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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탐사-'캐막장' 중간점검①] 욕 먹어야 사는 드라마 '막장'의 역사

막장드라마는 자극적인 소재와 억지 설정에도 높은 시청률을 담보하며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 박설화 기자
막장드라마는 자극적인 소재와 억지 설정에도 높은 시청률을 담보하며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 박설화 기자

[김한나 기자] 막장드라마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한 하나의 트렌드다. 1990년대 캔디형 여주인공의 성공과 사랑을 그리는 트렌디 드라마가 있었다면 그 이후는 막장드라마가 브라운관을 장악하고 있다.

막장드라마는 보통의 삶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자극적인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드라마를 통칭해서 쓰는 표현이다. 신조어지만 낯선 단어는 아닐 정도로 안방극장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복잡하게 베베 꼬여있는 인물 관계와 상황설정, 그리고 도통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극전개 탓에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는 힘들어 보이지만 예상 외로 막장드라마는 시선을 사로 잡는 힘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거나 코웃음을 살 정도로 말도 안되는 설정을 천연덕스럽게 그리는 내용도 존재하지만 자극적이면 자극적일 수록 시청률은 높은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감동을 주기는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지만 막장드라마도 역사를 더해가면서 자극적 요소에 감동까지 선사하는 등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다.

막장드라마의 원조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인어아가씨'를 시작으로 최근의 막장드라마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 MBC 제공
막장드라마의 원조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인어아가씨'를 시작으로 최근의 막장드라마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 MBC 제공

◆ 막장드라마, 언제부터 안방극장 점령했나

'막장'은 원래 석탄 등을 캐는 광업에서 쓰이는 용어다. 광산의 제일 안쪽 부분을 뜻한다. 통로가 없어 노련한 광부조차 들어가기 힘든 곳이 막장이다. 위험한 만큼 막장을 다녀왔을 때 댓가는 달다. 높은 수당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기 때문.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드라마가 막장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했을 때, 욕을 먹는 위험을 감수하긴 하지만 높은 시청률이 담보되는 것과 유사해보인다. 일반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드라마'와 결합하면서 우리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막장드라마의 원조는 정확히 꼬집을 수 없다. 그 시작을 단정지을 순 없지만 막장드라마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은 2002년 방송됐던 MBC 일일드라마 '인어아가씨'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방송작가가 엄마의 복수를 위해 배다른 여동생의 약혼자를 빼앗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 있자면 눈썹사이에 깊은 주름이 패일 정도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가득했고 높은 시청률과 함께 찬반 양론이 들끓었다.

사실 막장드라마의 꽃은 임성한 작가가 피웠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임 작가는 '인어아가씨'를 시작으로 2005년 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어'로 막장드라마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헤어진 친딸을 새로 결혼한 남편의 아들과 결혼시킨다는 줄거리는 물론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웃다가 죽는 초유의 죽음을 그려 논란을 낳았다.

2009년에도 거물급(?) 막장드라마는 탄생했다.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다.

현모양처였던 여자가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무서운 요부가 돼 다시 남편을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복수극을 담고 있다. 얼굴에 점하나만 찍었을 뿐인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부분에서 실소를 자아냈다. 빠른 극 전개와 상황설정인 자극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30% 후반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막장드라마=높은 시청률'이라는 공식이 생기면서 아침 드라마는 물론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까지 막장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막장드라마는 얽히고 설킨 인물관계와 개연성 없는 그들의 인연이 특징이다. '오로라 공주'는 극중 인물들의 인연과 명분 없는 하차가 논란을 낳기도 했다. / 온라인 커뮤니티
막장드라마는 얽히고 설킨 인물관계와 개연성 없는 그들의 인연이 특징이다. '오로라 공주'는 극중 인물들의 인연과 명분 없는 하차가 논란을 낳기도 했다. / 온라인 커뮤니티

◆ 막장의 필수 요소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도?

'저게 말이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보는 막장 드라마에도 몇몇 틀에 박힌 공식이 존재한다. 100% 비공감되는 설정에도 빠져들게 하는데는 얽히고 설킨 인물 관계도가 필수다. 보통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이해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백만분의 일의 확률로 맞는다는 골수가 자신을 괴롭히던 시어머니, 자신을 버린 친어머니와 동시에 맞아 둘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는 식(KBS1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이다.

형제 자매 등 가족간의 갈등은 기본이고 일생을 살면서 한번 겪을까 말까한 납치 살해 자살 사기 등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간통과 선정성, 도 넘은 '시월드' 등은 필수 코스다.

인물 설정도 틀에 박혇있다. 여자 주인공은 온갖 설움을 당하는 캔디형 인물이 많다. 태생이 '실장님'인 남자 주인공에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 못된 시어머니나 시누이, 악녀로 단정지어지는 서브 여주인공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며 결말을 맞는다. 대부분 권선징악으로 끝맺는다.

이같은 필수요소가 갖춰질 때 비로소 막장 드라마는 큰 무기인 중독성을 가지게 된다. 한 번 시청을 하기 시작하면 욕을 하면서라도 결말을 확인하기 위해 시청하는 막장드라마의 '룰'을 따르게 된다.

최근 막장 드라마는 가족극의 형태를 띄며 진화하고 있다. / KBS 제공
최근 막장 드라마는 가족극의 형태를 띄며 진화하고 있다. / KBS 제공

◆ 가족 드라마의 탈을 쓰고…막장은 '현재진행형'

막장드라마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하나의 트렌드가 되자 강한 MSG같은 입맛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다소 밋밋한 착한 드라마에 무관심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막장드라마와 맞붙은 꽤 많은 명품 혹은 착한 드라마들은 대진운을 탓하며 소리 소문없이 종영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최근엔 막장드라마의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가족 드라마로 포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자극적인 소재들을 전방에 넣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은 후 결말 부분만 가족애를 부각시키는 나름의 '꼼수'다.

최근 종영한 KBS2 주말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역시 편애 불륜 납치 무개념 캐릭터 등을 내세워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마지막에는 가족들의 화합을 그리면서 가족 드라마로 마무리 지어 대중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막장드라마의 강세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들 역시 강한 막장드라마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 특히 막장드라마는 대중들의 채우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는 면에서 어쩌면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막장드라마 인기 저변에는 드라마 속 막장 상황에 자신의 처지를 빗대 일종의 우월감 혹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오늘도 나 혹은 친구 가족 등 시청자들은 흥분하고 울기도하고 욕을 하면서도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hanna@tf.co.kr
연예팀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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