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음반계·음원 차트·거리·술집, 2015년=1990's
지금, 2015년이 맞나요? 그런데 왜 거리에선 1996년에 발표된 터보의 '러브 이즈'가 들리는 거죠? 어머나 '라디오스타'에는 '까만 콩' 이본 언니가 나오네요! 도대체 지금이 1990년대인지 2015년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다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때문이겠죠.
지난해 12월 18일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토토가' 녹화가 진행됐고, 지난 3일 '무한도전' 방송에서 마지막 이야기를 다룬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도 그 열기는 여전합니다. 식을 기미도 아직은 안 보이고요. 2015년 상반기, 많은 이들이 여전히 1990년대에 머물러 있는데요.
그래서 <더팩트>도 나섰습니다. 제가 1985년생, 딱 H.O.T에 열광하고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를 들으며 수련회 때 핑클의 '영원한 사랑'에 맞춰 춤 좀 춘 세대거든요. '토토가' 방송을 보며 꿈틀대던 1990년대 향수를 가득 머금고 그 시절로 돌아가 봤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가시죠!
◆워밍업, 애교 머리에 힙합 청바지까지!
드레스 코드가 중요합니다. 오늘의 코디는 패션지 'kiki'를 참고하렵니다. 와우, 박시은 씨가 1999년 7월호 표지 모델이었네요? 세상에 김민희 신민아 김규리(당시 김민선) 강혜정 임수정 등 지금은 배우로 유명한 이들의 앳된 얼굴이 잡지에 가득합니다. 이들도 예전에는 촌스러웠네요(죄송).
저는 볼살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베이비복스 간미연의 헤어스타일로 단점을 커버하겠습니다. '후카시(부풀리기)'는 많이 넣고 옆머리는 볼 옆에 딱 붙일게요. 청바지는 역시 4치수 크게 입는 게 제맛이죠? 워커도 빼놓지 않습니다. 가방은 새빨간 '에이찜'을 맸고요. 바지 밑단은 바닥에 끌려서 너덜너덜해졌네요.
◆터보 조성모 CD는 판매량 톱
노래는 '마이마이'에 카세트 테이프를 넣어 리믹스로 들어야 하는데 아쉽게 기계가 고장났어요. 대신 뽀얗게 먼지 쌓인 그 시절 CD들을 꺼내 봅니다. H.O.T 신화 룰라 god 악동클럽 등이 있네요. 카세트 테이프에는 쿨 코요태 김건모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엄정화의 노래가 담겨 있고요. 지금은 음원 사이트에서 클릭 한 번이면 들을 수 있지만 그땐 라디오에 CD플레이어까지 공을 들여야 노래를 감상할 수 있었죠.
향수를 품고 레코드점이 있는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합니다. 음반 매장에 들어서니 카운터 바로 앞에 '토토가' 가수들을 위한 스페셜 섹션이 마련돼 있네요. 유재석이 목놓아 외쳤던 "백 투더 90's" 섹션에는 '내 청춘의 댄스뮤직' '청춘 나이트 가요 리믹스' '플래티넘 댄스5' 등부터 터보 김건모 엄정화 S.E.S 조성모의 CD가 놓여져 있습니다.
관계자에게 판매량에 대해 물었습니다. '토토가'의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했던 터보의 앨범이 가장 잘 나간다는군요. '토토가'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까닭에 이번에 새로 찍어 낸 따끈한 옛날 앨범이었는데요. 방송을 본 20대부터 그 시절 대중문화를 같이 누린 30~40대가 주 소비층이라고 합니다. 방송 직후보다는 찾는 이들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하루에 꾸준히 5개 이상은 팔린다네요.
그런데 없어서 못 파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쿨 지누션 이정현 등의 노래를 원하는 팬들이 많지만 이미 다 팔렸거나 오래 전 발표돼 더는 재고를 찾을 수 없는 앨범들이 다수라는 거죠. 매드클라운의 새 앨범과 나란히 놓여 있는 '언니 오빠들'의 CD를 보니 어딘가 마음이 몽글해집니다.
◆god에 열광하고 임창정의 노래로 '떼창'하는 이곳
'짠한' 마음을 품고 시원하게 맥주나 한 잔하러 가야겠습니다. 사실 '토토가' 이전에도 1980~90년대를 콘셉트로 한 복고 주점은 많았습니다. '밤과 음악사이'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클럽 외에 복고 감성 주점들이죠. 물론 '토토가' 이후 더 많은 관심을 받은 건 사실이고요.
강남과 홍대 인근만 '토토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서울 강동구 길동에 있는 '영스타'라는 주점은 동인(東人)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외관부터 옛날 냄새가 확 나죠? 작은 테이블이 여러 개 모여 있는 이곳에 들어서자마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 흘러나옵니다.
주위를 둘러 보니 진짜 그 시절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낡은 TV에는 '사랑을 그대 품안에' '한지붕 세 가족' '사랑이 뭐길래' '순풍 산부인과' '마지막 승부' '느낌' '질투' '남자 셋 여자 셋' 등의 TV 프로그램 광고가 나오네요. 임창정의 '결혼해줘' 이정현의 '와' 박진영의 '허니' 등의 뮤직비디오도 볼 수 있고요.
k2의 '그녀의 연인에게' 노래가 나오자 뒷 테이블에 앉은 남녀가 큰 소리로 따라 부릅니다. "꼭~ 하나만 바래요. 날 대신해 그녈 영원히 지켜줘야 해요" 순식간에 '떼창'이 이뤄집니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소찬휘의 '티얼스' 지누션의 '전화번호' 등 '토토가'에서 들었던 노래들에는 반응이 더 뜨겁습니다. 30명 정도의 손님이 대동단결했습니다.
소품도 아기자기하면서 리얼하게 잘 꾸며져 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과 은퇴, H.O.T와 젝스키스의 대결, X세대를 다룬 기사 등 신문 스크랩이 벽에 걸려 있네요. '쉬리' '백투더퓨처' 같은 영화 포스터도 있고요. 어머나 이게 누군가요. 산타가 되기 전 풋풋하면서 말끔한 외모의 이병헌의 광고 사진이네요. X세대를 대표하는 청춘 스타의 아름다운 과거입니다.
'영스타'는 '토토가' 방송 이전에 오픈한 곳인데요. '토토가' 덕분에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 합니다. 주말에는 직원들이 1990년대 스타들로 변신해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대요. 고객층 역시 그 시절을 공유할 수 있는 20대 후반부터 3040들이고요. '토토가' 이후 더 유명해져서 동네 사람들이 아닌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는데요.
앗, god의 '프라이데이 나이트' 음악이 나옵니다. 제 또래 여성 손님들 얼굴에 화색이 도네요. 절로 어깨춤이 나오기도 하고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홀로 테이블에 앉아 TV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자 추억에 젖고 계시네요. 지금 이곳은 말 그대로 1990년대입니다.
◆밤새 1990년대를 즐겨 봅시다!
야심한 시각이 됐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야겠습니다. 마침 저 같은 이들을 위한 파티가 준비됐네요. 롯데월드에서 1990년대 나이트 파티를 열었는데요. 지난달 30일 오후 10시 반부터 입장해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어드벤쳐 안에서 신 나게 노는 콘셉트죠. 피곤이 몰려오지만 잠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참 가볍습니다.
세상에, 이곳은 마치 딴 세상 같네요.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간인데 사람들로 바글바글합니다. 스피커에서는 클론의 '쿵따리샤바라'가 나오네요. 클론 멤버인 DJ KOO가 디제잉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거든요. 내친김에 마이크까지 잡는군요. 엄정화의 '초대' 지누션의 '말해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에 맞춰 디제잉에 함성까지 열정을 쏟습니다.
오전 1시 15분, 지누션이 무대에 오릅니다. 어쩜 저 오빠들은 불혹을 훌쩍 넘겼는데도 여전히 부티가 '좔좔' 흐르는 걸까요. 순식간에 가든 스테이지 주변에는 수백 명의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지누는 "젊은 친구들이 반겨 주니 고맙다"며 활짝 웃고, 션은 "타임머신을 타고 1990년대에 온 느낌이다"며 자신은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가수라고 강조하네요.
역시 그들은 가수였습니다. 'A-YO'부터 'How deep is your love' '전화번호'를 금세 묶어 현장 분위기를 최고조로 띄웠거든요. 앙코르곡 '말해줘' 때엔 현장 팬 모두가 엄정화로 변신합니다. 어깨춤이 절로 나네요. 주위를 둘러 보니 모두가 저와 같은 마음인 듯하군요. 두 아이와 함께 온 어머니는 셀카봉을 들고 연신 무대 위 스타를 찍습니다. 참 훈훈하네요.
'토토가' 덕에 본명을 찾았다는 소찬휘 언니도 무대에 섰습니다. 오전 2시를 향해가는데 그의 고음은 여전히 파워풀합니다. 첫 곡을 마친 그를 향해 관객들이 '김경희'를 연호하는데요. 뜨거운 호응에 화답하듯 소찬휘는 "밑에서부터 슬슬 끌어올려 목을 풀겠다"며 히트곡을 열창합니다. '떼창' '단체 셀카' '파도 물결' '어깨춤', 롯데월드에 모인 모두가 소찬휘로 대동단결했습니다. 역시 마무리는 '티얼스'와 '현명한 선택이었고요'
오후 9시인 것처럼 놀고 나니 시곗바늘은 어느새 2를 넘어가네요. 사실 곳곳에 1990년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이벤트가 자리했는데요. 오락실을 평정한 '펌프'의 고수들이 젝스키스의 '컴백'에 맞춰 대결을 벌이고 있고요, DJ 주크박스에는 끊임없이 그 시절 신 나는 댄스곡이 흘러나옵니다. 대형 고고장이 됐네요.
앗, 저 멀리 H.O.T 오빠들이 보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저보다 한참 어린 것 같은 동생들이지만 본인들은 진짜 H.O.T라며 멋지게 포즈를 취하는군요. 어려 보이려고 애쓴 제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매너도 잊지 않네요. 반가운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떤가요.
한바탕 즐기고 나니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흐르네요. 다리도 아파오고요.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3시. 여전히 이곳은 1990년대의 추억에 젖은 이들로 가득하지만 전 어서 집으로 가야겠습니다. 마음은 1998년 S.E.S의 '아임 유어 걸'을 추던 중1 소녀이지만 체력은 빼도 박도 못하고 31살이 맞네요.
그래도 참 행복한 순간입니다. 누군가 부러워하는 그 시대에 살았고, 그때를 추억하는 이들과 함께 있고, 함께 있는 이 순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즐겼으니까요. 누가 그랬던가요.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축복받은 세대'라고. 1990년대 제 학창 시절을 찬란하게 빛나게 해 준 '언니 오빠들'에게 유난히 고마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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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박소영 기자 comet568@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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