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권혁기 기자] 말 그대로 전설의 귀환이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밴드 에메랄드 캐슬이 컴백한다.
에메랄드 캐슬은 대표곡 '발걸음'으로 대변되는 밴드이다. '발걸음'하면 에메랄드 캐슬, 에메랄드 캐슬하면 '발걸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97년 데뷔한 에메랄드 캐슬의 1집은 고(故) 신해철과 작곡가 김영석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1집 'Invitation'의 타이틀곡 '발걸음'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발표 당시 히트를 쳤다기 보다는 30~40대 남성들에게 지금까지도 불리는, 노래방 애창곡에 수록될 정도의 롱런곡이 됐다.
멤버들의 변화가 있었던 에메랄드 캐슬은 보컬인 지우가 팀을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당시 소속사 대표가 에메랄드 캐슬이라는 이름을 언제든 쓸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에메랄드 캐슬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뭉친 다섯 남자는 내년 1월 13일 젊음의 거리이자 음악의 메카 홍대 롤링홀에서 콘서트를 열고 전국 투어를 계획 중이다.
전설의 귀환에 앞서 <더팩트>는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카페에서 '완전체' 에메랄드 캐슬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다시 돌아온 보컬 지우, 기타 김상환, 베이스 김영석에 새로 영입된 건반 최문석, 드럼 송국정까지 자리에 앉자 록밴드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다음은 록 스피릿이 살아있던 에메랄드 캐슬과 나눈 일문일답.
-정말 팬이다. 30대 중반으로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을 모르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노래방 18번이기도 하다. 꽤 긴 공백기가 있었는데 재결합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일동 웃음) 김영석(이하 영석): 감사합니다. 작년에 고(故) 신해철 추모공연을 하는데 신해철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더라고요. 김동률, 엄정화 씨도 있고 했지만 연말이라 공연이 있던 가수들도 있었죠. 신해철과 동시대 활동했던 가수들이 모여 공연을 하는데 저희는 또 신해철 씨가 프로듀싱을 했기 때문에 모이게 됐죠. 그런데 사실 다들 자기 일이 있었어요. 지우는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고 (최)문석이하고 (송)국정이는 다른 가수들 세션(동반연주자)을 하고 있었는데 제안을 했죠. 에메랄드 캐슬 노래를 들으면서 자란 세대라 원년 멤버들이 뭉치면서 두 친구가 팀원이 됐습니다.
지우: 사실 지금도 얼떨떨 해요. 밴드라는 게 여러가지 합이 맞아야하는 팀인데 떨어져 있던 시간이 오래돼 지금도 맞춰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물론 처음 만났을 때보다 알고 있는 게 많으니까 끈끈한 것도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두르지 않는 것 같아요. 저도 이번에는 오래 갈 생각입니다. 그런 목적을 두고 있다보니까 지금은 과거에 대한 소회보다 '신인'의 마음인 것 같아요. 그동안 저와 영석이 형은 현장, 그 현장의 뒤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경기장으로 따지면 선수가 아닌 코치였죠. 지금은 모든게 생소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해요. 기술적인 발전도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초기보다 진지합니다. 그래서 허황된 꿈을 꾸지 않는다고도 생각돼요.
영석: 지금은 힙합이 대세지만 저희 때는 야다 등 록 발라드 장르가 대세였죠. 넥스트에 영향을 받은 그룹이나 밴드는 가사도 무겁고 멜로디도 가볍지 않은 게 있었어요. 그러나 에메랄드 캐슬은 가벼운 느낌으로 만들자고 작정한 팀인데, 프로젝트 성향이 강했죠. 사실 저희 데뷔 때 S.E.S.도 있었고 H.O.T.도 있었는데 그런 아이돌에 대적하기 위한 밴드였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타이틀곡도 '발걸음'이 아니라 다른 빠른 템포의 곡이었는데 제작자나 매니저들이 '발걸음'이 괜찮다고 해서 바꾸게 된 겁니다. 사실 처음에는 파격적으로 뜨지는 않았죠.(웃음)
김상환(이하 상환): 한 번은 '서세원쇼'에 나갔는데 저희가 웃긴 멤버들이 아니다보니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출연 이후 (앨범판매)물량이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대학교 축제도 많이 가고 했는데 가보면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괜찮아 기분이 좋았죠. 당시에는 생각도 못했던 방식으로 앨범 홍보를 했어요. TV CF로요. 주변에서는 '얼마나 돈이 많길래 음반 홍보를 CF로 해?'라는 분위기었는데 어쨌든 그로 인해 홍보가 잘됐고, 또 후배 가수들이나 아이돌 멤버들이 '발걸음'을 애창곡이라며 불러주니까 계속 잊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항상 노래방 애창곡 차트에 있는데 '발걸음'의 숨은 공신은 남자들이 불러주면서 홍보가 됐다고 볼 수 있죠.
-저도 그 공신 중 한 명인 것 같다. 이번에도 '발걸음'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곡과 다를 것 같다.
상환: 새 싱글 '그 남자의 사랑'도 좋은 노래라고 생각하는데 워낙 '발걸음'이 대중에게 임팩트가 강해 이번에 다시 녹음했어요.
최문석(이하 문석): 팬들을 위해 아티스트가 존재하니까 '발걸음'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조관우 형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는데 형님께서 '내가 이 노래 '늪'을 몇 십년 째 부르고 있어. 그래도 해야해'라고 하셨는데 그게 푸념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건 아티스트를 보러와준 관객들을 위한 프로의 자세라고 생각했죠.
-문석과 국정은 새 멤버이지만 나머지 셋은 기존 멤버이다. 이번에 '발걸음'도 새로 녹음했는데 1집 때와 비교했을 때 보컬의 기량 차이가 있나?(웃음)
영석: 예전이 더 잘했죠.(웃음)
지우: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이 더 좋아요. 저 스스로 협조하게 되고 공연하고 싶은 그런 마음들 때문에 진짜 해보고 싶은 거죠. 에메랄드 캐슬이 잠깐 지나간 밴드라 못해본 게 너무 많아요. '발걸음'이 히트했지만, 진심으로 노래를 부르면 어느 하나가 딱 맞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끝을 볼겁니다.
상환: 연륜은 지금이 더 느껴지지만 1집 때 에너지, 파워풀, 쨍쨍함은 비교가 안되죠. 호불호가 나뉘는 편인데 지금 부른 게 연륜이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요. '노래 잘하네' '목소리 유지 잘했네'라고요. TV 예능인 '수상한 가수' 때 칭찬 일색이더라고요. 원곡과 이질감이 없고 라이브를 잘했다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가사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예전에는 촌스럽지 않았나 싶어요.
문석, 송국정(이하 국정):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들어도 손색이 없는 명곡이죠.
-각자 다른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일을 했나? 그리고 송국정과 최문석은 어떻게 에메랄드 캐슬과 인연이 닿았나?
영석: 저는 노바소닉 다음에 7~8년 정도 개인사업을 했어요. K2나 신성우 공연이 있을 때 세션을 하는 정도였고 개인적으로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했는데 지금도 주직업이라고 볼 수 있죠.
국정: 저는 영석이 형님을 고등학교 때 처음 뵀어요. 당시 제가 밴드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고 회사에 들어갔는데 2003년에 저희 앨범 프로듀싱을 맡아주셨죠. 그때 저희도 보컬이 나가면서 밴드가 해체됐어요.(일동 웃음) 이후에도 계속 세션을 하면서 음악 활동을 했는데 고호경 씨 세션을 할 때 형님이 저보고 같이 에메랄드 캐슬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죠.
문석: 저도 세션활동을 할 때 다른 형님 소개로 처음 영석 형님을 만났죠. 같은 동네 주민이라 매일 같이 술마시고 같이 합주하다 에메랄드 캐슬 얘기를 하셨어요. 저한테는 형님이 스타였거든요. 한 번은 치킨집에서 만났는데 트레이닝복에 야구모자를 쓰고 오셨어요. 그런데 진짜 잘생긴 분들은 광채가 나잖아요. 잠깐이지만 이세창 분위기가 나서 신기했죠.(일동 웃음)
-현재 곡작업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영석: 과거에는 제가 작사, 작곡, 편곡을 거의 다 했죠. 그런데 작곡보다 편곡이 더 많은 일을 하거든요. 집을 지을 때 설계자도 중요하지만 망치질을 하는 목수도 중요하니까요. 그런 일을 우리 문석이가 합니다. 건반을 치니까 그런 것도 있는데 일단 제가 음악을 쉰 것도 오래됐고 요즘 트렌드는 젊은 친구들이 잘 아니까요. 그리고 사실 편곡하는 사람들은 자기랑 비슷하게 편곡을 하면 그 편곡자를 좋아하게 되는데, 나랑 비슷하게 하면 잘하게 느껴지는거죠.(웃음) 그래서 저는 이 친구들을 잘 키우면 거저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문석이한테 일임하게 됐죠.
문석: 형님 음악들을 들으면서 자랐으니 그럴 수 밖에요. 영석이 형이 이렇게 말씀은 하셨지만 머리에 작곡과 편곡이 있고 거의 저한테 확인만 하는 수준이세요. 작업 스타일은 멤버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곡을 만들어오면 들어보고 서로 고치고 하죠.
영석: 예전에는 작업을 하면 편곡까지 마친 상태에서 연습하고 고치고 했는데 그러면 녹음실도 잡아야하고 시간과 돈,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 데모 작업을 해 SNS로 공유해 들어보고 작업을 하죠. 그러면 50%의 기본 뼈대가 있는 상황에서 드러머가 자기 파트를 만들어 넣고 믹싱까지 해서 보내주면 각자 살을 붙이죠. 스튜디오 작업이 많이 줄었고 마스터링만 외부에 맡깁니다. 그럼 에너지도 절약하고 각자 자기 파트를 맡으니까 자기 생각이 더 들어갈 수 있죠.
상환: 제가 제일 느려요. 다들 자기 직업이 있지만 저는 특히 몸이 매인 직업이라 10~12시간은 일터에 있어야하거든요. 지우 형은 학교와 학원을 병행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죠.
지우: 문석이랑 국정이는 현장에 있었고 영석 형이랑 상환이는 현장에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도 있지만 녹음에서 제일 늦는 게 기타와 보컬이거든요. 디테일하게 해야하는 것도 있지만 현장에서 오래 떠나 있어서 감각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장비가 생소한 것도 있고 감도 무뎌진 것 같아요. 감정도 달라졌을 것 같고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새롭게 모인만큼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아요. 그게 워밍업인 셈이죠. 친구들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어디까지 나올 수 있고 개인적인 기량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석: 이 형들 욕심이 많아요.(웃음) 정말 잘하고 싶고, 될 때까지 하니까요. 제가 1번으로 곡을 올려야하는데 저도 빠른 편은 아니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더뎌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사랑을 많이 받은 곡이 있었음에도 에메랄드 캐슬이 해체됐던 이유가 궁금하다.
지우: 제가 나가서 그렇죠. 돈도 안됐고.(웃음) 당시 소속사는 뱅크, 김혜림 등 음악적으로 탄탄한 가수들을 키우고 있었어요. 2집까지 계약하고 에메랄드 캐슬은 없다고 했죠. 그러다 김현정이 잘돼 회사가 살아났는데 IMF가 터지면서 회사가 어려워졌어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니 계약은 여기까지 하자고 회장님이 얘기하시더라고요. 대신 에메랄드 캐슬이란 이름을 써도 된다고 해주셨죠. 사실 제작자 입장에서 밴드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항상 돈이 부족한 편입니다. 멤버가 많지만 공연이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그럴 때 쉽게 풀리는 가수가 나오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고 봅니다. 영석이 형이 얘기했지만 에메랄드 캐슬 자체가 자생적으로 생겨난 팀이 아니라 프로젝트성이 강한 팀이고 멤버들이기 때문에 다들 각자의 이유로 팀을 나갔던 거죠.
상환: 당시에는 스무살이었고 패기가 넘쳤죠. 막상 나가보니 생각이 잘못됐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을거라 생각해요. 뭉쳤을 때의 시너지와 혼자 있을 때 크게 느껴지는 부분들. 오해 아닌 오해가 있어 서로 다른 길을 걸은 셈이죠.
지우: 팀을 나와 생활하면서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었지만 항상 못다한 숙제처럼, 너무 경기를 금방 그만둔 선수같은 마음이 있었어요. 어떤 일을 하면서도 제가 에메랄드 캐슬 보컬이었다는 걸 잊은 적은 없습니다. 제 마음의 원동력 중 하나가 '나는 '발걸음'을 부른 사람이야'라는 게 있었거든요. 다 비슷할 것 같아요. 팀을 나왔다고 달라지지는 않았겠죠? 제 프라이드 중 하나이고,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습니다.
-1월에 멋진 공연 기대하겠다.
일동: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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