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대 고환율 고착화 위기감…외환당국 "중동 전쟁 종식돼야"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코스피가 반도체 랠리에 힘입어 9000선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새 역사를 쓰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1500원대 고환율이 고착화되면서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24분 기준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2.39%(209.66포인트) 내린 8578.72에 거래되고 있다. 개장 직후 8900선을 돌파하며 기세를 올렸으나, 이내 3%대 급락세로 돌아서며 8500선까지 밀리는 등 장초반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순매도세와 개인의 순매수세가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양상이다.
코스피는 전날 8788.38로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상승장은 반도체 대형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장중 35만원을 돌파하며 시가총액 2000조원 시대를 열었다. SK하이닉스는 1.29% 오른 236만3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특히 미국 엔비디아와의 협력 기대감 등 인공지능(AI) 랠리가 지수 상승의 주된 원동력이 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련 종목들이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LG전자가 상한가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LG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급등했고, 네이버도 16% 상승 마감했다. 두산그룹주 역시 젠슨 황 CEO의 국내 공개 일정 가능성이 거론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처럼 증시는 축포를 쏘고 있지만,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머물면서 시장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7원 내린 1512원에 출발했다. 소폭 하락하긴 했으나, 지난달 27일 삼전닉스 레버리지 상품 출시 당시 환율(1502.0원)과 비교하면 오히려 10원 오른 수치다.
실제로 환율은 지난달 22일 주간 거래에서 1517.2원에 마감하며, 지난 4월 2일(1519.7원) 이후 한 달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는 중동 리스크(미국·이란 갈등)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3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3월에는 전체 21거래일 중 9일(42.9%) 동안 환율이 1500원을 넘겼고, 4월에는 휴전 기대감에 5일(22.7%)로 줄어들었으나, 5월 들어 다시 6일(33.3%)로 빈도가 늘어나며 상단이 굳어지는 모양새다.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의 환율 흐름이 과거 공식과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통상 코스피가 강세를 보이면 외국인 자금이 유입돼 원화 가치가 뛰기 마련이지만, 최근에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달러를 벌어들여도 자금이 국내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해외로 유출된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약 100조원 규모에 달하는 외국인 자금 이탈이 꼽힌다.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매각한 뒤 이를 달러로 환전해 빠져나가면서 환율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출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외화 형태로 해외에 보유하려는 수요도 한몫했다.
반면 정부는 이를 코스피 급등에 따른 자산 평가액 상승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외국인들이 지분 일부를 차익 실현 목적으로 매각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환전 수요가 몰렸다는 논리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었는데,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서 이를 달러로 바꿔 나가는 수요가 꽤 있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환율 체증이 장기화될 경우 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밀어 올려 소비자물가를 자극하고, 이는 결국 내수 위축, 경제성장률 둔화, 기업 경영환경 악화,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주가 상승세를 꺾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환율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으로 볼 수 있는데 고환율 현상은 펀더멘털이 약하다는 것"이라며 "지금 증시가 전체적인 실적이 좋은 게 아니라 특정 업종에 대한 기대감으로 급등하고 있는 현상을 고려할 때 고환율은 향후 증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결국 강달러 국면이 진정되려면 미·이란 간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어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란 전쟁 불확실성으로 달러화가 반등했지만 리스크 완화 시 반등 폭 이상의 달러 하락을 예상한다"며 "하반기 달러-원 환율은 1400원~1500원대 등락을 예상하지만 이란 리스크 해소 시 빠르게 1450원 이하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외환당국 역시 대외 여건 변화와 통화정책 조정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중동 상황이 빠르게 진정되면 원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설 여지가 있다"고 밝히며 "향후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방향으로 기조를 잡는다면, 미국과의 금리 차가 축소되면서 원화 절하(환율 상승) 압력도 자연스럽게 약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zz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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