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퇴출에 코스닥 체질 개선?…시총 기준은 '논란'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금융당국이 부실기업 퇴출을 위해 상장폐지 기준을 강화하면서 주가와 시가총액 기준에 미달한 종목들이 무더기로 관리종목에 지정됐다. 증권가에서는 한계기업 퇴출이 코스닥시장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기업의 부실 여부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시장가격을 주요 퇴출 기준으로 삼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특히 상장폐지 위험이 커지는 과정에서 주가 급락과 거래 위축 등에 따른 손실이 기존 주주에게 집중될 수 있어 퇴출 기준 강화와 함께 투자자 보호 장치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지난 12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36개 종목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유가증권시장 9개, 코스닥시장 27개 종목으로 이 가운데 6개 종목은 기존 관리종목에 지정 사유가 추가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대영포장·형지엘리트·일신석재 등 3개 종목이 주가 미달로 관리종목에 지정됐다. SUN&L·한국전자홀딩스·태원물산·대원화성·남성 등 5개 종목은 시가총액 300억원에 미달했고 온타이드는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우리엔터프라이즈·티케이지애강·CMG제약·샤페론·좋은사람들·SDN·랩지노믹스·에이비온 등 21개 종목이 주가 기준에 미달했다. 국일신동·한탑·패션플랫폼·에스앤더블류 등 4개 종목은 시가총액 200억원에 미달했고 형지글로벌과 E8은 두 기준에 모두 걸렸다.
◆ 무더기 관리종목에 기업들 '주가 사수전'
이번 무더기 지정은 금융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 방안'에 따른 것이다.
새 기준에 따라 유가증권시장은 시가총액 300억원, 코스닥시장은 200억원 미만인 상태가 30거래일 연속 지속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양 시장 모두 종가가 1000원 미만인 상태가 30거래일 연속 이어져도 관리종목 지정 대상이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면 90거래일 안에 주가 또는 시가총액 기준을 45거래일 연속 충족해야 한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상장사들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신약 개발기업 샤페론은 오는 9월 말 액면병합에 따른 변경상장이 완료되면 관리종목 지정 사유가 해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표이사가 책임경영 차원에서 자사주를 매입했다.
지난달 관리종목에 지정된 케이엠제약 역시 대표이사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한 데 이어 자사주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차전지 부품기업 유진테크놀로지도 상장 유지와 기업가치 회복을 최우선 경영 과제로 내걸었다.
일각에서는 상장폐지를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본업보다 단기간 주가와 시가총액 관리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액면병합이나 자사주 매입 등은 시장가격 방어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기업의 영업 경쟁력이나 재무건전성 자체를 개선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한계기업 퇴출하면 PER '뚝'…시총 낮으면 부실기업?
증권가에서는 부실기업 퇴출이 코스닥시장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상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장폐지 제도 강화로 부실기업 퇴출이 가속화될 시 기대효과는 코스닥 실적 개선과 높은 밸류에이션 하락"이라고 분석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한계기업을 제외할 경우 지난해 코스닥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14조1000억원에서 18조8000억원으로 늘어나고 주가수익비율(PER)은 112.6배에서 31.3배로 낮아진다.
다만 보고서에서 분류한 '한계기업'과 시가총액 기준에 따른 실제 상장폐지 대상을 동일하게 볼 수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상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이다. 반면 현행 상장폐지 제도는 일정 수준 이하의 주가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기업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한다.
시가총액이 작아도 이익을 내고 재무구조가 건전한 기업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시가총액이 큰 기업도 한계기업에 해당할 수 있다. 한계기업을 제외했을 때 코스닥 지표가 개선된다는 분석이 곧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을 퇴출했을 때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의미는 아닌 셈이다.
개인투자자 A씨는 "부실기업을 퇴출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시가총액이 낮다는 것과 기업이 부실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시가총액 기준 상장폐지 대상 가운데 실제 한계기업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지수 개선 명분에도…상폐 충격 떠안는 기존 주주
금융위는 지난 2월 상장폐지 개혁 방안을 발표하면서 코스닥 시가총액이 지난 20년간 약 8.6배 증가한 데 비해 지수는 약 1.6배 상승하는 데 그쳤다고 진단했다.
다만 코스닥은 시가총액 가중방식으로 지수를 산출하는 만큼 시가총액이 작은 종목이 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전체 시가총액 역시 주가 상승뿐 아니라 신규 상장이나 유상증자 등으로 늘어날 수 있어 시가총액 증가와 지수 상승의 격차를 소형주 문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제도 강화 과정에서 기존 주주 보호가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실기업 퇴출은 시장 전체의 건전성을 높일 수 있지만 해당 종목을 보유한 투자자에게는 관리종목 지정 이후 주가 하락과 거래 위축, 상장폐지에 따른 투자금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관리종목 지정 자체가 투자심리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상장폐지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매도에 나서면서 주가와 시가총액이 추가로 하락하면 기업이 관리종목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기업의 재무상태와 무관하게 시장 수급 악화가 상장폐지 위험을 다시 높이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는 셈이다.
관리종목 해제 기준도 논란거리다. 90거래일 안에 기준을 45거래일 연속 충족해야 하는 만큼 44거래일 동안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하루 기준선 아래로 내려가면 연속 일수 계산이 다시 시작된다. 증시 급락이나 특정 업종의 투자심리 악화 등 개별 기업이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도 상장 유지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개인투자자 A씨는 "일시적인 주가 띄우기를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반대로 일시적인 주가 하락이 기업의 상장 유지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며 "기존 주주가 입을 피해를 고려해 45거래일이라는 기준의 근거를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장폐지가 결정된 뒤에야 투자자 보호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상장폐지 위험이 커지는 단계부터 투자자에게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리종목 지정 가능성과 상장폐지 요건 충족 여부 등을 거래소와 증권사 거래 화면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상장폐지 이후에는 장외거래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계도 지난 12일 정부에 코스닥 시가총액 200억원 기준 적용과 내년 예정된 300억원 기준 상향을 유예하고, 매출·영업이익·기술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예외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해 시장 신뢰를 높일 필요성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다만 퇴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기존 주주에게 집중될 수 있는 만큼 상장폐지 기준의 적정성을 점검하는 동시에 투자자 피해를 줄일 보호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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