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사망꾼' 2호 된 정준하, 안타까운 이유
[더팩트ㅣ김민지 기자]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은 정말 예능인들의 무덤 같은 곳일까?
개그맨 박명수에 이어 정준하까지 '마리텔'에서 큰 재미를 주지 못하며 '웃음 사망꾼'으로 낙인이 찍혔다. MBC '무한도전'에서는 타고난 예능감으로 웃음을 책임지던 정준하조차도 '마리텔'에서는 맥을 못춘 결과다. 인터넷 방송 당일에도 녹화 방송이 나간 뒤에도 '재미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22일 온라인 실시간 방송에서 그는 뭔가 서투르다는 느낌을 줬다. '마리텔' 터줏대감으로 능숙하게 자신의 방송을 진행하는 김구라나 가장 자신 있는 분야를 주제로 방송을 이끌어가는 요리연구가 이혜정, 스타일리스트 한혜연과 비교해도 정준하의 방송분이 시청자들에게 설익은 콘텐츠처럼 비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여느 예능 프로그램과 다른 '마리텔'만의 특성을 고려하면 '웃음 사망'에 대해 정준하에게만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마리텔'은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참여도가 높다. 방송에 참여하는 '팟수(다음 팟플레이어를 자주 보는 시청자들을 뜻하는 말)'로 불리는 누리꾼들은 재미있는 '드립(애드리브의 변형어로 재치 있는 말을 뜻함)'으로 스타들과 소통하며 방송을 풍성하게 한다. 그만큼 이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준하의 방송에서 몇몇 누리꾼들은 재치 있는 말이 아닌 악성 댓글을 써 방송 자체가 재미 없게 흘러가도록 했다.
누리꾼들은 정준하와 함께 '무한도전'에 출연하고 있는 박명수가 앞서 '마리텔'에 출연해 '웃음 사망꾼'이 된 것으로 재미를 만들어내려 했다. 이들은 정준하가 방송을 할 때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노잼(재미 없다는 뜻의 말)'이라는 말을 해 그에게 '웃음 사망꾼' 프레임을 씌웠다. 적당히 했으면 재미에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정준하가 당황해 방송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무리수 댓글을 반복했다.
또한 실시간으로 진행된 인터넷 방송에서는 차마 글로 담을 수 없는 악성 댓글이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무리 '프로 예능꾼'이라도 이런 모욕적인 말 앞에 위축되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실제 정준하는 누리꾼들의 반응을 세세하게 살피며 최대한 소통하려 노력했다. 당연히 수많은 악성 댓글들 역시 읽었을 터다. 이후 정준하는 때때로 방송에서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해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샀다. '웃음 사망'의 책임을 정준하에게만 돌릴 수가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물론 정준하가 누리꾼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정준하는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채팅창의 말들에 일일이 대응하기는커녕 방송을 어떻게 진행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너무 많은 콘텐츠를 보여주려는 나머지 방송이 산만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무한도전'이나 '마리텔'에서 편집과 자막의 힘을 빌렸을 때 정준하의 방송이 훨씬 재미있어진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이 방송이 악성 댓글로 조롱당할 정도였는지는 의문이다.
'마리텔'에서 악성 댓글로 피해를 받은 이는 정준하가 처음이 아니다. 요리연구가 백종원 역시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실시간으로 누리꾼들과 소통하다가 몇몇 이들의 비난에 가까운 댓글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당시 백종원이 방송을 하다가 악성 댓글을 보고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 카메라에 몇 번 포착된 바 있다. 결국 백종원은 지난 7월 프로그램에서 잠정 하차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의 하차에 앞서 '마리텔' PD가 악성 댓글을 자제해달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미뤄볼 때 이 문제가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마리텔' 생방송이 진행될 때 각 개인 방송마다 세 명 이상이 채팅창을 관리한다. 그만큼 채팅창에 악성 댓글이 많다는 것이다. '웃음 사망'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진행자가 준비하는 흥미로운 콘텐츠만큼 중요한 것은 매너는 갖추고 험한 말을 줄인 누리꾼들의 '센스'다.
'마리텔'은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로 화제성이 높은 프로그램이다. 1인 방송 콘텐츠라는 특수성과 실시간으로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진행 방식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고 여기에 '팟수'들의 재치 있는 말들이 곁들여져 재미를 더했다. 방송을 진행하는 유명인들의 콘텐츠가 방송의 50%를 만들었다면 나머지 50%는 누리꾼들의 '드립'이 채웠다. 그만큼 쌍방향의 소통이 '마리텔'의 핵심 재미요소다.
앞서 백종원의 방송을 보다가 그가 떡볶이에 많은 양의 설탕을 넣는 것을 보고 신기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웃음은 나지 않았다. 뒤이어 어떤 '팟수'가 그에게 '슈가 보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을 때, 필자의 웃음은 터졌다. '이보다 그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말이 있을까'라며 그 기발함에 감탄했다. 차홍에게 '긍정왕' 캐릭터를 만들어준 것도 김영만의 '코딱지'를 자청해 그를 눈물짓게 만든 것도 모두 누리꾼들이었다. 이처럼 '마리텔'을 시청하며 채팅에 참여하는 이들은 방송을 처음 보는 시청자이지만 또 방송을 함께 만들어가는 스태프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라면 정준하의 웃음이 사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과 아량이 있었다. 물론 시청자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차별적인 비난을 자제했다면 '웃음 사망꾼'의 재림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마리텔' 누리꾼들의 '센스'를 알기에 또다시 '웃음 사망'이 벌어진 이 상황이 무척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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