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강일홍 기자]'사철가'는 전통 구전문학 중 한 갈래인 단가로 지금도 많이 불리는 노래다. 음악적 기준에서는 '고리타분한 고전'으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사계절을 빗대 풀어내는 노랫말(작자미상)에서 풍기는 심오한 인생사와 삶의 지혜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중 '국곡투식 허는 놈과 부모 불효 허는 놈과 형제 화목 못허는 놈, 차례로 잡아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 버리고~'라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강오륜을 중시한 오랜 전통의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효도와 형제화목을 첫번째 덕목으로 꼽았다. 웃어른 공경하기, 부모님께 효도하기, 임금과 조상 섬기기 등은 변함없는 고유 미풍양속이었던 셈이다. 사철가에 등장하는 '곡곡투식(國穀偸食) 허는 놈'은 나라의 곡식을 몰래 훔쳐먹는 사람이다. 요즘으로 치면 국가의 세금을 몰래 빼돌리고 축내는 자를 이르는 것인데 불효나 형제불화의 죄보다 비중을 크게 뒀다.
지금 '최순실 게이트'가 온 나라를 혼돈으로 이끌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은 어떤 공적인 지위도 전문성도 없는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부터 나라 정책, 국가 기밀까지 쥐락펴락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기업을 협박해 744억 원을 뜯어내 미르·K스포츠재단을 세우고,'창조경제'를 빌미로 나랏돈을 마구잡이로 끌어다 쓴 일 때문이다. 더구나 청와대가 직접 관여해 뒷배를 봤다는 의혹은 더큰 허탈감을 맛보게 했다.
◆ 최순실 지렛대 삼아 대통령의 신임 받은뒤 '이권 개입 의혹'
최순실과 현직 대통령 간 의혹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가장 의아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최순실의 하수인으로 비치고 있는 차은택(47)과의 관계다. 차은택이 CF감독으로 대중문화계에서 명성을 날렸던 인물이긴 하지만 그가 어떻게 해서 권력에 줄을 대고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며 정부가 임명하는 요직에 몸담을 수 있었는지는 수수께끼다. 중국에 머물다 8일 밤 귀국해 검찰에 긴급체포된 차은택의 입에서 앞으로 어떤 말이 나올지 주목하는 이유다.
차은택의 행적은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이슈다. 그는 잠적 이전에 이미 자택인 강남구 청담동 고급빌라와 자신의 회사 아프리카픽쳐스가 있는 논현동 건물 등을 급매물로 내놓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재산 정리를 통해 추후 있을수 있는 검찰 추징보전을 피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분석이다. 논현동 건물은 차은택이 단독주택을 구입한 뒤 이곳에 직접 빌딩을 지을만큼 각별한 애착을 가졌던 부동산이라고 한다.
차은택과 함께 일하며 누구보다 그를 잘 안다고 밝힌 한 연예계 인사는 "부동산에 각별한 애착을 가졌던 차씨가 이 시점에 급매물로 내놨다는 사실은 불법행위로 인해 최악의 경우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추징당하는 일은 피하고 싶어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조용한 성격에 셈이 밝고 자기과시형 스타일"이라면서 "갑자기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에 위촉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솔직히 좀 걱정스러웠다"고 덧붙였다.
◆ 문화계 황태자로 부상 "차은택한테 줄 안서면 아무것도 못해"
차은택은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해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부에서 활동했고, 대학때 이미 광고 프로덕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출과 마케팅 매력에 빠져들었다. 졸업후엔 광고 CF감독으로 활약하면서 가수 백지영의 히트곡 '사랑안해'의 가사를 써 수억원의 작사 저작권료를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느날 갑자기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계 인사'로 떠오르더니 '차은택한테 줄을 안서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차은택은 최순실을 지렛대 삼아 대통령의 신임을 받은 뒤 그 신임으로 각종 이권을 따내는데 활용했다. 그가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을 지내면서 주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은 총 7000억원의 예산이 책정돼 현재까지 1000억여원이 집행됐다. CJ그룹의 문화예술사업 성과를 가로채려 했다는 증언이 나온데 이어 측근을 통해 한국음반산업협회와 아프리카TV 간의 '다음송 보상금' 갈등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차은택이 '2015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 사업 등 정부 사업을 수주할 때마다 기존에 배정된 예산보다 큰 폭으로 오른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린다는 뜻으로, 즉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란 말이 있지만, 비선 실세와 그 측근인 또다른 실세가 온갖 이권에 개입하는 동안 나랏돈은 줄줄 새나갔다. 사철가에서 왜 '국곡투식하는 놈'을 악질로 분류했는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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