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분쟁 장기전…"평판 리스크, 자금·딜에 번질 수도"

[더팩트|윤정원 기자]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기부 아이콘'에서 '피의자'로 호명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장학재단 운영과 도서관 건립 기부로 쌓아온 상징 자산이 홈플러스 사태 수사와 맞물리며 정반대의 조명 아래 놓였다. 영장 기각으로 일단 한숨은 돌렸지만, 시장의 시선은 이미 법적 결론과 별개로 평판의 비용이 커졌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20일 법조계 및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김병주 회장 등 MBK파트너스·홈플러스 경영진 4명의 구속영장을 지난 14일 새벽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피해 결과가 중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현 단계에선 구속할 정도의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다만 영장심사가 13시간 넘게 진행될 정도로 쟁점이 무겁다는 점도 확인됐다. 법조계에선 영장 기각이 무혐의 판단이나 수사 종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본안 수사와 기소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 돌입 가능성을 인지(또는 예견)하고도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등을 발행·유통해 투자자 피해를 키웠다는 취지로 사기 등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 발부 여부와 별개로 김병주의 이름이 법원 심문실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오르내린 사실 자체가 치명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회장은 그간 국내 사모펀드(PEF) 업계에서 드물게 개인 기부로 존재감을 키운 인물로 꼽혔다. 오는 2027년 서울 서대문구에 들어설 서울시립도서관 건립을 위해 사재 300억원을 출연해, 도서관 명칭에 '김병주' 이름 석자까지 붙었다.
장학 활동도 김병주 브랜드의 축이었다. MBK장학재단은 2007년 설립돼 학비 지원 등을 이어왔고, 지난 18년간 MBK장학재단 누적 장학생 수는 총 215명에 이른다. 이 같은 이력은 해외에서도 포장됐다. 김 회장은 포브스가 선정하는 '아시아 자선가' 명단에도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 아시아 자선가에 포함된 것은 김 회장이 유일하다.
문제는 선의의 서사가 이번 국면에선 방패가 아니라 대비 효과를 키우는 배경이 됐다는 점이다. 시장에선 이 같은 이력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온 인물일수록, 위기 국면에서 요구되는 설명과 책임의 기준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홈플러스는 회생 절차 국면에서 점포 영업중단 확대, 급여 지급 지연 공지 등이 이어졌고, 시장에선 현장 고통이 커질수록 대주주의 책임론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이에 MBK파트너스는 최근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 긴급 운영자금(DIP) 3000억원 중 1000억원을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급한 불을 끄는 성격이지만, 동시에 사태가 어디까지 번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김 회장의 부담은 홈플러스에만 걸려 있지 않다. MBK파트너스는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벌여왔는데, 핵심 경영진이 사법 리스크에 걸리면서 분쟁 구도의 변수가 된 상태다. 최근에는 미국 합작법인(JV) 참여와 지분 구도 변화 등 외부 요인까지 겹치며 장기전 양상이 짙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업계에선 총수 리스크가 단순한 이미지 문제를 넘어, 거래 조건과 자금 조달 과정에서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반영될 수 있다고 본다. 대형 거래일수록 투자자 설득과 내부 리스크 점검이 강화되는데, 핵심 인물에 대한 불확실성은 거래 구조 전반에 '리스크 프리미엄'을 얹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여론전도 부담 요인이다. 김 회장은 2025년 10월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처음 출석해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공개 사과했다. 동시에 홈플러스 임직원과 이해관계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취지로 언급하면서도, 홈플러스 회생 신청 과정에 대해서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당시 발언은 정면돌파로 읽히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 사태가 사법 절차로까지 확장되면서 평가가 달라질 여지도 커졌다. 국감장에서 책임과 사과를 말했던 당사자가 이후 영장심사대에 서는 장면은, 대중에게는 해명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출석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런 국면을 '평판 리스크의 전염'으로 본다. 한 기관투자자 출신 관계자는 "대주주 리스크가 부각되면 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투자위원회 단계에서부터 검토 기준이 훨씬 엄격해진다"며 "운용 성과가 나쁘지 않더라도 신규 출자나 공동투자에선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쌓아온 기부의 상징성은 법원의 영장 판단과 별개로 이미 시험대에 올랐다. 사법 판단은 수년이 걸릴 수 있지만, 시장의 평가는 훨씬 빠르다. 익명을 요청한 한 IB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정상화 속도, 이해관계자 피해 최소화, 고려아연 분쟁의 출구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으면 기부자라는 수식은 오히려 더 날카로운 질문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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