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산업 기반부터 마련해야"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청와대가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추가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디지털자산 제도 정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과세를 서두르기보다 투자자 보호체계를 강화하고 공정한 과세기준을 마련하는 등 급변하는 디지털자산 시장에 맞춰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모습이다. 이번 재검토가 단순한 과세 시점 조정을 넘어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청와대는 2027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2029년까지 2년 추가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25일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2년 정도 더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아직 최종 결정된 사항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장과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과세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을 서두르기보다 투자자 보호체계와 합리적인 과세기준을 정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국내외 거래소 이용자 간 과세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고 투자자들의 불필요한 신고 부담과 국내 투자자금의 해외 이탈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제기된다. 과세 유예 기간을 활용해 거래정보 확보체계를 보완하고 손익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한다면 향후 과세제도의 실효성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논의는 디지털자산 시장의 변화에 맞춰 제도적 기반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정치권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디지털자산 정책 논의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제도화 여부에서 제도를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 묻는 것으로 옮겨왔다"며 금융권의 디지털자산 사업 확대와 시장 환경 변화를 고려한 제도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영역에 들어선 만큼 제도의 정교함도 요구된다"며 국회에서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입법과 제도 설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디지털자산 시장이 기존 금융체계와 연결되고 관련 사업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규제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과세 유예 논의 역시 시행 시점 조정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과세제도의 완성도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세 유예의 필요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제기했다. 민 의원은 "지금 과세를 하면 이 시장이 죽는다"며 국내외 거래소 간 거래정보 확보 수준의 차이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했다.
그는 "과세를 먼저 할 게 아니라 산업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며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마련하고 시장의 제도적 기반을 갖춘 뒤 과세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가상자산 과세 자체를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해외 거래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손실 이월공제 등 현행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과세의 실효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적 장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청와대가 과세 유예를 검토하는 주요 배경 중 하나로도 국내외 과세 형평성 문제가 꼽힌다. 한국은 2027년부터 암호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를 통한 정보 교환을 시작할 예정이지만 미국은 2029년부터 참여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국내 거래소 이용자의 거래내역은 상대적으로 쉽게 파악되는 반면 해외 거래소 이용자의 거래정보는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동일한 가상자산 투자소득에 대해서도 거래소 소재지에 따라 과세당국의 정보 접근성에 차이가 발생할 경우 과세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거래정보 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세가 시행되면 국내 거래소 이용자에게 상대적으로 과세 부담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아가 일부 투자자들이 과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해외 거래소로 이동할 경우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의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가상자산 과세가 이미 세 차례 유예된 만큼 추가 연기가 조세 형평성과 정책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지난 25일 성명을 통해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계속 미루는 것은 근로소득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에는 세금을 부과하면서 가상자산 투자소득에 대한 과세만 반복적으로 유예하는 것은 조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처럼 과세 유예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과세 원칙을 존중하는 것과 실제 시장에서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함께 고려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투자자의 정확한 손익 산정과 해외 거래정보 확보, 손실 이월공제 등 제도적 미비점을 해소해야 과세의 실효성과 정책 신뢰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자산 시장이 기존 금융권과의 연계를 확대하고 새로운 금융상품과 서비스로 영역을 넓혀가는 만큼 과세체계 역시 시장 변화에 맞춰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시행 시점을 늦추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유예 기간에 구체적인 제도 개선 성과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청와대의 과세 유예 검토가 의미 있는 정책 조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추가로 확보되는 시간을 디지털자산기본법 마련과 투자자 보호체계 강화, 과세기준 정비 등에 적극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과세의 공정성과 산업의 성장 기반을 함께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세를 늦추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시장에 맞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이번 재검토는 공정한 과세와 국내 디지털자산 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함께 도모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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