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정책금융 경쟁력 훼손 우려"

[더팩트ㅣ여의도=이선영 기자] "산업은행이 있어야 할 곳은 글로벌 금융 자본과 인프라가 집적된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지, 서울 여의도입니다."
11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산업은행 본점 인근. 해가 진 뒤에도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가운데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과정에서 국책은행 본점이 이전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이날 '대한민국 정책금융 경쟁력과 미래 성장동력 수호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는 주최 측인 노조 추산 약 2000명이 참석했다. 결의대회는 업무시간이 끝난 오후 7시 시작해 오후 8시 20분께까지 약 1시간20분간 이어졌다. 당초 세 국책은행 노조는 고객 업무에 차질을 주지 않기 위해 집회를 업무시간 이후에 개최하기로 하고 1500~2000명 규모의 참여를 예상했다.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이 이날 함께 내세운 핵심 주장은 국책은행의 지방이전이 단순히 직원들의 근무지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정책금융의 경쟁력과 금융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국가전략산업과 기업 구조조정 등을,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금융을, 수출입은행은 수출기업과 해외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지원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세 노조는 기업과 금융회사, 투자자, 법률·회계법인 등이 집적된 금융생태계에서 국책은행을 분리할 경우 민간 금융과의 협업과 기업 지원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가장 강한 목소리를 낸 것은 김현준 산업은행지부 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윤석열 정부 내내 우리 산업은행을 흔들고 일터를 무너뜨리려던 시도에 맞서 싸워왔다"며 "탄핵 이후 지난 1년 우리는 금융 본연의 자리에서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묵묵히 일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은행이 AI·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금융 업무를 맡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산업은행이 있어야 할 곳은 포퓰리즘 정치판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 자본과 인프라가 집적된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지인 서울 여의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가 지방이전을 강행할 경우 대응 수위를 높이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짓밟고 일방적 구상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전 직원의 피 끓는 분노와 총단결로 전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방이전의 절차와 근거를 문제 삼았다.
류장희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과 금융노조가 합의한 내용을 꺼내 들었다. 류 위원장에 따르면 당시 합의문에는 기업은행이 시장에서 완전 경쟁하는 상장회사이자 공공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에 공감하고, 금융기관 지방이전은 객관적인 효과 분석을 토대로 당사자와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류 위원장은 "지금 지방 이전 계획에 이런 공감이 있느냐"며 "아무 논의도, 토론도, 설득도 없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1차 공공기관 이전의 효과와 운영 실태를 먼저 분석한 뒤 당사자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은주 수출입은행지부 위원장 역시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며 "정책금융의 최전선에서 산업을 육성하고 금융 외교와 국가 위기 상황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국책은행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이전을 막겠다는 뜻도 밝혔다.
노조는 과거 산업은행 부산 이전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인력 이탈도 근거로 들었다. 결의문에는 산업은행이 과거 본점 이전 논란 과정에서 실무인력의 약 10%가 조직을 떠나는 인력 유출을 경험했으며,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정책금융 역량과 국가전략산업 지원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겼다.
정치권에서도 현장을 찾았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해 국책은행 노조와 함께했다. 김 의원과 한 의원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은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을 지낸 노동계 출신으로, 그동안 금융권 노동 현안에 목소리를 내왔다.
한 의원은 현장에서 국책은행 이전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의원은 "국책은행의 이전 여부와 운영 방향은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의 목소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며 "저 역시 국회에서 여러분의 뜻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국가균형발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세 노조는 결의문에서 국가균형발전을 "반드시 추진돼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규정하면서도 금융기관을 이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작업은 진행 중이다. 정부업무평가포털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2분기 전수조사 자료 등을 토대로 이전계획 수립에 착수했으며, 지난 6월부터 신속한 지방이전을 위한 제도 개선과 혁신도시 교통 등 정주여건 개선 방안 마련에도 들어갔다. 다만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이 최종 이전 대상에 포함될지는 아직 공식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금융권에서는 세 국책은행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을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 노조는 이날 오후 8시 20분께까지 이어진 결의대회 끝에 △국책은행 경쟁력과 정책금융 기능을 훼손하는 지방이전 저지 △정책금융 역량 수호 △국가경제와 국민의 이익을 우선한 정책 수립 촉구 △세 국책은행 노동자의 공동 대응을 결의했다.
이들은 "세 국책은행 노동자가 하나로 굳게 연대해 정부의 일방적인 이전 정책에 단호히 맞서겠다"며 "대한민국 정책금융의 미래를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