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레디, 액션'? 방송가에 깃든 명과 암
'빈익빈 부익부'. 가난할수록 더욱 가난해지고, 부자일수록 더욱 부자가 된다는 말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 문제점을 가리키는 단어로 자주 표현된다. 화려한 연예계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빛이 밝을수록 가려진 그림자는 더욱 어둡다. 몇몇 스타 배우들은 '억' 소리 나는 출연료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동시에 곳곳에서 터지는 방송가 '출연료 미지급 사태'는 낯설지 않은 상황이 됐다.
많은 스타가 무명 시절 어려웠던 경험담을 꺼내곤 한다. 지금도 '배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생계유지가 힘든 상황은 과거가 아닌 현재다. 거기다 제작사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몸값이 낮은 보조 연기자를 쓰고, 배역을 줄이는 추세다.
◆ 배우를 쓰지 않는 촬영장 vs 부르는 곳 없는 배우들
배우들은 방송사마다 정해진 등급표에 따라 출연료를 받는다. 1등급부터 18등급까지 있으며, 아역이 아닌 성인은 6등급부터 시작한다. 공채로 입사하고 신인 배우가 되면 대체로 6등급을 받게 되고, 공채가 아닌 무등급 배우도 작품 활동을 쌓아 등급을 받을 수 있다. 경력 나이 인지도 등을 검토해 등급이 매겨진다.
야외나 철야 수당 또한 일정 등급 간격마다 5000원 차이가 있다. 또 일일연속극, 주간·주말연속극, 단막극, 미니시리즈, 특집극 등 분류별로 출연료가 달리 책정된다. 각 분류 안에서도 방송 분량에 따라 출연료가 다르다. 25분짜리 일일극 기준으로 6등급 출연료는 10만 원 초반, 최고 등급인 18등급은 약 42만 원으로 정해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60분물 KBS 미니시리즈나 특집극에 출연할 때 6등급의 출연료는 37만 4220원(이하 2011년 1월 1일 기준), 일반적인 조연이나 단역 배우들의 등급인 8등급은 50만 9110원, 12등급은 92만 7070원이다.
MBC와 SBS는 10분 기본료가 6등급 3만 5310원(이하 2012년 1월 1일 기준)에서 시작해 12등급까지 오르면 8만 7450원을 받는다. KBS와 같은 기준으로 60분물 작품을 할 때 6등급은 38만 1340원, 8등급은 51만 8830원, 12등급은 94만 4460원, 최고 등급인 18등급은 161만 5030원을 받는다.
하지만 사실상 이름을 들으면 아는 배우들은 회당 출연료가 천만 원 단위인 상황만 보더라도 이러한 출연료 기준은 그야말로 조연, 단역 배우들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스타성을 갖게 되면 배우들은 등급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계약 형태로 전환한다. 하지만 조연이나 단역 배우들에겐 이 기준표만이 출연료를 보장받기 위해 내세울 수 있는 기준이다. 주연처럼 매회 출연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계약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등급표 출연료대로 받는 방안을 선택한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작은 배역에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등급이 없는 엑스트라와 보조 연기자를 섭외하고 있다. 어중간한 등급을 가진 배우들은 가끔 제작사로부터 "등급이 몇이시죠? 출연료를 깎을 수 있나요?"라는 전화를 받곤 한다.
지난 1991년 KBS 공채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 조성규는 <더팩트>에 "캐스팅 요청 전화를 걸면서 등급부터 물어본다. 14등급이라고 하면 부담을 느끼고 다시 전화가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등급자(등급을 가진 배우)들이 방송사가 아닌 외주제작사 제작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 계약을 맺는다. '출연료 야외 촬영비 교통비 등 합쳐서 얼마로 하자'는 식이다. 차라리 방송사는 야외 촬영이나 교통비를 따져 챙겨주지만 외주제작사 드라마의 촬영 환경은 유동적이다. 지방 촬영이 예상보다 잦아져도 이미 계약은 했으니, 결국 출연료가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출연료 미지급? 제작사도 방송사도 '나 몰라라'
등급에 매여 저울질을 당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배우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식의 출연료 미지급 사태다. 일은 했는데 월급이 밀리고 밀려 나중엔 그 어디에 호소할 것도 없는 게 '을'이 된 배우들의 현실이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1월을 기준으로 방송사별 드라마 출연료 미지급액만 26억 원을 넘었다. 지난 4월 종영한 MBC드라마넷 '태양의 도시'(제작 이로크리에이션)의 출연료와 임금 등 미지급분은 2억 원에 달했다. 제작진이 16회 촬영을 거부하면서 조기종영의 나쁜 예를 새겼다.
케이블 채널뿐만 아니라 지상파 작품도 출연료를 제대로 정산하지 못한 채 불명예를 떠안고 있다. SBS '신의'(제작 신의문화산업전문회사)는 종영 후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약 6억 4000만 원의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KBS2 '도망자 플랜 비'(제작 도망자 에스원)도 약 4억 5000만 원, '감격시대'(제작 레이엔모)는 약 1억 3000만 원 미지급한 상황이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소속되지 않은 배우들이 피해액까지 합한다면 미지급액과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진다.
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사무차장은 <더팩트>에 "조합원이 4700여명 정도인데 그중 절반 이상의 배우들이 일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을 한 배우들에게만이라도 기본적으로 출연료만은 받을 수 있는 환경의 처우 개선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팩트 | 김경민 기자 shi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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