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김민진 "자존심? 먹고 살려면 필요 없어요"
배우 김민진(38)은 아직 이름 석 자가 익숙한 인물은 아니다. 대신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얼굴을 보고 단번에 '아!'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
김민진은 '서프라이즈'뿐 아니라 KBS1 '불멸의 이순신' MBC '돌아온 일지매'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작은 연못' 등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배우로는 13년 차, 거리를 다니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꽤 있지만 정작 본인은 "아르바이트를 한 번도 쉰 적 없는 '일용직 배우'"라고 칭했다.
"'서프라이즈'도 고정 출연이 아니에요. 초반엔 3~4달에 한 번씩, 요즘엔 한 달에 한 번씩 출연하곤 해요. 10년째 하고 있지만 고정이 아니라 작가들이 특이하고 재밌는 이야기에 맞춰서 섭외해요. 도시적인 이미지가 아니어서 사기꾼, 아빠 등 써먹을 곳이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특히 그는 지난해 3월에는 '과일가게 아르바이트 배우'로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든 화제의 인물이다. 한 누리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민진과 인증 사진을 찍고 목격담을 남기면서 그의 사연이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10월 방송된 MBC '원더풀 금요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삶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입에서 아르바이트 경험담을 열거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2000년에 일단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부산에서 상경했죠. 돈을 벌어야 하니까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3개월에 50만 원을 받고요. 낮에는 연기학원을 다녔죠. 두 달이 되니까 현장에 엑스트라로 실습을 내보내더라고요. 실습비로 8000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다른 엑스트라들은 기본 3만 5000원을 받는 거예요. 저는 학원에서 나온 실습생이어서 그랬던 거죠. 그래서 차라리 엑스트라로 들어가기 위해 한국예술회에 찾아갔어요."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노점, 막노동, 마트 행사, 물류 창고, 택배 상하차, 대리 기사, 섀시 설치, 택시 기사 등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어요. 제일 오래한 게 유리 공장 섀시 설치 업무였는데 일은 진짜 힘들어요. 일당은 6만원이고요. 촬영 일정 편의를 봐줘서 2년 넘게 했어요. 집에 있으면 고민이 많아져서 몸을 굴리는 게 더 낫겠더라고요."
그는 KBS '역사 속으로' '용서' '인간극장' 등에 출연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배우들은 저마다 등급별로 출연료를 받는다.('[TF기획-연예가 甲乙전쟁①] 출연료 빈익빈…그림자 속 불편한 진실' 참조) 김민진은 공채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어렵게 6등급을 받았다. 몇 작품을 거친 후 7등급을 받았고, 일일드라마에 출연하면 12만원 정도를 받았다. 만약 등급이 없으면 이마저도 5만원 적다.
"제 생각엔 배우 등급이란 게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우리 같은 (조연이나 단역)배우들이야 등급이 소중하지만 톱스타들은 어차피 계약을 하니까요. 저희는 기를 쓰고 공채를 합격하거나 등급을 받아야죠. 출연료가 4~5만원 차이가 나니까요. 그런데 또 요즘 등급을 안 올리기도 해요. 제작사가 만만하게 쓸 수 있도록요. 제작사에서 이젠 등급 없는 사람들을 그룹으로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가 설 자리가 없어요. 예전엔 말 한 마디만 해도 연기자를 썼는데 요즘은 그냥 일반 보조출연자들을 쓰거든요."
"결혼하고 일이 없으면 살 수 없잖아요. 무조건 할 수 있다면 해야죠. 아르바이트 할 때 사람들이 알아보는 거요? 저도 고민 많이 됐어요. 하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알아보면 그냥 말 두어 마디 하고 그래요. 배우로서 일이 많으면 잘 벌 때도 있지만 못 벌 때가 더 많죠.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찾고요."
"'서프라이즈'에서 재연을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어설프게 알아보고 작품에선 쓰기 꺼리더라고요. 당연히 저도 싫고 민망하죠. 출연 제안도 최대 3일 전에 연락이 오고 대부분 하루 전에 와요. 촬영해도 방송에 안 나오는 경우도 있고요. 출연료 못 받은 경우야 많죠. 그래도 '서프라이즈' 덕분에 사람들이 알아보는 거니까 제겐 복이죠."
지난해 10월 10살 연하 신부를 만나 아기까지 생겼다. 아기만 보면 "내게 어떻게 이런 행복이 왔나 모르겠다"고 눈물이 솟는단다.
"아침저녁으로 기도해요. 우리 가족 건강하고 작아도 조금이라도 일은 계속하게 해달라고요. 입에 거미줄 안 치도록 노력할 테니 촬영하는 배우의 끈만 놓지 않도록 해달라고요.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까 아르바이트 하면 어떤가요. 연기자가 먹고살려면 빌기라도 해야죠. 자존심? 개뿔도 필요 없어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던 적은 있지만 내려간 적은 없고 한 계단이라도 올라가긴 했어요. 24살에 시작해서 14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계단을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한 계단이라도 올라간다면 만족해요. 설사 내려간다고 해도 좌절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긍정적인 성격이 아니면 살 수가 없었죠. 죽겠더라고요. 그래도 죽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 좋게 생각하자고 말이죠."
[더팩트 | 김경민 기자 shine@tf.co.kr]
[연예팀 | ssent@tf.co.kr]
<관련 기사>
▶ [TF기획-출연료 甲乙전쟁①] '빈익빈 부익부' 속 불편한 진실
▶ [TF기획-출연료 甲乙전쟁③] 출연료 미지급 사태, 악순환 고리 끊어야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