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금비' 허정은 "박신양 아저씨처럼 자신만의 연기하는 배우 될래요"
[더팩트 | 김경민 기자] 눈빛에 무게가 있다.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짓다가도 풍파를 짊어진 한스러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금비라는 이름으로 시청자를 울린 10세 여자아이, 아니 여배우 허정은의 이야기다.
허정은은 지난 11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오 마이 금비'에서 아동 치매에 걸린 유금비 역을 맡았다. 금비는 지상파, 그것도 주력 콘텐츠인 수목드라마에서 온전히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었다. 김영조 PD의 "보자마자 미소가 지어졌다"는 말처럼 허정은은 그 말에 담긴 위력을 그대로 입증했다. 허정은의 등장에 될성부른 떡잎을 발견한 기쁨은 덤이었다.
이러한 큰 존재감과는 달리 무척 작고 귀여운 꼬마아이가 지난 23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더팩트> 사옥 문을 밀고 들어왔다. 고운 벚꽃색 한복처럼 분홍색으로 뺨을 물들인 허정은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취재진 카메라 앞에 섰다.
이번 설 연휴 <더팩트> 독자들을 위한 새해 인사부터 꽃받침과 사랑의 총알, 예쁜 하트까지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포즈로 인사했다. 꽤 오랜 시간 있는 힘껏 미소를 지은 탓에 조금 얼얼해진 볼을 마사지하는 허정은을 보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부터 흠뻑 빠졌다.
허정은은 '오 마이 금비'를 마치고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넘어졌다가 다시 뛰어도 달리기는 반에서 1등"이라는 허정은은 그토록 원했던 말을 타보고 들뜬 추억을 되새겼다. 친척들과 청평 여행도 다녀와서 "알아보는 사람은 예전에도 있었는데 기분은 되게 좋다"고 인기를 체감한 소감을 밝혔다.
벌써 드라마 필모그래피만 '유혹' '화정' '동네변호사 조들호' '구르미 그린 달빛'까지, 내로라하는 탄탄한 작품은 두루 거쳤다. '2016 KBS 연기대상' 여자 청소년 연기상과 함께 베스트 커플상까지 최연소 나이에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오 마이 금비' 오디션은 어떻게 봤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기억나지 않아야 붙는 오디션이라는 경험담도 생겼다.
"'오 마이 금비' 오디션 볼 때 되게 많이 떨렸어요. 주인공이기도 하고 첫 주연이니까 되게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붙어서 기뻤어요. 이걸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열심히 하거든요. 사람들이 뭘 물어봤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요. 되는대로 말했어요. (오디션에)붙을 땐 기분이 좋지만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붙지 못할 땐 (결과가 나오기 전에)오디션 보고 나서 기분이 안 좋아요. 오디션 보기 전날에는 항상 연기하는 꿈을 꾸다가 새벽에 깨요. 되게 긴장되요.
('오 마이 금비'를)잘해낼 수 있을까 조금 불안하기도 했어요. 연기할 때는 우는 신이 많아서 너무 어려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금비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했어요. '동네변호사 조들호' 때 박신양 아저씨가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라고 물어본 후에 대본대로 안 하고 지어서 했거든요. 그렇게 하니까 어색하지 않더라고요."
막 사옥에 들어올 때와는 달리 조금 긴장이 풀린 허정은은 보면 볼수록 참 맑았다. 우는 연기가 힘들고, 하고 나면 졸렸다는 열 살 배우의 고충이 순수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때 묻지 않은 생각은 눈빛 하나에 '배운 연기'가 아닌 진정성을 실을 수 있는 바탕이었다. 허정은은 이미 자신도 모르게 그것까지 해내고 있었다.
"우는 연기는 하기 전에도 졸리고, 해도 졸리고, 자고 일어나도 졸려요. 울면 되게 힘들어요. 힘든데 재밌어요. 전에는 재미가 없었는데 갈수록 우는 연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몇 시간 들여서 쥐어짜야 우는 연기 한 장면 찍었는데 그나마 나아졌어요.
전에는 사람들이 진짜 엄마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울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이제 크니까 엄마가 있다는 걸 알잖아요.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해요. 금비에게 몰입하면 눈물이 나요. 전에는 엉엉 우는 게 제 연기인 줄 알았거든요. 엉엉 울어야 우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참으면서 우는 것도 우는 거더라고요. 학교에서도 애들은 엉엉 우는데 저는 우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참으면서 울거든요. 금비는 슬프니까 우는데 저라면 참는데도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슬프지만 참으면서 우니까 말이 잘 안 나왔어요. 자기대로 연기해야지 남 연기 따라 하면 안 되니까요."
허정은은 "TV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고 TV에서 내가 이렇구나 보는 것"을 연기의 재미로 꼽았다. 특히 지난해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송중기와 만남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당시 허정은은 오지호와 박보검, 박신양을 제치고 송중기를 선택하는 '중기바라기'로 보는 이들의 '엄마 미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제 이와 관련된 허정은의 솔직하고 침착하고 신중한 대답을 다시 들어봤다.
"솔직히 중기 삼촌과 보검 오빠 둘 다 좋죠. 고르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공동 1위라고 할래요. 그런데 보검 오빠도 좋았는데 중기 삼촌이 조금 더 좋아요. 중기 삼촌은 작품으로 볼 때도 잘생겼지만 실물이 TV보다 더 잘생겼더라고요. 이상형은 보검 오빠예요. 귀여운 남자를 좋아해요. 중기 삼촌도 귀여운데 보검 오빠가 더 귀여워요. 중기 삼촌은 더 잘생겼어요. 보검 오빠는 뭐랄까. 많이 친해져서 익숙하고 덜 좋은 거에요. 중기 삼촌도 시상식 때 좋았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 또 만나면 그 사람이 더 좋아지겠죠."
갈대 같은 게 여자의 마음이라던가. 실제로 보면 더 좋아지고,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순위는 쉽게 뒤집힐 수 있는 것이었다. 이상형은 귀여운 남자인데 더 좋아하는 건 잘생긴 남자였다. 삼촌과 오빠의 구분은 분명 명확했는데 대화 속에서 '박신양 아저씨'까지 등장하니 들을수록 어려웠다. 혼란스러워하는 기자의 동공지진을 확인한 허정은은 명쾌한 해답을 내놨다.
"남자는 삼촌이고 여자는 언니예요. (기자에게)언니도 언니예요. 남자 중에 오빠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보검 오빠는 기억은 안 나는데 SBS '원더풀 마마'에서 같이 만났고 KBS2 '구르미 그린 달빛' 때도 만났어요. 삼촌이라고 부르다가 오빠라고 부르는 거예요.
원래 공유 삼촌이 좋았어요. 공유 삼촌 촬영장이 '오 마이 금비' 촬영장이랑 가까워서 소품 삼촌이 데려다줬어요. 얼굴 빨개져서 사진도 두 장 찍었어요. 공유 삼촌 만났을 때 너무 긴장이 돼서 기억이 안 나요. 그땐 공유 삼촌이 더 좋았어요. 시상식에서 중기 삼촌을 보고 더 좋아진 거고요. 공유 삼촌은 연기를 잘해요. 연기 잘해서 좋은 사람도 있고 잘생겨서 좋은 사람도 있는데 공유 삼촌은 연기 잘해서 좋아요."
허정은은 삼촌들 이야기를 하다가 한 가지를 부탁했다. 중기삼촌 전화번호를 안다고 잘못 알려졌으니 바로잡아달라는 것이었다. 지난 '오 마이 금비' 기자 간담회에서 오지호는 허정은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조르면서 "송중기 번호를 알려주겠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이때 허정은이 "송중기 삼촌 번호를 안다"는 대답을 했다고 와전된 것이다. 잔뜩 울상이 된 허정은은 공식적인 해명 기회를 얻었다.
"처음에 우리 언니가 번호를 안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안다고 잘못 나온 거예요. 엄마한테 '언니가 번호 아는 거 맞냐'고 물어봤는데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냐. 없다'고 했어요. 지호삼촌에게 제 번호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못 외워서 알려주지 못한 거예요. (기자에게)언니가 나중에 중기삼촌을 만나면 전화번호를 얻어서 저도 알려주세요."
허정은은 기자의 올해 목표로 송중기 인터뷰를 제시했다. 반면 자신의 올해 목표에 대해서는 "계획 같은 건 없다. 시간이 없어서 친구들과 방방(트램펄린)타고 싶다. 방방 타고난 후에 계단 끝에서 점프하면 재밌다"고 활짝 웃었다.
"수학이 제일 어려운데 할 수밖에 없다. 영어는 미국에 안 가고 일본 가면 되는데 수학은 다 쓰이니까"라고 '쿨한' 답변을 내놓는 허정은. 연기자로는 똑 부러진 포부를 갖춘 유망주다.
"어제 꿈은 소방관이었다가 그저께는 경찰관이었어요. 지금 꿈은 배우가 됐어요. 박신양 아저씨처럼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자신만의 연기를 하는 배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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