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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자산기본법 멈췄는데 CBDC만 가속… 韓 디지털자산 정책, 중국식 모델 닮아가나
가상자산 2단계법 지연 사이 한은 '프로젝트 한강' 2단계 본격화
신현송 총재, 취임 직후 CBDC·예금토큰 전면 강조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지연되는 사이 한국은행의 CBDC·예금토큰 실증 사업은 속도를 내면서, 국내 디지털자산 정책이 민간 시장 육성보다 중앙 통제형 디지털 화폐 체계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이새롬 기자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지연되는 사이 한국은행의 CBDC·예금토큰 실증 사업은 속도를 내면서, 국내 디지털자산 정책이 민간 시장 육성보다 중앙 통제형 디지털 화폐 체계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디지털자산기본법(가상자산 2단계법) 논의가 정치 일정과 핵심 쟁점 충돌 속에 장기 표류하는 사이, 한국은행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및 예금토큰 실증 사업 '프로젝트 한강'은 오히려 속도를 내면서 국내 디지털자산 정책이 민간 시장 육성보다 중국식 중앙 통제형 디지털 화폐 체계 강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신현송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직후부터 CBDC와 예금토큰 중심의 미래 통화 질서 구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디지털자산 정책 주도권이 민간 스테이블코인보다 중앙은행 중심 구조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힘을 얻고 있다.

4일 금융권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최근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사업을 본격화하며 상용화를 위한 종합 컨설팅 입찰에 착수했다. 주요 은행들도 이에 맞춰 외부 수행사 선정과 자체 시스템 구축 작업에 돌입했다. LG CNS가 공통 인프라 사업자로 선정된 가운데, 각 은행은 공통 시스템과 연동할 자체 플랫폼 구축과 실거래 환경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한강은 중앙은행이 기관용 CBDC를 발행하고, 시중은행이 이를 기반으로 예금토큰을 발행·유통하는 구조다. 1단계에서는 발행부터 환수·폐기까지 전 과정의 기술적 작동 여부를 검증했고, 현재 진행 중인 2단계에서는 생체인증, 개인 간 송금, 국고금 집행 시범사업, 은행권 후속 실거래 등 상용화에 가까운 실질적 테스트가 이뤄질 예정이다.

신 총재는 지난달 21일 취임사에서 "디지털 금융혁신에 대응해 미래 통화제도 설계에도 한발 앞서 준비해나가야 한다"며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사업을 통해 CBDC와 예금토큰 활용도를 높이고 아고라 프로젝트 등 국제협력을 통해 디지털 지급결제 환경에서도 원화의 위상을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취임 직후부터 CBDC 프로젝트를 핵심 정책 과제로 명확히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별도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민간형 스테이블코인보다 CBDC 기반 질서 구축에 더 강한 무게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 총재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병존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국내 외환 규제와 고객확인(KYC) 구조상 은행권 중심 디지털화폐 구조가 보다 안정적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을 보조적 수단으로 두되, 주도권은 중앙은행과 제도권 금융기관이 가져가겠다는 방향성으로 읽힌다.

반면 민간 디지털자산 산업의 핵심 제도 기반이 될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여전히 정치 일정에 묶여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일정 연기, 5월 원내대표 선거, 6월 지방선거, 8월 전당대회 등 정치 변수로 인해 업계에서는 사실상 연내 처리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정무위원회 재편과 국정감사 일정까지 고려하면 논의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상장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장외거래(OTC), 프라임브로커리지, 거래소 지배구조 규제 등 산업 핵심 제도 역시 함께 지연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을 두고 여야 정치권과 산업계 전반에서 반대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정애(사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도입에 찬성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정책이 추진되는 분위기다. /국회=남용희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을 두고 여야 정치권과 산업계 전반에서 반대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정애(사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도입에 찬성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정책이 추진되는 분위기다. /국회=남용희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정치 일정과 상임위 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올해 안 처리도 쉽지 않아 보인다"며 "스테이블코인과 민간 디지털자산 시장 제도화는 계속 미뤄지는 반면 CBDC는 기존 로드맵대로 속도를 내고 있어 결과적으로 중앙은행 중심 디지털 금융 구조가 먼저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책 추진 속도의 격차는 정부의 디지털자산 정책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민간 시장 육성은 정치·입법 리스크에 발이 묶인 반면, CBDC와 예금토큰은 한국은행 주도로 안정적으로 추진되며 제도권 디지털 화폐 인프라가 선제 구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e-CNY) 모델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중앙정부 주도의 CBDC 체계를 통해 통화 통제력과 금융 데이터 관리 역량을 강화해왔다. 국내 역시 CBDC와 예금토큰 중심 구조가 먼저 자리 잡을 경우, 민간 스테이블코인보다 중앙 통제형 구조가 정책 중심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은 민간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논의를 병행하거나 시장 경쟁 구조를 보다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CBDC 추진 배경으로 금융 안정성과 통화 주권 확보를 강조한다. 글로벌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확산 속에서 원화 기반 디지털 결제 체계를 선제적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향후 통화 주권 약화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다.

다만 업계에서는 지나치게 중앙집중형 구조에 치우칠 경우 국내 디지털자산 산업의 혁신성과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민간 시장 제도화가 지연될수록 스테이블코인, OTC, 브로커리지, 기관투자 시장 등 성장 동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비롯한 핵심 제도 마련이 지연되면서 국내 핀테크·금융사들의 디지털자산 사업 준비 역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네이버파이낸셜의 두나무 협업, 미래에셋컨설팅의 코빗 지분 확보 등 주요 플레이어들의 사업 재편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거래소 지배구조 규제와 스테이블코인 제도 방향이 확정될 경우 기업들의 투자 전략과 사업 구조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chris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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