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무대서 고꾸라지고 싶다는 배우 이해해"
[더팩트 | 김경민 기자] 배우 윤여정(69)의 변신은 무죄다. 지난 5월 영화 '계춘할망'(감독 창)에서 손녀를 보듬는 따뜻한 계춘 할머니로 관객과 만났던 그가 이번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에서 치명적인 여자로 돌아왔다.
'죽여주는 여자'는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며 먹고 사는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 소영이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을 진짜 '죽여주게' 되면서 벌어지는 영화다. 제목에 담긴 중의적인 의미처럼 소영은 삶과 죽음, 그리고 노인 문제에 화두를 던지고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현상만 본다면 끔찍한 소재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생각이 복잡해질 관객을 위해 배우 윤여정과 소영의 인생을 고스란히 안았던 윤여정에게, 소영의 선택은 어떤 의미였을지 허심탄회하게 물어보고 답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봤나.
"외국 영화제에서 두 번 봤다. 베를린에서 봤을 땐 그냥 정신없이 봤고, 두 번째 봤을 땐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 반으로 봤다. 연기한 당사자는 잘 모른다. 영화 줄거리보다는 내가 연기하는 것만 보게 된다."
- '죽여주는 여자' 출연을 결심하는 데 고민스러운 점은 없었나.
"이재용 감독과 내 스타일은 울부짖거나 포효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담담해서 별걱정 없었는데 (캐릭터에)빠져들게 되면서 우울증이 오고 힘들었다. 이재용 감독이 그렇게(자극적이지 않게) 표현할 줄 알았다. 요즘 한국 영화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이다. 그렇게 표현할 사람이라면 출연하지 않았겠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출연했다. 감독을 믿고 하기로 했으면 그 다음 현장에서 '왜 이러냐'고 따지는 걸 싫어한다. 시간 낭비다."
- 성매매 할머니 소영을 보면서 배우로서 거리감이 느껴지진 않았나.
"그런 노인이 있다는 걸 뉴스에서는 봤지만 남의 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세세히 들여다보진 않았다. 피상적으로 힘들고 끔찍한 일이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걸 표현할 때 고통스러웠다. 내가 장관이라서 대책을 세우고 해결할 위치도 아니고 이런 영화를 만듦으로써 여러분(취재진)이 늙어서 사는 세상엔 그런 할머니들이 없어진다면 좋은 일이지."

- 소영 외에도 소수자나 소외된 이들이 주인공이어서 눈길을 끈다.
"(그런 사람들에게)관심이 많아서 선의의 행동을 하는 건 없지만 스스로 약자였던 적이 있었다. 호주에 있을 때 아이들이 뒤에서 졸졸 쫓아다니면서 눈을 찢고 놀렸다. 지금은 국력이 좋아졌지만 1970년대엔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보면 '너넨 밥만 먹냐'고 물어봤다. 올림픽 전까지 그랬다. 여러분(취재진)은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
그게 소외된 거였지. 누구나 어디에서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늘 내가 주류는 아니다. 그러니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면 안 된다. 똑같은 사람일 뿐이고 생각이 다른 것이다. 범죄자 취급을 하지 말자. 소영이는 범죄자였지만 다른 애들은 아니다."
- '계춘할망' 인터뷰에서 '잘 죽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조금 걱정했다.
"젊은 사람은 그렇게 느낄 수 있는데 물리적으로 죽음과 가까워지면 담담해질 수 있다. 감독과 죽여준다는 문제에 대해 상의도 많이 했다. 영화 제작 일주일 전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다더라. 이 주제를 잘못 건드려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고민 때문이더라.
소영은 예전에 자식을 버리고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여자의 상황이었다면 정말로 죽고 싶었을 것 같다. 꾸역꾸역 살고 있잖나. '성매매 말고 다른 일하지'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노인이 노동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를 죽이는 심정으로 사람들을 죽일 것 같다. 그래도 살고 있는 건 내 새끼를 언젠가 한번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
- 고민의 결과,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의 가닥이 잡힌 게 있나
"책도 많이 읽었는데 가닥이 잡힌 것 없다. 사람들은 '잘 죽는 것'을 이야기하면 놀라더라. '잘 살 것'에 대해선 고민하면서 말이다. 내 인생인데 내 생각대로 살아야지. 책을 보고 다른 발자취를 좇아서 뭘 하겠나. 이제 100세 시대가 됐으니 어떻게 하면잘 죽을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
사람은 어차피 죽을 건데 잘 죽는 방법을 논하는 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책에도 결론은 없지만 어떤 걸 읽어보니 한 교수 출신 암 환자가 더는 아무 치료도 받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집에 와서 피아노 레슨을 하고 싶어하더라. 하던 일을 하다가 죽는 거지.
그래서 배우들이 무대에서 죽고 싶다, 무대에서 고꾸라지고 싶다 하는 거였다.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하다가 죽는 것. 그래도 엿장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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