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춘할망' 김고은 "일상적인 감정 연기, 더 고민했다"
[더팩트 | 김경민 기자] 배우 김고은(25)의 매력은 흑과 백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빛을 받는 캐릭터 옷을 입으면 한없이 밝다가도 어두운 사연을 가진 이를 연기할 땐 눈빛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쌍꺼풀 없는 눈매는 유순하게 반달이 됐다가도 한껏 날카로워진다. 그만의 개성 있는 명암이 영화 '계춘할망'(감독 창)에서도 힘껏 살아난다.
김고은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빛부터 어둠을 함께한 '계춘할망'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더불어 한창 현재진행형인 배우로서 시작과 또 달라진 변화들을 '쿨하게' 꺼내 보였다.
그는 언뜻 보기에도 눈에 확 띌 정도로 짧게 자른 머리스타일로 대변신했다. '계춘할망' 전작인 케이블 채널 tvN '치즈인더트랩'의 긴 곱슬머리가 눈에 익었던 터라 더욱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가벼워진 머리스타일처럼 김고은의 눈웃음도 날개를 단 듯했다.
"개인적으로 연기를 시작하고 (스스로)머리스타일을 바꾼 적이 없어요. 작품 때문에 자르라고 하면 잘랐죠. '치즈인더트랩'에서 한 달에 두 번은 파마랑 염색을 했더니 완전 상했더라고요. 그럼 차기작은 어떡하냐고요? 너무 폭주했죠. 그동안 한 작품을 끝내도 차기작이 정해진 상태에서 쉬니까 불안했는데 지금은 아예 없어요. 이런 시간도 한번 지내보려고요."

김고은은 '계춘할망'에서 제주도 해녀 계춘(윤여정 분) 할머니 앞에 12년 만에 나타나는 손녀 혜지 역을 맡는다. 재회한 혜지는 계춘이 잃어버렸을 당시 6살이었던 혜지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남사스러울 정도로 짧은 반바지에 찢어진 스타킹, 쭈그려 앉아 너무 자연스럽게 무는 담배, 계춘에게 뭔가 숨기는 듯한 의뭉스러운 태도. 이처럼 불량한 요소는 다 집어넣었던 혜지지만 계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진짜 할머니와 손녀 사이로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꽃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계속 햇볕이 쏟아지면 얼마나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할머니와 손녀 이야기는 김고은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살던 어린 시절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할머니는 애틋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후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되면서 부딪히기도 하고 정말 가족 같은 '쿨한 관계'가 됐다.
"할머니가 영화 보자마자 '잘 봤다'고 하더라고요. 울진 않은 것 같아요. 소감은 극장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서 힘들었다는데요(웃음)? 극 중 혜지의 마음이 나만 느꼈을 법한, 겪었을 법한 감정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감정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자칫 잘못하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감정이 과잉돼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게 고민이었어요. 평범한 이야기라서 조심스러웠죠. 그동안 맡은 역 중에 가장 일상에 가까운 현실적인 인물이죠."

김고은이 '계춘할망'에서 만난 할머니는 다름 아닌 윤여정이었다. 김고은에겐 대선배를 넘어 '선생님'으로 불러야 할 윤여정과 첫 만남이 어색하긴 했지만 두렵진 않았다.
"무섭진 않았지만 선배들을 처음 만나면 조심스럽죠. 윤여정 선생님과 처음 만났을 땐 이야기를 경청하고 조금씩 질문하고 진짜 할머니 챙기는 것처럼 챙겼어요. 뭔가 불편해 보이는 게 있으면 말하기 전에 해결하고 항상 시선이 선생님에게 가 있었어요."
그는 식사 시간이 되면 윤여정 옆에 붙어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정을 쌓았다. 윤여정이 "김고은이 내 덕을 본 건 내가 싸온 반찬을 함께 먹은 것 뿐"이라고 농담한 내용을 이야기하자 웃음을 터뜨리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점심 먹자'는 소리만 들으면 정말 좋아요. 밥차로 달려가는데 윤여정 선생님이 안 오길래 봤더니 도시락을 싸왔더라고요. 같이 먹자고 해서 밥차에서 밥만 퍼와서 선생님 집밥 반찬을 같이 먹었어요. 그 후로 선생님 옆에서 도시락 뚜껑 열기만 기다렸죠. 눈치가 보여서 멈칫하다가도 배가 너무 고프니까 먹었어요. 특히 촬영할 땐 밥심으로 버티거든요. 윤여정 선생님도 '한창 자랄 나이인데 많이 먹어라'고 했죠(웃음)."
그는 윤여정 덕분에 연기적으로 성장했다는 환희를 누렸다. "제일 흥분되는 순간은 그런 순간"이라며 "윤여정 선생님이 주는 감정이 너무 와 닿아서 우러나온 연기를 했을 때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고 잔뜩 신이 나서 풀어놓았다.

진심으로 하는 연기. 김고은이 추구하고 늘 잃지 않겠다고 되새기는 감정이다. 그는 데뷔작 '은교'(2012년)에서 처음 등장할 때 빛을 듬뿍 쬐고 있는 장면을 마음에 품고 힘들 때마다 꺼내본단다.
"매 순간 처음을 떠올려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은교'에서 처음 등장하는 그 장면과 느낌을 떠올리려고 해요. 가장 아무것도 모르고 감정만 생각하고 연기할 때, 모든 순간이 진심이고 진심이어야 연기가 나왔던 순간. 연기하다 보면 복잡해져요. 작품 전체를 보고 캐릭터도 생각하고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져요. 그럴 때마다 연기적인 게 아닌 어떤 순간에 탁 오는 리얼한 감정을 놓치지 않았는지 스스로 되물어요.
매 작품 목숨 걸고 하지만 '협녀'(2015년) 때 연기력 논란은 인정해요. 당시 최선이었다는 것도 인정하고요. 그때 실수를 '차이나타운'(2015년)에서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고 채찍질도 하고 있죠. 작품들로 감정을 소모하면 큰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스크래치가 나긴 하더라고요. '계춘할망'은 위로가 된 작품이에요.
'은교'란 작품은 말도 안 되는 배려를 받으면서 촬영해 완성된 작품이에요. 그 결과물 덕에 칭찬을 받았죠. '잘한다'는 이야길 듣고 싶어서 다음 작품을 선택한다면 애초에 생각했던 배우, 꿈꿔왔던 배우의 길을 못 가겠구나 생각했어요. 계획이 있어요. 단편영화나 독립영화를 많이 촬영하면서 이런 것 저런 것 도전하고 부딪혀보자는 생각이에요. 스스로 한계를 두거나 해보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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