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도급 중심 구조…투자개발사업 뒷걸음질

[더팩트|이중삼 기자] 지난해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따낸 수주금액은 473억 달러였다. 11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정부는 K건설 저력이 다시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낙관하기 어렵다. 체코 원전이라는 초대형 사업이 실적을 떠받쳤고 수주 구조는 여전히 투자개발이 아닌 도급 중심에 머물러 있다. 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시장을 넓히기 어렵다는 경고가 나온다. K건설은 이제 얼마나 따냈느냐보다 어떻게 벌어들이느냐를 묻는 국면에 들어섰다.
1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금액은 473억 달러로 집계됐다. 2014년(660억 달러) 이후 달성한 최대 실적이다. 1년 전보다 102억 달러(27%) 이상 늘었고 2021년 이후 4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해외건설 60년 역사에서 연간 수주금액이 400억 달러를 넘긴 해도 이번을 포함해 아홉 차례로 늘었다.
국토부는 이번 실적의 핵심 요인으로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를 꼽았다. 해당 사업만 187억 달러 규모다. 이를 계기로 유럽 수주금액이 202억 달러로 급증하며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플랜트·원자력 등 고부가가치 공종 비중도 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유럽 시장에서의 급성장과 공종 다변화가 실적을 견인했다"고 진단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공개적으로 성과를 언급했다. 김 총리는 지난 14일 서울 건설회관에서 열린 '2026 건설인 신년인사회'에서 "해외건설 수주가 11년 만에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며 "정부는 K건설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해외건설을 다시 국가 핵심 산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 '숫자'는 회복, '구조'는 제자리

이와 달리 업계 내부에선 이 기록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해외 수주 구조가 과거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해외 수주 환경은 단순 도급에서 투자개발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국 수주 구조는 도급 비중이 투자개발을 압도한다. 도급은 455억 달러인 반면 투자개발은 18억 달러에 그쳤다. 실제 한국 해외건설 사업은 단순 도급 사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0년(2015년~2024년) 간 전체 수주금액에서 개발형 사업 비중은 통산 10%대에 머물렀다.
이 같은 구조는 수익성 한계로 직결된다. 단순 도급은 공사비 경쟁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익률은 낮고 후발국 기업과의 가격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기술 경쟁에서는 선진국에 밀리고 가격 경쟁에서는 신흥국에 밀리는 '넛크래커' 상황이라는 지적이 반복되는 이유다. 업계에선 "물량 확대만으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도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해외건설 수주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장관은 지난 14일 국토부 산하기관·유관단체 업무보고에서 "이제는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식으로 확장해야 한다"며 "해외 발주 구조 자체가 도급 중심에서 투자개발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장관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당시를 언급하며 "사우디 주택부 장관으로부터 한국은 인건비나 도급액을 더 낮춰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며 "사우디는 더 이상 우리가 도급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단순 시공 경쟁력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혔다는 판단이다.
◆ "도급으로는 더 못 간다"…정부 내부의 위기 인식

세계 건설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6% 성장이 예상된다. 에너지 전환·원자력·데이터센터·ESS 등 신산업이 시장을 이끈다. 국내 건설사도 이미 해당 분야에서 수주 실적을 쌓고 있다. 관건은 이 흐름을 도급이 아닌 투자개발로 연결할 수 있느냐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건설 BRIEF' 보고서에서 "글로벌 건설경기에 부합하는 현지 맞춤형 진입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고서는 "중동 지역은 한국 주력시장 중 하나로 인프라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중국 등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선 기술 중심의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며 "아시아 지역은 수익성 높은 투자개발형 사업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최근 증대되고 있는 데이터 센터 시장의 규모를 고려해 다양한 산업과의 수평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유럽은 소형모듈원전(SMR)을 중심으로 청정에너지 솔루션 공급자 위치를 확보해야 하며, 북미는 협력업체 인력·비자 문제 등을 고려한 수직적 협력체계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이 시기를 놓치면 이젠 도급공사도 안 되고 금융이나 투자 면에서도 안 되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한국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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