 유일하게 경선 투표를 거쳐 당선됐다. 초대 회장인 남진을 비롯해 송대관 태진아, 그리고 그의 후임인 이자연까지 김흥국을 빼면 모두 투표 없는 합의추대로 회장을 맡았다. 그는 "소신껏 일을 추진하고 후보 당시 내세운 공약을 지키려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1시간여 인터뷰를 마친 김흥국은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지난 6개월간 사실상 마음을 닫고 지냈다. 힘들고 답답했다. 속내를 털고 나니 후련하다"고 했다. 3년 만에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다시 만난 기자의 입장에서도 매우 반갑고 다행스러웠다. 그의 바람과 각오대로 멋진 가수로, 유쾌한 예능인으로 활짝 웃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