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다원 기자] "스마트폰, TV, 인터넷 등 빠른 것에 익숙한 세상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전해주는 매체는 아마 라디오 밖에 없을 겁니다."
한 DJ의 단언처럼 라디오는 오랜 세월 속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왔다. 노래 한 곡을 녹음하기 위해 카세트 라디오 녹음 버튼에 손가락을 대고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던 1990년대부터 보이는 라디오와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어디서나 DJ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금까지 라디오는 언제나 사람들의 곁을 지키며 '느림의 미학'을 전달했다.
매체의 담백한 성격 때문에 한때 다른 디지털 미디어에 밀려 침체에 빠지기도 했지만, 요즘 다시 불어닥친 복고 열풍에 힘입어 사람들에게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지난달 영국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레트로(Retro)' 열풍을 타고 라디오 산업이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440억 달러(한화 약 47조 원)의 수익을 올리며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다.
특히 애플과 구글 등 전자ㆍ정보기술(IT) 기업들이 라디오를 새로운 수익사업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청취자들의 라디오 접근 범위가 크게 확대됐다. 기존엔 라디오 기기로 지역 주파수를 잡아야만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인터넷과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라디오 서비스까지 새롭게 등장하면서 라디오의 위상은 다시 높아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내 연예계에서 라디오가 지니는 매체로서 위상도 상승했다. 엑소, 다비치, 2AM, 소녀시대 등 아이돌 그룹은 물론 정우성, 안성기, 박찬호 등 브라운관에도 좀처럼 얼굴을 비치치 않는 스타들까지 라디오를 찾으면서 팬들과 만나는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또한 라디오에 출연한 스타들의 발언에서 여러 이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모두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매체로 떠올랐다.
라디오가 자신의 색을 되찾은 배경에는 급격하게 채널이 많아지며 과부하가 걸린 영상 매체도 한몫했다.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유튜브 동영상 채널, 온라인 방송국 등 다양한 영상 채널들로 스타들이 TV에 얼굴을 비치는 건 더이상 어렵지 않은 일로 인식됐고, 출연자의 발언 의도가 편집 과정을 거쳐 와전되는 사태가 벌어지며 영상 매체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반면 라디오는 생방송으로 진행돼 자신의 의도가 온전하게 세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매체의 희소성이 더해져 스타들에게는 TV보다 '하위 매체'가 아닌 다른 성격의, '특성을 가진 매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런 시대 트렌드를 읽어서였을까. 방송 3사는 지난 9월부터 차례로 변화를 외치며 청취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라디오국의 개편을 시도했다.
우선 MBC는 정통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오랫동안 DJ로서 이름을 알린 가수 김현철이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오후의 발견, 김현철입니다'를 맡아 음악 FM의 정통성을 꾀했고, 매일 오전 2시 방송됐던 'FM 영화음악(DJ 김소영 아나운서)'을 부활시켜 심야시간대에 힘을 실었다. 또한 그동안 10대만을 겨냥했던 저녁 프로그램 시간대에 강다솜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FM데이트, 강다솜입니다'를 넣어 청취자의 연령대를 넓히고자 했다.
반면 KBS와 SBS는 한층 더 밝고 젊어진 라디오를 지향했다. KBS는 배우 최다니엘, 가수 하림과 조정치, 정지원 아나운서 등을 투입해 통통 튀는 변화를 모색했고, SBS는 17년간 '파워FM'을 이끌어온 이숙영 대신 신예 DJ 박은지를 넣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각오를 다졌다.
방송 3사가 그 어느 때보다 라디오국 변화에 신경을 쓴 것처럼 앞으로 국내 라디오 산업은 내실을 더욱 탄탄하게 다질 전망이다.
서병기 대중문화평론기자는 22일 <더팩트>에 "라디오 시장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질 순 없겠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차별화된 시장으로 남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요즘 현대사회는 디지털 미디어에 감시받다시피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영상 매체로부터 느끼는 피로도가 높아졌다"며 "그러나 라디오는 이런 피로도를 내려주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더욱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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