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권혁기 기자] 대중은 배우 박신혜(27)를 어렸을 때부터 봐 왔다. 물론 박신혜의 아역시절이다. 1990년에 태어나 2003년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으로 출연한 박신혜는 애초 배우가 꿈이 아니었다. 가수를 목표로 이승환의 소속사에 몸을 담기도 했다.
배우의 길에 들어선 것은 우연이었다. 우연히 오디션을 본 게 다였다. 나이 열 넷, 배우가 꿈이 아니었던 가수지망생의 풋풋한 첫사랑 연기는 박신혜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리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에 '천국의 계단' 측은 아역 분량을 1회 늘리기도 했다.
타고난 끼가 있기 때문일까? 박신혜는 곧바로 '혼자가 아니야' '새아빠는 스물아홉' '귀엽거나 미치거나' '천국의 나무' 등 드라마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2006년부터 영화 '도마뱀' '전설의 고향'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2013년에는 '7번방의 선물'에서 예승이 역할을 맡아 천만관객 동원에도 성공했다. '상의원' '뷰티 인사이드' '형' 등 스크린과, '이웃집 꽃미남' '상속자들' '피노키오' '닥터스' 등 브라운관을 오가며 맹활약했다. 지난 2일 개봉된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제작 용필름)에서는 변호사 최희정으로 분했다. 약혼녀(이하늬 분)가 살해당하고 자신의 딸(이수경 분)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쫓는 남자 임태산(최민식 분)의 의뢰를 받아 변호를 맡는 역할이다.
연기 경력만 15년차, 지금까지 달려온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시청률이 저조한 드라마도 있었고, 부진으로 조기 종영된 드라마도 있었다. 한 드라마에서는 의사 역을 맡았지만 디테일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았다.
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 팔판동 카페에서 만난 박신혜에게 슬럼프가 있다면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저는 넘어지고 아프면 잠시 쉬어가는 타입이에요. 아프고 힘든 게 싫지만 그 순간에는 잠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다른 걸 찾아봐요. 찾다보면 아물어 있고 지나가 있더라고요. 열아홉, 드림팩토리 이후 1년 정도 회사가 없었는데 학교 생활을 즐겼었죠. 그 때 동기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왜 활동하지 않느냐고 물어보곤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대학교 생활을 누리고자 했던 것인데 선택이 잘못됐나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기에 좋았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에너지를 모으는 시간들이었던 셈이죠."
다음은 화면과 실물이 똑같이 예뻤던 박신혜와 나눈 일문일답.
우선 영화를 본 소감부터 궁금하다.
-후시 녹음하기 전에 가편집본을 보긴 했는데 정식으로는 언론시사회 때 처음 봤죠. 편집본 때는 '내 연기가 어떻게 들어갔나'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언론시사회 때는 관객의 입장에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입해서 봤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느낌은?
-'닥터스' 촬영하고 있을 때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그 전에 감독님과 미팅을 하면서 작품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의심을 많이 했어요. 반전이 큰 작품이라 결과를 보고난 뒤 그 반전의 재미가 컸던 것 같아요.
정지우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어땠나?
-인물의 감정 변화가 많은 영화인데, 관객들이 등장인물처럼 속기 위해서는 희정이가 정의로운 인물이야 한다고 하셨어요. 사람들이 봤을 때 신뢰를 갖고 볼 수 있는 배우로 누가 있을까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연기를 했을 때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 누구냐고 했을 때 저를 떠올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아역부터 가져온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너무 제 자랑인가요?(웃음)
전혀 그렇지 않다. 이장수 감독도 박신혜라는 배우에 대해 극찬을 하지 않았나.
-제 첫 주연 드라마 감독님이었죠. 열 여섯짜리를 멜로드라마 주연으로 발탁해주셨는데 비슷한 나이또래 배우들과 연기한 게 좋았던 것 같아요. 대학교를 가면서 약간의 텀을 두고 '미남이시네요'를 만나면서 열 아홉에서 스무살로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 같아요. 그 다음 대학생인 역할의 작품을 하면서 다양한 연령층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변호사라는 직업을 위해 준비한 게 있나?
-직업에 대한 준비보다는 변호사로서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좀 더 집중을 뒀어요. 법정에서는 스펙터클하게 몰아붙이고 심문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서류상으로 싸우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직업 특성상 재판부에 전달하는 상황이 급박한 것이지 평소 희정이는 변호사라는 일에 찌들어있던 변호사였죠. 그러던 중 대기업 회장의 딸의 변호사로 발탁되면서 압박감을 느낀 희정이의 심리적인 상황을 보려고 했어요. 세트임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의 장면은 정숙하게 되고 무거워지는 것 같았어요. 위에서 뭔가 누르는 기운이 있었죠. 법정 안에 서 있는 인물들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게 느껴져 새롭고 긴장되고 그랬어요. 법정신(scene)은 다 예민해서 찍고 나면 몸이 아팠을 정도였어요. 긴장을 하도 많이 해서 육체적으로 피로가 오더라고요.
좀 바른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저한테 바른 이미지가 있다기 보다는 제가 맡았던 역할들이 '무조건 나는 건강해'라기 보다는 다른 아픔을 겪지만 그걸 이겨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캐디처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않고 넘어지지 않아'가 아니라 '나도 넘어지고 울지만 꾿꾿히 앞으로 걸어나가'는 인물 말이죠. 고난과 역경을 견디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니까 그런 게 더 보여서 그렇죠, 저도 많이 얄밉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극 중 이수경이 매우 의지하는 인물이다. 호흡이 어땠나?
-제가 설정상 수경이 과외선생이면서 엄마처럼 돌봐준 인물이라 수경이한테 쓴소리도 할 수 있는 인물이었죠. 얼마나 선생님을 바꿨을까요? 그래도 진심으로 다가온 사람이 희정이가 아니었나 싶어요. 미라의 첫 맥주는 희정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수경이가 실제로 밀가루를 못 먹더라고요. 알러지가 있다고 해서 밀가루 없는 음식 찾아보고 그랬어요. 현장에서 스노우 어플로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고 그랬어요. 굉장히 사랑스러웠어요. 되게 귀여웠죠.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친해지면 묘하게 기울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귀여운데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는 확 바뀌니까 소름이 돋은 적도 많은, 배울 점이 있는 동생이었죠.
최민식과도 첫 호흡이었는데.
-워낙에 스크린에서 많이 보던 분이라 실제로 봤을 때 실제로 보고 정말 놀랐죠. 너무 나쁜 놈이더라고요.(웃음) 제가 나쁜 놈이라고 할 정도로 현장에서는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정말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힘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최민식이 조언해준 게 있다면?
-존재 자체가 조언이죠.(웃음) 제가 잘 몰라 모욕감을 어떻게 느껴야 할까요? 심문하는 과정에서 고민할 때 선배님이 '좀 더 해도 괜찮다'고 얘기해주신 적이 있어요. 변호사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말이죠. 어떻게 해라가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주시곤 했어요. 되게 즐거웠죠. 현장을 즐겁게 만들어주셨던 셈이죠.
정지우 감독은 어땠나?
-예리하신 눈빛이 굉장하게 느껴졌어요. 관찰하는 눈빛을 봤을 때 배우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배우에 대한 애정도 느껴졌죠. 배우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고민도 굉장히 많이 하시더라고요.
박해준 씨와 과거 연인으로 등장하는데 14살 차이다.
-(웃음)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다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러다보니 둘의 관계에 대해 어땠을지 얘기하면서, 연애는 언제 했고, 뭐 때문에 헤어졌고, 집에 있던 강아지는 남자가 키우게 됐고,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상황극을 시작했어요. 애드리브였는데 그게 그대로 영화에 담겼죠. 중간에 마가 떴는데(대화의 흐름이 끊겨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상황) 20분 정도 카메라가 그대로 돌아갔었죠. 그 외에도 몇몇 장면이 있었지만 편집됐어요.
오래 연기를 했지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최민식 선배님이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제가 한 번은 '30년 넘게 연기를 하셨는데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여쭤본 적이 있어요. 뭔가 답을 정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금방 간다고요. 선배님의 필모그래피와 연기 생활을 직접 목격한 상황에서 어떤 배우가 돼야겠다고 정의를 내리고 싶지는 않아요. 오래 변치 않고 열정적인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현장에 1번으로 와 계시더라고요. 현장을 사랑하신다고 느꼈어요. 저도 현장에 대한 애정이 큰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새발의 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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