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빗썸·코인원 연쇄 법적 대응에 규제당국 부담 확대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과의 연이은 법적 분쟁에서 잇따라 제동이 걸리자,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규제 주도권 재정비에 나섰다는 비판이 가상자산 업계와 법조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사법부 판단으로 기존 제재 논리가 흔들리자 시행령 강화를 통해 보다 직접적인 통제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11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FIU는 오는 13일 오전 10시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닥사·DAXA)와 국내 가상자산사업자(VASP)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3월 입법예고한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 관련 의견 수렴 회의를 개최한다. 이번 회의는 닥사가 국내 신고수리 VASP 27곳의 의견을 취합해 제출한 이후 마련된 자리로, 향후 규제 방향을 둘러싼 업계와 당국 간 첫 본격 협의 무대가 될 전망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1000만원 이상 가상자산 거래 발생 시 의심거래보고(STR) 의무 대폭 강화 △고객확인정보 추가 검증 의무 부과 △해외 가상자산사업자 위험도 평가 및 거래 제한 체계 구축 등이다. FIU는 자금세탁방지(AML) 체계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업계는 이를 사실상 가상자산 거래소 전반에 대한 감독·통제 강화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큰 논란은 1000만원 이상 거래 시 STR 보고 확대 조항이다. 현행 STR 제도는 자금세탁이나 범죄 연루 가능성이 있는 '합리적 의심 거래'를 선별적으로 보고하는 위험기반접근(RBA) 원칙에 기반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일정 금액 이상 정상 거래까지 사실상 광범위한 보고 대상에 포함할 가능성이 커, 업계에서는 의심 거래 보고 제도를 자동 보고 체계 수준으로 확대하는 과잉 규제라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해당 조항 시행 시 국내 5대 거래소 STR 보고 건수는 기존 대비 최대 85배, 연간 약 500만건 이상으로 폭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거래소들은 AML 전담 인력 확충과 시스템 재구축, 수작업 검증 부담 증가 등 대규모 비용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법조계 역시 이번 개정안의 법적 정당성과 규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STR은 본래 합리적 의심에 근거한 보고 체계인데 정상적 고액 거래까지 일률적으로 보고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위험기반접근 원칙과도 거리가 있다"며 "강한 규제가 반드시 효과적인 규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FIU와 주요 거래소 간 법적 충돌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FIU의 영업 일부정지 제재에 대한 1심에서 승소했고, 법원은 빗썸의 영업 일부정지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도 받아들였다. 여기에 코인원까지 제재 불복 소송에 나서면서 국내 주요 거래소들이 잇따라 금융당국 제재에 법적 대응을 이어가는 구도가 형성됐다.
법원은 두나무 사건에서 100만원 미만 미신고 사업자 거래와 관련해 명확한 규제 기준 부재를 지적하며 고의·중과실 책임을 엄격히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기존 감독 체계의 법적 허점을 드러낸 판결로 해석되며, 업계에서는 FIU가 향후 유사 소송에서 보다 명확한 제재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시행령 단계에서 규제 체계를 보완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특금법 시행령 개정은 단순한 AML 체계 강화 차원을 넘어, 법원 판단으로 흔들린 규제 권위를 보다 구체적인 하위 규정을 통해 재정비하려는 흐름으로 읽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규제 명확화라는 명분 아래 실질적인 감독·통제 강도가 한층 높아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해외 거래소 위험도 평가 의무 역시 또 다른 논란거리다. 개정안은 국내 거래소가 해외 거래소의 AML 체계와 인허가 상태를 자체 평가해 고위험 여부를 판단하도록 요구하지만, 업계는 현실적으로 해외 사업자의 내부 통제 수준을 정확히 검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자칫 국내 투자자의 글로벌 자금 이동이 제한될 경우 해외-국내 시장 간 가격 괴리 심화, '김치 프리미엄' 확대 등 시장 왜곡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FIU의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은 자금세탁방지 강화라는 정책 목표와 별개로, 국내 가상자산 산업 전반에 규제 비용 확대와 사업 불확실성 심화를 동시에 초래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안팎에서는 향후 특금법 체계가 단순한 일률 규제보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위험기반·정밀 규제 체계로 재설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현재 흐름대로라면 국내 디지털자산 산업은 규제 완화보다 규제 명확화와 감독 통제 강화 중심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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