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이름 '진영'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순간
어릴 땐 현진영이 싫었다. 딱히 그의 음악이나 외모에 유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문제는 어른, 특히 아저씨들이었다. 아저씨들은 종종 이름을 얘기하면 "진영? 현진영이랑 똑같네. 현진영 고 진영 고"라며 춤을 췄다. 그 재미도 감동도 없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 다음에 나타난 인물은 박진영이었다. 현진영 에피소드에서 추측할 수 있겠지만 그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 역시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2005년 영화 '왕의 남자'가 흥행하며 인생에 세 번째 진영이 나타났다. 이번엔 성까지 '정'으로 같았다. 그 이후로 "네? 전진영 씨라고요?", "장진영이요?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정진영이요. '왕의 남자' 정진영이랑 똑같아요"라고 답할 수 있게 됐다. 어려운 발음의 이름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 딱 그거 하나가 좋았다.
그러던 인생에 또 한 명의 진영이 나타났다. B1A4의 멤버 정진영이다. tvN '응답하라 1994'가 한창 인기를 끌던 지난 2013년 빙그레 역의 바로를 인터뷰했다. 그때 같이 왔던 소속사 관계자가 "정진영이면 저희 리더 이름이랑 같네요"라고 말해 동명이인이 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엔 큰 감흥 없이 "그러시냐"고 하고 넘겼다. 진영이란 사람을 만나는 게 그다지 특별한 에피소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때는 같은 반 친구 이름이 정진영이어서 졸업앨범에까지 '정진영a' '정진영b'로 표기됐고, 고등학교 때 동경했던 선배 이름은 이진영이었다. B1A4 진영은 무수히 많은 동명이인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인터뷰 기사가 나가고 나서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그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팬들이 "정진영이 바로 기사를 썼다"며 신기해하는 반응을 본 이후부터다. 처음엔 '세상에 정진영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걸 가지고'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점차 '하긴 나도 문희준 기사를 장우혁 기자가 쓰면 신기하겠네'라며 이해하게 됐다.
이후 유독 유명인과 동명이인이 많았던 팀원들과 '또 다른 나' 특집을 해보면 어떠냐는 얘기를 나눴다. 예컨대 '정진영, 정진영을 만나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아쉽게도 만날 수 없는 유명인이 다수 있어 기획은 없었던 것이 됐지만 그때부터 언젠가 한 번은 B1A4 정진영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람이 이뤄진 건 최근이다. '스윗걸' 컴백 무대를 앞둔 B1A4 멤버들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간략하게 컴백 소감이라도 듣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때 진영이 나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 정진영이에요"라고 하자 "네?"라며 되물었다. 눈이 마주쳤는데 마치 어릴 적 헤어진 동생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순간 '저 사람이라면 내가 왜 현진영을 싫어했는지 이해해줄 것 같다'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CD도 나오지 않은 상태라 아쉬운 대로 프로모션용 부채에 사인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다. 왠지 정진영과 만난 날을 기념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또 다른 나'라고 쓰인 부채를 들고 나오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졸업앨범에 적힌 '정진영a'라는 이름을 보고 지었던 헛웃음하고는 다른 것이었다. 그날은 흔해 빠졌다고 생각했던 정진영이란 이름이 처음으로 특별하게 느껴졌던 날이었다.
물론 그 이후 B1A4와 진영은 기자에게도 특별한 아이돌 가수가 됐다. 언젠가 누가 "네?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요?"라고 되물으면 "'왕의 남자' 정진영이요"라는 말 대신 "B1A4 정진영이요", 혹은 "아이돌인데 작곡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는 그 정진영 있잖아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진영 자작곡 '유 알 어 걸 아이 엠 어 보이' 정말 좋지 않나요? 아니, 꼭 동명이인이라 그런 건 아니고…"
[더팩트ㅣ정진영 기자 afreeca@tf.co.kr]
[연예팀ㅣ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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