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중심 중소·벤처기업·VC 투자 집중
"자본시장 선순환 구조 안착 기대"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국내 대형증권사들이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정책 기조에 맞춰 국가 미래 전략 산업의 탯줄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 자금이 안전자산에 묶여 있고 은행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진 시점에서 증권사들이 2분기 모험자본 공급량을 대폭 늘려 인공지능(AI), 반도체, 우주항공, 방산 등 고위험·고기술 분야의 재무적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2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 모험자본 공급 의무가 있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의 올해 2분기 모험자본 공급액은 총 11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 분기(9조6000억원) 대비 20.4% 증가한 수치로 정부가 규정한 의무 비율인 10%를 두 배 가까이 뛰어넘은 규모다. 과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 금융에 쏠려있던 증권사 자금이 미래 먹거리 산업의 공급처로 체질을 개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산별로는 기술 중심의 중소·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VC) 등에 유입된 자금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신용보증기금 등이 신용을 보강한 유동화증권에 가장 많은 3조4000억원이 공급됐으며 중소·벤처기업 직접 공급에 2조5000억원, 신기술사업금융회사 VC에 2조3000억원 등이 투자됐다. 이 외에도 중견기업에 1조3000억원, A등급 이하 채무증권에 1조원 등이 수혈됐다.
투자 방식 측면에서는 채무증권이 5조600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기업의 지분을 직접 취득하는 지분증권 투자 규모도 2조8000억원에 달해 실질적인 모험자본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증권사들이 모험자본 공급에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으로는 정부가 설정한 의무 비율을 맞추려는 의지도 있으나 국가 전략 산업을 키워야 자본시장 전체가 살아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현장 소통을 통해 팹리스 반도체 기업에 대한 구주 인수 지원이나 혁신 바이오 벤처기업의 외연 확장 등 증권사들의 다양한 투자 사례를 발굴·공유하며 독려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9월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이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를 새롭게 받고 모험자본 공급 의무가 있는 종투사에 합류했기 때문에 하반기도 대형 증권사들의 투자 여력은 한층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도 증권사들이 자금 공급 방식이 단순 지분 인수를 넘어 다각도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에는 초기 투자 후 기업공개(IPO)까지 기다리는 단편적 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자산관리(WM) 네트워크를 활용해 후속 펀딩을 주선하고 해외 진출까지 밀착 지원하는 모델로 전환되는 추세도 엿보인다.
여기에 기관투자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모험자본 시장에 일반 개인 투자자들도 소액으로 참여할 수 있는 '민간 매칭형 상품'이 잇따라 활성화되면서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이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출시한 AI 반도체, 로보틱스, 우주항공 등 7개 사모 모험자본에 재간접 투자하는 손익차등형 공모펀드인 '한국투자 글로벌AI혁신산업 펀드'를 비롯해 KB자산운용의 'KB 코리아 첨단전략산업 펀드', 신한투자증권의 '신한 글로벌 AI 이노베이션 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PF 등 단기 차익에 치중됐던 증권업계가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춰 국가 전략 산업의 핵심 자금 공급원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며 "생산적 금융 정책의 취지를 살려 기술 기업의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는 동시에 일반 투자자의 리테일 자금까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연결하는 자본시장의 선순환 구조 안착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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