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자구책 '실종'…대형마트 잡는 유통법 '여전'

[더팩트 | 손원태 기자] 전방위적 경영난에 처한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번번이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서 1년째 공회전 상태인 모습이다. 이에 홈플러스 본점인 서울 강서점마저 매대가 텅텅 비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홈플러스가 방치되다시피 파산 위기에 놓였지만,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추가 자구책은 들리지 않는다. 정치권 역시 10년 넘도록 대형마트에만 규제를 씌우는 유통산업발전법을 방관하고 있어 책임론이 제기된다.
◆ 홈플러스, 분리 매각 담은 회생계획안 제출…릴레이 폐점 현실로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회생법원에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을 제출했다. 회생계획안에는 홈플러스의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익스프레스 분리 매각을 통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하이퍼마켓인 대형마트 부실 점포를 정리하는 구조조정안이 담겼다.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28일 가양(서울)·장림(부산)·일산(고양)·원천(수원)·북구(울산) 5곳의 매장을 폐점했다. 홈플러스는 오는 31일 계산(인천)·시흥(서울)·고잔(안산)·신방(천안)·동촌(대구) 5곳 매장을 추가로 닫는다. 홈플러스는 향후 6년간 41곳 매장의 영업 종료도 검토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전방위적 경영난에 처하면서 매장을 계속해서 줄여나갔다. 내수 경기가 악화하는 상황에다 대형마트를 둘러싼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고,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지속적인 자산 처분으로 경쟁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실제 홈플러스는 지난 2024년 연 매출(연결 기준)이 6조9920억원으로, 전년 6조9315억원에서 정체됐다. 이 기간 영업손실은 1994억원에서 3142억원, 당기순손실은 5743억원에서 6758억원으로 크게 불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3분기 매출도 직전 연도 동 기간 대비 19.7% 급락한 1조3693억원을 기록했다.
2024년 기준 홈플러스의 총차입금은 2조144억원, 순부채는 1조8757억원이다. 홈플러스 부채비율은 500.2%로, 회사 재무는 급격하게 기울였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세금 900억원도 제때 내지 못했다. 일부 제조사는 홈플러스가 납품 대금을 미납하고 있다면서 물량을 뺐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임직원의 급여마저 분할 지급하는 극약 처방마저 내렸다.

◆ 우유도 라면도 과자도 매대 텅텅…본점인 홈플러스 강서점도 휘청
2025년 연말을 기해 홈플러스 가양점이 폐점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방문한 홈플러스 가양점은 마치 살을 바르고 난 뒤의 생선 뼈 같았다. 유제품 매대는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탄산음료만 놓였고, 라면 매대는 겨울철 인기가 덜한 비빔면류만 남았다. 과자 매대도 홈플러스 자체 브랜드(PB)로만 찼다.
그렇다면 홈플러스 본점이자 강서점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6일 찾은 홈플러스 강서점은 가양점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한 모습이었다. 우유 매대는 젠가 블럭을 뺀 듯 곳곳이 텅 비었다. 라면 매대도 맞춰지지 않은 퍼즐 조각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났다. 과자 코너는 홈플러스 PB 제품들만 쌓였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맥주, 자일리톨, 샴푸 등 일부 브랜드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홈플러스는 최근 SSM 분리 매각을 담은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은 홈플러스가 제출한 회생계획안을 검토하고, 관계인집회 등 채권단과 협의를 열어 인가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기한은 오는 3월 3일이다. 법원 판단에 따라 법정관리 기한이 연장되면 최장 오는 9월까지 늘어난다.
다만 법원의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인가 여부는 불투명하다.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해 6월에도 SSM 매각을 한 차례 추진했으나, 별다른 소식을 내지 못했다. 업계 내 홈플러스 분리 매각마저 어둡게 전망하는 배경이다.
홈플러스 최대채권단인 메리츠금융 역시 SSM 분리 매각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SSM 분리 매각이 성사되더라도 홈플러스 전체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돼 본체 매각이 실패할 수도 있다. 더구나 메리츠금융은 지난 2024년 5월 홈플러스에 1조2000억원 규모의 대출금을 내주며, 대형마트 62곳을 담보로 잡은 상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현실적인 회생 방안이 인수·합병(M&A)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며 "법원과 채권단을 포함해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과 회사 정상화를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 M&A를 반드시 성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 갈 곳 잃은 홈플러스, 보이지 않는 MBK…추가 자구책 없이 '방치'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지난 2015년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 지분 100%를 인수했다. 당시 홈플러스 매각가만 7조2000억원에 달했다. 홈플러스는 블라인드 펀드로 2조2000억원을 투입했고, 나머지 5조원은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금을 받아 조달했다. 그 결과 홈플러스는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후 재무 부담을 떠안았다. 홈플러스는 점포 매각 후 재임대하는 방식인 '세일즈앤리스백'으로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 MBK파트너스의 책임론이 확산하게 된 배경이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3월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자금 이슈로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지정하는 '스토킹호스' 방식의 매각을 추진했으나, 매각은 적당한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서 번번이 무산됐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1월 26일에도 공개 입찰 방식으로 재매각에 나섰으나, 이마저도 불발로 이어졌다.
홈플러스는 지난해에만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을 다섯 차례 연장했다. 홈플러스가 최근 회생계획안을 내면서 SSM 분리 매각으로 방향을 튼 이유다. 홈플러스 기업가치는 약 7조원으로 추산된다. 반면 SSM 분리 매각은 10분의 1 수준인 7000억원 안팎으로 거론된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 홈플러스 사태를 언급했다. 김 회장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어진 질의에서는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신청 관련) 내 권한 밖이며, 홈플러스 이사회가 결정할 사안이다"고 발을 뺐다.
또한 김 회장은 MBK파트너스가 지난해 홈플러스 회생 과정에서만 총 5000억원의 사재 출연을 집행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MBK파트너스는 최근 제출한 회생계획안에서 SSM 분리 매각과 대형마트 점포 정리만 담았을 뿐 추가적인 비용 투입이나 자구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홈플러스는 현재 전국 117곳의 대형마트와 293곳의 익스프레스(SSM)을 두고 있다. 홈플러스 전체 직고용 인원은 약 2만명 수준이다. 그중 SSM 소속 직원은 약 3000명 정도다. 협력업체를 포함할 시 홈플러스 전체 직원은 약 10만명으로 추산된다.
홈플러스 마트산업노동조합은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자금 투입과 같은 책임 있는 모습 없이 현장 노동자들에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홈플러스는 "이번 조치는 기업의 존속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고 설명했다.

◆ 대형마트 잡아먹는 유통산업발전법…정치권도 '방관' 책임론 나와
홈플러스 가양점이 고지한 마지막 영업 일자는 지난해 12월 28일이었으나, 문을 닫은 날은 27일이었다. 12월 28일이 대형마트 2주·4주 일요일 의무 휴업일에 들어간 탓이다. 가양점은 영업을 종료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형마트 규제 위에 놓였다.
홈플러스 강서점도 총체적인 경영난에 처했지만, 대형마트 규제 칼날에서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6일 찾은 강서점 매장 입구에서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알리는 입간판이 유독 눈에 띄었던 이유다. 모두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 영향이다.
이 법은 2010년대 들어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일변도로 돌변했다. 당시 대형마트가 국내 유통산업을 독점하고 있다는 이유로, 정부와 국회가 각종 규제를 쏟아냈다. 정치권은 전통시장과 중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추진했다. 2012년을 기점으로 현재의 유통법이 등장했다.
대형마트는 유통법에 따라 10년 넘도록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의무 휴무 △매월 2회 의무휴업일 지정 △휴무·휴업 기간 온라인 배송 금지 △전통상업보존구역(전통시장 1㎞ 내 출점 제한) 등의 규제를 적용받았다.
유통법은 4년 간격으로 특정 규제의 효력이 자동으로 상실하는 일몰제로 이어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일몰 예정이었던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다시금 통과됐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는 오는 2029년 11월까지 4년 더 유통법 규제 대상에 올랐다.
유통법은 대형마트 영업시간에만 제한을 두고 있어 불공평하다는 비판을 낳는다. 이에 쿠팡과 컬리 등과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대형마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컬리는 대형마트 심야 영업 금지를 틈타 지난 2015년 5월 국내에 새벽배송 시스템을 처음 선보였다. 쿠팡은 유통법 규제가 시작된 2013년 연매출 4300억원에서 2024년 41조원으로, 10년 만에 100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국내 유통업체 매출 실태를 보더라도 이 같은 수치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주요 23개 유통업체의 총매출은 16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백화점 3사(롯데·현대·신세계)와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편의점 3사 (GS25·CU·세븐일레븐), SSM 4사(이마트 에브리데이·롯데슈퍼·GS더프레시·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 13곳과 쿠팡, 컬리, 11번가, SSG닷컴 등 10개 온라인 유통사의 매출이 합산됐다.
그 결과 온라인은 전체 매출의 절반이 넘는 52.0%를 차지했다. 반면 대형마트는 온라인 매출 5분의 1 수준인 10.5%에 그쳤다. 유통업계 판도가 대형마트보다 이커머스 중심으로 완전히 뒤집힌 모습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율경쟁 구도에서 대형마트나 전통시장, 이커머스 등 모두 자유로운 경쟁 체제가 마련돼야 하는데, 유통산업발전법은 일방적으로 대형마트만 옥죄고 있다"며 "대형마트가 의무적으로 휴업한다고 해서 전통시장이 살아나는 구조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커머스 독점체제로 굳혀지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tellm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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