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 소각 법제화 갈림길

[더팩트|윤정원 기자] 자사주를 사들이면 1년 안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이 오늘 국회 본회의에 오른다. 법안이 가결될 경우 기업들이 자사주를 일정 기간 보유하며 경영권 방어와 거래 수단으로 활용해온 방식에 제도적 제약이 걸릴 전망이다.
24일 국회에 따르면 3차 상법 개정안은 이날 오후 2시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된다. 개정안은 앞서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통과해 본회의 표결 절차만을 남겨둔 상태다. 다만 본회의 처리 일정은 여야의 대응 방식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대응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필리버스터로 표결이 지연되더라도 2월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인 다음 달 3일까지 본회의를 이어가며 법안 처리를 시도하겠다고 알렸다.
◆ 1년 내 소각 원칙…자사주 성격 자체가 바뀐다
개정안의 핵심은 자사주를 보유 자산이 아니라 환원 수단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자사주 의무 소각과 관련해서는 기업이 자기주식을 취득할 경우 원칙적으로 1년 안에 소각하도록 하고, 일부 제한적인 사유에 한해 예외적 보유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져 왔다. 임직원 보상이나 합병·분할 등 구조조정 목적 활용이 예외 범위로 거론되지만, 보유 기간과 요건을 엄격히 제한해 사실상 장기 보유를 어렵게 만드는 구상이 골자다. 시행 시점과 기존 보유 자사주의 처리 방식, 유예기간 등은 부칙에 담길 예정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곧바로 소각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은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뒤 장기간 보유할 수 있고, 의결권은 없더라도 필요에 따라 처분하거나 각종 거래 구조에 활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사주는 주가 관리 수단인 동시에 상황에 따라 활용 가능한 전략적 카드로 기능해 왔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자사주 매입은 시장에서 소각을 전제로 하는 행위로 인식될 가능성이 커진다. 매입 이후 소각으로 이어지지 않아 실질적인 환원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기존 관행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주를 필요에 따라 활용해온 운용 방식 자체가 제약을 받게 된다.

◆ 경영권 방어·M&A 구조, 자사주 활용 모델 '흔들'
자사주가 논쟁의 중심에 서는 이유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자사주는 보유 중에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이전되는 순간 의결권이 살아난다. 이같은 특성으로 인해 기업들은 경영권 분쟁이나 행동주의 압박 국면에서 자사주를 우호 세력이나 전략적 투자자(SI)에 넘겨 의결권 구도를 조정해 왔다. 교환사채(EB) 발행의 기초자산으로 활용하거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현금 대신 자사주를 대가로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의무 소각이 도입되면 이러한 자사주 활용은 구조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장기 보유가 어려워지는 데다 예외 범위가 제한될수록 자사주를 거래의 재료로 삼는 선택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기업이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 중인 그룹, 향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장사일수록 제도 변화의 체감도가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단순한 회계상 이벤트를 넘어 지배구조 설계의 전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 논리, 오너 일가의 지배력 유지 전략, 계열사 간 지분 정리 시나리오가 맞물릴 경우 자사주 옵션 축소만으로도 후속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코스피 상장사 관계자는 "자사주는 위기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안전판 성격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뀌면 이를 대체할 수단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국면"이라고 말했다.
◆ 주주환원 강화 기대 속 기업별 온도차…시장은 재평가 국면
투자자 측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주주환원을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자사주가 소각되면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EPS)이 개선되고, 자기자본 감소에 따라 자기자본이익률(ROE) 지표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 배당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당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다.
그간에는 자사주 매입을 발표해 주가를 부양한 뒤 소각 없이 장기간 보유하거나, 시장 상황에 따라 재매각하는 사례가 반복되며 환원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의무 소각이 법제화될 경우 '매입=소각'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면서 자사주 정책 자체가 보다 직접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재정의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기업의 현금 활용 전략과 배당 정책, 자사주 매입 시점과 규모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장 반응은 기업별로 엇갈릴 전망이다. 자사주 보유 비중이 큰 기업에는 소각 기대가 선반영되며 주가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경영권 이슈가 잠재한 기업에는 방어 수단 약화가 리스크로 인식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주환원 강화라는 정책 목적은 분명하지만 경영권 방어 옵션이 동시에 줄어드는 만큼 기업별로 득실이 갈릴 수밖에 없다"며 "자사주를 어떻게 활용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지배구조 과제가 있는지에 따라 시장 재평가 방향도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본회의에서 법안이 가결되면 정부 이송과 공포 절차를 거쳐 시행 수순에 들어간다. 시행 시점과 경과 규정에 따라 이미 보유 중인 자사주가 어떤 속도로 소각 대상에 포함될지도 달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는 표결 결과뿐 아니라 부칙에 담길 유예 기간과 예외 적용 범위가 실제 파장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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