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가는 토크 프로그램이 대세다.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까지 예능과 연예정보, 시사는 물론 뉴스 프로그램에서도 토크가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분야별 이슈와 화제를 중심으로 전문가 집단 패널들이 참여해 심층적으로 정보를 전달, 눈길을 끈다. 연예정보 프로그램도 뉴스보다 스토리텔링에 점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모바일 미디어 시대를 맞아 단순 뉴스 소개보다 뉴스 이면의 숨은 얘기를 더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결과다. <더팩트>는 방송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토크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을 집중 분석한다. <편집자 주>
한영롱 PD "'라스'는 B급 마이너 코드의 캐릭터쇼"
[더팩트ㅣ지예은 기자] 예능 프로그램 MC들은 기본적으로 예능감과 센스 넘치는 말솜씨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서로 간의 좋은 호흡까지 보여야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물할 수 있다. 이들은 색다른 재미 전달을 위해 게스트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때로는 본인이 망가지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오버' 해서는 곤란하다. MC들의 부족한 역량이나 과잉 의욕은 프로그램 실패 원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11년 역사를 자랑하는 MBC '라디오스타'(이하 '라스') MC들은 '예능 교과서'로 불릴 만하다. '예능 신'이라고 평가받는 네 명의 MC들(김국진 윤종신 김구라 차태현)은 환상의 호흡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수요일 밤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 대표 '국민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정받는 '라스'를 이끄는 한영롱 PD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MC 네 명의 능력과 호흡에 항상 '느낌표'를 달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라스'의 성공 비결과 저력을 설명했다.
◆ '끈끈한' 4MC들의 '환상 케미'
황교진, 박창훈 PD의 바통을 이어 받아 지난해 8월 '라스'의 새 수장이 된 한영롱 PD는 '무한도전' '우리 결혼했어요' '복면가왕' 등 예능 프로그램을 오랜 시간 조연출 해왔다. 버라이어티 형식의 프로그램을 도맡아 왔던 그에게 '라스'는 첫 토크쇼와 다름없다.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 MC들을 봐온 그에게도 '라스' MC들은 색달랐다. 한영롱 PD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라스'의 MC들은 끈끈한 케미를 갖고 있다"며 "'라스'는 MC들의 케미가 잘 맞는 '캐릭터쇼'같은 프로그램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라스' MC들의 합은 마치 '무한도전' 속 '무한상사'를 보는 듯하다고 콕 짚어 말했다. 이어 "MC들이 각자의 임무를 잘 알고 있으며 롤플레잉을 하는 듯한 특이하고 재밌는 부분이 있다"며 "지금이 가장 안정감 있는 (MC군단) 구성인 거 같다. 네 명이 다른 점이 있는 캐릭터와 직업군으로 구성돼 가장 이상적인 안정감과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을 더했다. 또한 "MC 네 명의 능력에 항상 감탄하고 있다. MC들 제각각의 색깔을 최대한 살려 게스트에게 던질 질문도 준비한다"고 밝혔다.
"'라스' 속 김구라는 촌철살인 입담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윤종신은 음악 파트를, 차태현은 판넬과 배우 쪽을 맞고 있어요. 그런데 의외로 센 질문은 김국진이 맞고 있죠. 아무리 '라스'라고 하지만 게스트가 '이런 질문까지 할까?' 싶을 정도로 껄끄럽지만 꼭 해야만 하는 질문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김국진에게 줘요.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김구라와은 다르게 별로 세지 않게 게스트에게 전달해주는 느낌을 주거든요."
◆ '베테랑' 막내 차태현, '라스'에 품격을 더하다
지난 1월 차태현이 '라스' 고정 MC로 낙점되기까지, 지금 그가 앉아 있는 MC석은 여러 명이 바꿔 앉았다. 슈퍼주니어 신동, 신정환, 슈퍼주니어 김희철·규현이 거쳐갔다. 규현이 군에 입대하며 '막내 자리'는 공석으로 반년 넘게 비워져 있었다. 코미디언, 가수, 방송인으로 구성된 스페셜 MC들이 잠시 자리를 메우긴 했으나, 고정 MC 자리를 꿰차진 못했다. 지난해 12월 스페셜 MC로 세 차례 '라스'에 등장한 차태현이 고정으로 발탁됐다고 알려지자, 대중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직업이 '배우'인 MC는 처음이었다. 기존의 막내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가 들어왔다는 점에서 이상하다는 시각도 비쳤다. 또한 차태현이 기존의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캐릭터들을 '라스'에서 보이면 자칫 기존 프로그램의 색깔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차태현은 특유의 뛰어난 공감 능력과 마당발 인맥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정받는 '라스'의 '제4의 MC'로 거듭났다. 당시 '걱정 반 의심 반' 속에서도 그가 '라스'의 새 MC로 자리할 수 있던 배경은 무엇일까.
한영롱 PD는 "(차태현을) 굉장히 어렵게 섭외했다"며 "엄청 설득해서 MC로 모시고 온 거다"며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더 재밌게 임무를 소화하는 그를 보며 놀랐다고 밝혔다. 스페셜 MC 출연 비하인드 스토리도 소개했다. 그는 "차태현이 처음 '라스' MC로 나온다고 할 때 주변에서 '욕먹을 거 왜 하냐'는 이야기를 했다더라"며 "사람들이 '왜 굳이 거기를 나가서 이미지 소비를 하려고 하냐'며 모두가 말렸다고 했다"면서 섭외에 애를 태웠다고 말했다.
'라스' MC들 못지않게 집요한 설득 작전으로 한영롱 PD는 차태현 섭외에 성공했다. 또한 고정 MC로까지 그를 욕심냈다. 한영롱 PD는 "보통 '라스' MC로 오는 분들이 긴장을 많이 한다. 하지만 차태현은 달랐다"며 "첫 녹화 이후에 'MC 한 번만 더 해볼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러자'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어 "역시 연차는 무시 못 하는 거 같다. 기존 MC들의 캐릭터가 워낙 명확한데 그 안에서 (차태현은) 본인의 캐릭터를 잃지 않으면서도 '막내' 구실을 잘해줬다. 그래서 고정 MC도 괜찮겠다 싶었다"고 말을 이었다.
"여태까지 ('라스'에) 스페셜 MC로 두 번 나온 분은 없었어요. 그래서 차태현에게 '두 번 이미 했으니 고정 MC네요?'했죠. 그때가 세 번째 녹화도 결정된 상태였거든요. 그랬더니 차태현이 '방송국 놈들'하며 원망 섞인 농담도 던졌죠. 하지만 차태현을 놓칠 순 없었어요. 아! 그리고 김구라와도 이상한 디스를 하면서 묘한 케미가 생겨나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해요"
◆ '역시 라스!' 남다른 특급 섭외력
'라스'는 그간 매주 신통한 섭외력으로 매회 호평을 받아왔다.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게스트 섭외로 시청자들의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라스' 제작진의 섭외력은 프로그램이 '롱런'하는 또 다른 이유다. 한영롱 PD는 "네 명의 MC들과의 최고의 특집을 만들기 위해 매회 게스트 섭외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초특급 게스트' 섭외를 위해 이들의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영롱 PD는 매주 시의성에 맞는 특집을 기획하고 그에 맞는 공통분모가 있는 게스트를 섭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때로는 마당발 MC들의 '지인 찬스'를 쓰기도 한다. 그는 지난 7월 2018 러시아 월드컵 기간'에 방송된 '4년 후에 만나요~제발!' 특집을 위해 '월드컵 스타' 조현우 김영권 이용 이승우를 섭외했던 비하인드를 살짝 공개했다. 당시 해당 특집을 본 시청자들은 '역시 라스!'라며 감탄했다. 결국 올해 최고의 시청률인 9.1%(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당시 독일전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이기자마자 오전 1시부터 작가들이 번호를 수배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멕시코전에서 패배하면서 대중의 반응이 좋진 않았잖아요. 그럼에도 당시 '월드컵 스타'들이 시의성상 가장 핫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바로 섭외 작전에 돌입했어요. 연예인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도 섭외해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전달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라스에 이런 사람까지 나올까?'하는 생각이 들만한 게스트들을 매주 한 명씩은 꼭 모시려 해요."
◆ '촌철살인' 독한 토크쇼는 계속된다
'라스'의 매력은 단연 가식 없는 토크 전개다. MC들은 게스트를 위한 일명 '띄워주기식' 코멘트도 하지 않고, 되레 지상파 방송에서 차마 못 할 것 같은 이야기들은 서슴없이 꺼낸다. 이들의 촌철살인 입담은 시청자들의 가려운 구석을 시원하게 긁어줌과 동시에 가식 따위는 없는 담백한 토크로 재미를 보장한다. 이는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게스트들의 당황스러움 가득한 리얼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명 '독한 토크쇼'로 불리는 '라스'의 대본은 MC들 입담처럼 독하지는 않다.
한영롱 PD는 MC들의 캐릭터에 맞는 질문을 각자에게 배당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하지만 대본에 모든 질문이나 코멘트들을 적어서 MC에게 주지는 않는다"며 "워낙 다들 프로니까 상황에 맞게 그리고 캐릭터에 맞게 잘 이끌어 준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스페셜 MC로 '라스' 녹화에 참여했던 차태현이 "이 형들(김국진 윤종신 김구라) 멀쩡히 잘 있다가 ('라스') 녹화만 들어오면 왜 이래?"라고 놀랄 정도로 캐릭터에 이입률이 높을 정도다.
그렇다 보니 녹화 후 적절한 필터링(편집)도 필요하다. 그는 "매번 객관적으로 불편하다고 보이는 부분을 정리하면서 가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재미를 보장하기 위해 꼭 내보내야겠다 하는 것도 있다"고 말을 더했다. 이어 "재밌자고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간혹 불쾌해 하는 시청자들도 있다"며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불쾌한 부분이 있다면 매우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항상 칭찬만 들을 수도 없지 않냐"며 연출자로서 고뇌도 살짝 드러냈다.
'라스'는 MC군단이 여러 차례 바뀌고 편성 시간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고유의 색은 바뀌지 않았다. MC들의 찰떡 호흡과 B급 유머 섞인 진솔한 토크는 현재의 '라스'가 존재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한영롱 PD는 "B급 마이너 코드 중심으로 돌아가는 '라스'는 확실히 마니악한 프로그램이다"고 언급했다. '라스'니까 가능한 그런 의외성으로 시청자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힘쓴다는 그는 해당 프로그램의 첫 연출을 맡던 그때를 떠올리며 자신의 연출관을 소신 있게 밝혔다.
"예전에 윤종신이 제가 '라스' PD로 처음 왔을 때 했던 말이 있어요. '라스는 100명의 시청자들을 보고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니까 100명 모두를 즐겁게 하려고 하지 마라. 다만 10명의 마니아는 꼭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죠. 그 말이 정말 기억에 남고 지금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무난 무난하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닌 '라스'를 오랫동안 보아온 시청자들을 꾸준히 만족시키는 것이 목표예요! 시청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촌철살인 독한 토크쇼는 계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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