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엔 '스프링클러 미작동'이 화 키워
완진 후 합동감식…메자닌 위법성 등 조사

[더팩트ㅣ유연석 기자] 인천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초대형 화재가 사흘째 꺼지지 않고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고가 5년 전 발생한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참사의 데자뷔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조합은 사측이 공간 효율과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도입한 복층식 메자닌(Mezzanine) 구조를 화재를 키운 핵심 주범으로 지목하며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쿠팡 측은 이번 화재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하며 향후 관계 당국의 화재 원인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20일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6시 54분쯤 인천 서해구 쿠팡32물류센터 6층에서 시작된 불은 48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사고 당일 오후 발령한 국가소방동원령을 유지하며 장비 231대와 인력 812명을 현장에 긴급 투입해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다. 다만 진화 작업에 투입됐던 소방관 2명이 연기를 흡입하거나 탈진 증상을 보여 병원 치료를 받았다. 화재 발생 당시가 주·야간 근무 교대 시간대여서 내부에 상주하던 인원이 적었던 덕분에 대형 인명 피해는 면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고를 두고 엿새 동안 거센 불길이 타올랐던 5년 전 덕평 화재 참사의 복사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에 불이 난 인천 센터는 연면적 29만 9000㎡로 축구장 42개 규모에 달하는 초대형 시설이다. 당시 축구장 15개 크기였던 덕평 물류센터보다 거의 3배나 넓다. 이 때문에 화재 진압이 더욱 장기화되고 피해 규모도 더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2021년 6월 덕평 화재 당시에는 사측이 경보기를 꺼두는 바람에 스프링클러 작동이 20분이나 지연됐다. 미로 같은 내부 구조와 사방에 쌓인 가연성 적재물 탓에 소방관 1명이 순직하는 참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정부는 소방 실태를 전면 점검해 2024년부터 습식 라지드롭형 스프링클러 설치와 선반 3m 이하마다 헤드 추가를 의무화하는 등 화재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재발을 막지 못한 핵심 원인으로 노조는 메자닌 구조를 강력하게 지목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노조)는 성명을 통해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6층은 과거 덕평 참사 당시에도 겹겹이 쌓인 가연물과 함께 불길 확산 및 진화를 어렵게 만들어 큰 문제가 되었던 바로 그 메자닌 구조"라고 명확히 짚었다.
메자닌은 층고가 높은 건물 내부에 철제 빔 등으로 임시 중간층을 덧대어 만든 복층 형태다. 사측은 한 개 층을 여러 층으로 쪼개 적재 효율을 극대화했으나, 이 구조는 화재 시 치명적인 덫이 된다는 지적이다. 기둥과 바닥이 내화 구조가 아닌 철골로 이루어져 열을 받으면 쉽게 무너지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노조는 "메자닌 구조는 화재에 매우 취약하고, 건축법령상 작업 공간으로 사용할 경우 불법 소지가 짙다"며 "그럼에도 쿠팡은 오직 비용 절감만을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또다시 반복된 대형 화재 사고에 대해 사측이 과연 덕평 참사로부터 어떠한 반성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철저한 원인 진단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했다.
실제 진화 과정에서도 가연성 물품이 높게 쌓인 내부 구조와 통짜 평면 설계가 화를 키웠음이 드러났다. 현장 브리핑에서 전재인 인천서부소방서 119재난대응과장은 "3단 랙 구조에 다량의 가연물이 적재돼 있어 고온의 농연(짙은 연기)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내부 시야 확보와 소방대원의 진입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발화 지점인 6층 창고 면적은 2만 800㎡에 달하는데, 이곳에는 종이상자와 비닐, 플라스틱 포장재 등이 높이 8m 안팎의 3단 선반에 빼곡하게 진열돼 불길이 급속히 번졌다. 특히 선반 사이 통로 폭이 고작 1.3m에 불과해 대원들이 무거운 장비를 들고 진입하는 데 극심한 난항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메자닌과 과밀 적재 구조상 스프링클러가 적상 작동했더라도 초동 진화는 무용지물이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건물 외벽을 허무는 굴착기 파괴 작업까지 동원하며 입체 진화에 나섰다. 지자체는 건물 붕괴 위험을 우려해 인근에 대피령을 내리고 주변 학교에 휴교를 권고했으나, 소방당국은 현재로서 우려할 정도의 붕괴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화재로 인해 제도적 사각지대 역시 도마에 올랐다. 소방청이 화재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 준공된 이 센터는 소방법의 소급 적용을 규정하는 조항이 없어 강화 전의 옛 기준을 적용받았다. 이처럼 과거 기준에 머물러 강화된 소방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창고는 전국 물류창고 5949개 중 72.7%인 4325개에 달한다. 최근 물류창고가 코로나 이전 대비 40% 이상 급증하며 초대형화·과밀화되고 있는 만큼 안전 기준의 소급 적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재 이후 사측의 수습 대응을 둘러싼 노사 갈등도 격화되는 양상이다. 노조는 사측이 노동자 안전보다 배송 지연 방지에만 급급했다며 "근무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대책은커녕, 로켓배송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인근 물류센터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당일 오후 늦게 했다"고 폭로했다. 아울러 유급휴가 보장 및 전환 배치 지원 등 실질적인 노동자 지원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쿠팡 측은 인근 주민 대피소에 접이식 매트리스와 차렵이불 등 긴급 구호물품을 신속히 보급하고 현장 소방대원을 위한 생필품과 간식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종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는 공식 입장을 통해 "이번 화재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소방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현장 소방 활동 지원에 전력을 다하고, 향후 관계 당국의 화재 원인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전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완진 즉시 현장 합동 감식에 착수한다. 이들은 최초 발화 원인을 규명하고 스프링클러 정상동작 여부와 화재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 메자닌 구조의 위법성도 조사할 방침이다.
ccbb@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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