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리고 싶은 과거 '그리움과 회한' 뚝뚝 묻어나 숙연
[더팩트|강일홍 기자] '어느날 난 낙엽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날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인생을/ 우~ 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이하 생략)'
원로배우 최은희가 생전 가장 좋아하고 즐겨 불렀던 노래는 가수 김도향이 부른 '바보처럼 살았군요'였다. 드라마 같은 극적 인생을 살다간 최은희의 평소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영화협회의 한 인사는 17일 오후 <더팩트>에 "선생님이 이 노래를 매우 좋아한만큼 평소 즐겨듣고 부르셨다"면서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 스스로 바보처럼 살았다고 되뇌이며 노년을 쓸쓸히 지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화배우로서 더 오를 데가 없는 정점에 살았던 분 치고는 매우 소박했다"면서 "삶의 동반자였던 신상옥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고,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분의 마지막 길이 부디 편안하길 기도한다"고 애도했다.
고 최은희의 애창곡으로 알려진 '바보처럼 살았군요'는 원래 가수 이종용이 80년에 발표한 곡이다. 김도향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이종용이 신학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뒤엔 김도향, 조영남 등이 불러 크게 히트했다.
가삿말 중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아닐까 흘려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등에서 아쉽고 되돌리고 싶은 과거의 시간을 그리는 회한이 묻어난다.
최고의 은막스타였던 최은희가 결혼-이혼-재혼(신상옥)-이혼-납북-재회(신상옥)-탈북 등의 순탄치 않을 삶을 살아오면서 느꼈을법한 감상이 고스란히 담긴 노래로 비쳐지기도 한다.
◆ '삶의 동반자' 신상옥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 중흥기 이끌어
92세를 일기로 16일 오후 타계한 최은희는 1926년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연극 무대를 누비던 그는 1947년 '새로운 맹서'를 통해 영화 무대로 옮겼다. 이후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을 찍으며 스타로 떠올랐고,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빨간 마후라' '여자의 일생' 등에 출연하며 한국영화사의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이듬해 결혼한 뒤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고,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올랐다.
신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는 1978년 1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납치되고,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다. 북한에서 부부로 재결합한 두 사람은 영화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는다.
최은희가 북한에서 찍은 영화 '소금'은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혼, 납북 및 부부재회, 탈북과정 등 일련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둘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하고, 이후 10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최은희는 2006년 부군 신상옥 감독 타계 후 오랜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신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고,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아왔다. 유족은 신정균(영화감독)·상균(미국거주)·명희·승리씨 등 2남 2녀다. 고인의 빈소는 강남 성모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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